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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필의 말을 타고 ‘가학정’으로 가다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35>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② 선유담(仙遊潭) Ⅳ 선유담(仙遊潭) 관련 회화(繪畵)

2011년 12월 13일(화) 09:17 42호 [강원고성신문]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좌측

ⓒ 강원고성신문

앞에서 기행문에 비친 선유담을 시대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면 회화(繪畵) 속에 담긴 선유담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다.
두 편의 작품은 진경산수화로 명승(名勝)이나 고적(古蹟) 등 실제의 경치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다. 조선시대에는 진경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진경산수화 또는 실경산수화라고 하기도 하였다.
17세기 중엽 이후의 조선조에서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사실적 인식과 더불어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自矜)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물, 풍속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사실주의적 예술이 피어났다.
이른바 진경시(眞景詩)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란 그러한 사실주의적 경향을 구체화한 노력들의 하나라고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진경(眞景) 또는 진경(眞境)을 상징하는 자연은 단연 관동지방이나 금강산이 무대가 되었다. 관동지방은 관동팔경을 배경으로 금강산은 그 누구라도 평생에 한번은 가보기를 꿈꾸던 민족의 영산(靈山)이었기에 일찍부터 읊은 시와 그림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화들은 개인적, 일회적 체험을 넘어서 하나의 문예사조를 형성하였으며 노론의 명문인 안동김씨의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을 중심으로 한 노소론(老少論) 경화사족(京華士族, 번화한 서울에서 권력 있고 번성한 양반 집안)들이 바로 그 주체였다.
실경산수화가 새로운 장르로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에 의해서이며, 그는 김창흡(金昌翕)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의 일파에 의해 더욱 융성하였으나, 조선 말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등에 만연했던 남종(南宗) 문인화에 의해 그 세가 꺾이고 만다.
지금도 현존하는 조선시대 관동팔경과 금강산의 시문이나 회화 작품들은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필자가 추정한 바대로 본다면 일반 도서관을 방불케 할 것이다.

1. 표암(豹菴)의 가학정(駕鶴亭)

↑↑ 강세황의 가학정.

ⓒ 강원고성신문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 서화가이며 평론가로,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광지(光之), 호는 첨재(添齋)·산향재(山響齋)·박암(樸菴)·의산자(宜山子)·견암(繭菴)·노죽(露竹)·표옹(豹翁)·해산정(海山亭)·무한경루(無限景樓)·홍엽상서(紅葉尙書)·표암(豹菴)이다.
중추(中樞) 강현의 아들로 늙어서 벼슬에 올라 정조 2년에 문신 정시에 장원하여 한성 판윤 호조·병조참판을 지냈다. 예서를 비롯하여 각 서체에 능하고 산수 사군자에 뛰어났다. 특히 사경에서 산수화는 채색의 농담으로 암석의 입체감을 표하는 화법을 썼다.
60세가 넘어서야 벼슬을 시작하였고 72세 때인 1784년에는 천추부사로 연경에 가 서화로 이름을 날렸다. 시·서·화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으며 남달리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춘 사대부 화가로서 스스로 그림 제작과 화평 활동을 통해 당시 화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76세 때 금강산 유람을 하고, 기행문과 실경사생 등을 남겼다. 당시 화단에서 ‘예원의 총수’로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는데 공헌을 하였다. 이밖에도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고, 풍속화·인물화를 유행시켜 새로운 서양화법을 수용하는데도 기여하였다.
평생 동안 추구한 그의 서화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습기(習氣)도 속기(俗氣)’도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산수·화훼가 그림의 주 소재였으며, 만년에는 묵죽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작품 「풍악장유첩(楓嶽壯遊帖)」에는 일곱 장면의 그림이 표장(栢山, 淮陽官衙, 鶴巢臺, 竹西樓, 越松亭)되어 있는데, 간성지역의 ‘청간정(淸澗亭)’과 ‘가학정(駕鶴亭) 두 편의 작품이 있다.
표암 강세황은 금강산에서 4박 5일간 있었는데 단원 김홍도 그림과 일치되는 점으로 보아 1788년 회양 관사를 찾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보고 임모(臨模,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것을 말함)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학정의 회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체적인 구도가 김홍도의 그림과 흡사하다. 바다 쪽으로 소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고 정자(亭子)가 아닌 누각(이층)형태로 그렸다는 점을 엿 볼 수가 있다.

2. 단원(檀園)의 가학정(駕鶴亭)

↑↑ 김홍도의 가학정

ⓒ 강원고성신문

김홍도(金弘道, 1745~?)는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가이며,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능(士能)이다.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畵士)·첩취옹(輒醉翁)이다.
단원이 선유담의 회화를 남기게 된 원인은 1788년 정조(正祖, 1752∼1800)의 왕명을 받고 동료이자 선배화가 김응환(金應煥)과 관동지역 일대와 금강산 등 영동일대를 순행하면서 명승지를 그려 정조임금께 받쳤는데,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에 이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단원은 간성 지역의 선유담에 있는 가학정(駕鶴亭)을 주제로 하여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그렸다. 선유담(연못)에는 지금과 사뭇 달리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당시만 보더라도 연못 자체가 신선(神仙)이 산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처럼 느껴졌으리라고 본다.
단원의 한 폭 그림을 접하면서 금강산 일정을 마치고 이후에 충청도 연풍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까지 봉직하였으며, 현감 퇴임 후 만년에는 병고와 가난이 겹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여생을 마친 단원의 삶처럼 오늘날 선유담 또한 아무도 찾아 주는 이 없는 무성한 갈대숲으로 덮여 있다. 이것을 보면 단원(檀園)의 삶을 보는 것 같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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