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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城紀行② 옛것 그대로 시간이 멈춘 곳, 왕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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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역자(ㄱ)형 북방가옥 밀집·보존 … 한국전쟁·새마을운동·고성산불 견뎌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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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2일(화) 08:36 39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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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결실의 계절 가을, 그 끝자락에 서면 문득 그리워진다.
뒷동산에 올라 친구들과 뛰놀던 기억, 개울에서 미꾸라지를 잡다 거머리에 물렸던 기억.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메뚜기를 잡아 구어 먹던 기억. 어느 새 날은 저물어 마을의 굴뚝마다 흰 연기가 솟아오르면, 어디선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 화로에 둘러앉아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먹을 때, 어머니는 식구들의 옷을 꿰매고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새끼를 꼰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꾸벅꾸벅 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랫목에 누워 있는 나를 발견하곤 의아해 한다. 방문을 열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고, 아버지는 새벽부터 끓인 여물을 소에게 먹이며 환하게 웃는다.
이 가을, 문득 떠오르는 과거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따라 ‘옛것 그대로 시간이 멈춘 곳’, 왕곡마을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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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왕곡마을 입구에는 수령 150년이 넘는 소나무 10여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마을 수호신처럼 우뚝 서 있어, 이 마을이 범상치 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 강원고성신문 | |
왕곡마을 여행의 진정한 맛을 알기 위해서는 ‘좀’ 걷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좋다. 승용차를 타고 왔다면, 마을 초입인 공현진교 근처에 차량을 세우고 마을까지 걸어가는 게 좋다. 그것이 이 마을을 방문하는 예의라고 할 수 있으며, 그래야 여행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약 10여분을 걸으면 마을 입구가 나타난다. 수령 150년이 넘는 소나무 10여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마을 수호신처럼 우뚝 서 있어, 범상치 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오른쪽으로는 왕곡마을 주산인 두백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이선국 전 죽왕면장 때 개설한 것으로, 정상에 오르면 마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동쪽으로 에메랄드빛 동해바다와 해안단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관을 볼 수 있다. 길이가 2.2km 가량되며 소요시간이 1시간 가량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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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왕곡마을 주산인 두백산을 오르는 등산로 입구.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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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두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 ⓒ 강원고성신문 | |
마을 입구 왼쪽에는 동학사적 기념비가 있다.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이 마을에 머물며 포교활동을 했으며, 1894년 동학혁명 기간 동안에는 동학군이 마을에서 전력을 재정비하는 등의 활동을 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난 1997년 6월 천도교에서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강릉 최씨·양근 함씨 집성촌
마을입구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약 100m를 가면 두 개의 길이 나온다. 왼쪽은 주로 강릉 최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고, 오른쪽은 양근 함씨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향토사학자 김광섭씨에 따르면 왼쪽 최씨 집성촌이 과거 왕곡리, 오른쪽 함씨 집성촌이 금성리다. 지금은 이들 두 개의 마을을 합쳐 왕곡마을이라고 부른다. 행정명으로는 고성군 죽왕면 오봉1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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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도 지정 기념물 제78호 함정균 가옥. 기역자형 북방식 가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 강원고성신문 | |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1시 방향에 사단법인 고성왕곡마을보존회 사무실이 있다. 본격적인 탐방에 나서기 전에 왕곡마을보존회에 들러 기본적인 정보를 얻고 가는 게 좋다. 일부 가옥들은 보존을 위해 자물쇠로 잠궈두기 때문에, 보다 자세한 모습을 살피기 위해서는 보존회에 부탁해야 된다.
왕곡마을은 19세기 민가와 북방식 전통가옥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지난 2000년 1월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됐다. 이처럼 왕곡마을이 전통가옥을 잘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3대 악재’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새마을운동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으며, 단군 이래 최대 규모였다는 1996년 고성산불에서도 살아남았다.
최종복 왕곡마을보존회 사무국장은 “1996년 고성지역을 초토화시킨 고성산불이 두백산을 넘어 마을로 번졌는데, 어느 순간 송지호쪽에서 역풍이 불면서 사그러들었다”며 “하늘이 우리 마을을 지켜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왕곡마을의 기와집이나 초가집이나 모두 안방, 사랑방, 마루, 부엌, 광(창고)이 한 건물내에 수용되어 있으며, 외양간이 붙어 있는 기역자형 겹집구조다. 초가집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밀집·보존되고 있다.
대문 없는 앞마당·담장 높은 뒤란
또 앞마당은 대문이 없어 개방적인 반면 뒤란(뒷마당)은 담장을 비교적 높이 쌓아 부엌문을 통해 출입하도록 했으며, 장독이나 쌀독 등을 두었다. 일부 닭과 토끼 등의 가축을 가둬 기르는 경우도 있었다.
굴뚝은 진흙과 기와를 쌓아 올려서 만든 뒤 항아리를 엎어 놓았다. 이는 굴뚝을 통해 나온 불씨가 외부로 옮겨붙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과 열기를 집내부로 다시 들여보내기 위한 것으로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왕곡마을은 현재 모두 47채의 가옥이 있다. 기와집이 29채, 돌기와가 1채, 초가집이 14채, 슬레이트 건물이 3채다. 이 가운데 8채는 고성군 소유의 가옥으로 사람이 살지 않으며,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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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 10일 마을 주민들이 초가지붕에 얹을 이엉을 엮는 작업을 하고 있다. | ⓒ 강원고성신문 | |
주민등록상 인구는 109명이지만, 실제 거주는 70여명 남짓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주로 농사일에 종사한다. 다만 소를 통해 농사를 짓던 것에서 이제는 경운기 등 농기계를 이용한다는 게 다르다. 농사일과 함께 송지호에서 재첩을 채취해 팔고, 1년에 한번씩 초가지붕 이엉잇기 등 전통가옥을 보존하기 위한 일거리도 수입원이 되고 있다.
지난 10일 일행 3명과 함께 왕곡마을을 찾은 김용수씨(중앙대 아동청소년학과 석사과정)은 “건축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했는데, 전통이 살아있으며, 안락하고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하회마을 등 전국의 유명한 전통마을을 찾아봤지만, 왕곡마을이 훨씬 정감있고 옛모습을 잘 보전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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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19년 설립돼 마을 주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해온 오봉교회. | ⓒ 강원고성신문 | | 한편 왕곡마을에는 전통가옥들과 함께 1919년 설립된 오봉교회가 있으며, 지금도 예배를 드리고 있다. 20여평 남짓한 작은 교회로 90여년간 마을 주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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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성왕곡마을보존회 최종복 사무국장 | ⓒ 강원고성신문 | |
고성왕곡마을보존회 최종복 사무국장
“체험축제 차별화 계획”
사단법인 고성왕곡마을보존회는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된 왕곡마을을 보존하고, 가꾸기 위해 2004년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단체다.
처음에는 60대 어르신들이 주축이 돼 활동했으나 지금은 50대인 함석주 회장(54세)과 최종복 사무국장(53세)이 맡고 있다.
사무실에는 최사무국장과 군청에서 파견나온 여직원 1명이 상근하며 방문객들에게 왕곡마을에 대해 소개하고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 매년 1회씩 마을 초가지붕 이엉잇기 작업을 맡아하고 있으며,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왕곡마을 전통체험축제도 주관하고 있다.
최종복 사무국장은 “오는 겨울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전통체험축제 전반에 대해 진단하고 전면적으로 재검토를 할 계획”이라며 “수성문화제 등 다른 행사와 차별을 둬 왕곡마을만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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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왕곡마을 초입에 위치한 ‘송지호 재첩칼국수’ 식당. 이 마을 출신인 함석원씨(66세)가 지난 2008년 8월 개업했다. 왕곡마을에 있는 송지호에서 생산된 재첩을 원료로 사용하는데,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최근에는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숙성 호박을 넣어 맛이 더욱 좋아졌다는 평가다. 재첩이 숙취해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것이 알려지면서, 밤새 술을 마신 사람들이 새벽부터 찾아오기도 한다. | ⓒ 강원고성신문 | |
왕곡은 “왕이 사는 골짜기”
왕곡마을 지명변천사 … 王谷 → 旺谷 → 五峯
왕곡마을은 1631년에만 해도 ‘왕이 사는 골짜기’라는 의미의 왕곡(王谷)으로 불리다, 1884년에는 ‘왕성한 기운이 넘치는 골짜기’란 의미의 왕곡(旺谷)으로 변경됐다. 또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는 오봉리로 변경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향토사학자 김광섭씨는 “간성읍지에 따르면 1631년에는 왕곡(王谷)이었으나 1884년에는 왕곡(旺谷)으로 표기되고 있다”며 “임금왕자를 지명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고려 공양왕이 간성군으로 추방돼 이곳에서 살해됐다는 설이 있는 점으로 미뤄 공양왕이나 그 후손들이 숨어 살았던 데서 부쳐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김씨는 또 왕곡(王谷)에서 왕곡(旺谷)으로 변경된 것에 대해 “조선 조정에서 임금왕자를 사용하는데 대해 문제를 삼아 변경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했다.
왕곡리는 1884년 인구증가로 왕곡리, 금성리, 적동리 3개리로 분리됐다. 왕곡리는 강릉 최씨, 금성리 양근 함씨, 적동리는 용궁 김씨가 집성촌을 이뤘다.
그후 1914년 일제가 왕곡리, 금성리, 적동리 3개리를 합쳐 단순하게 지형적인 특성에 따라 오봉리로 변경했다. 1963년에는 옛 왕곡리와 금성리를 합쳐 오봉1리, 적동리를 오봉2리로 구분했다. 현재의 왕곡마을은 옛 왕곡리와 금성리가 합쳐진 것이다.
오봉에는 두백산(뒷산), 골보봉(골미봉), 제공산(제골산), 대곡산(큰골산) 등 4개가 공통으로 들어가지만, 나머지 1개의 산은 두가지 의견이 있다. 과거 장현리쪽 오음산과 과거 화정리(현 인정리)쪽 호근산(갯가산) 둘중 하나를 넣는 것이다.
한편 왕곡마을은 ‘왕성한 기운이 넘치는 고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동안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최근 인물로는 함형구 전 고성군수를 비롯해 최문철 전 원주우체국장, 최인철 전 인제경찰서장, 최명철 전 속초우체국장, 최상철 전 속초도서관장, 함승시 전 강원대교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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