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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간정 남쪽에 한 층 높은 건물 있으니, 만경루라 하였다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49>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③ 만경대(萬景臺) Ⅹ 조선후기의 기행문에서 살펴본 만경대 주변

2012년 05월 14일(월) 15:28 61호 [강원고성신문]

 

↑↑ 작자미상의 청간정도 민화.

ⓒ 강원고성신문

관동팔경은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달랐다. 간성의 청간정이 관동팔경에 속하는데, 삼척부사 허목은 간성의 영랑호를 대신 들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간성의 만경대를 청간정으로 바꾸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임금의 어제시에는 숙종과 정조임금은 관동팔경을 그린 그림을 보고 시를 지었는데 청간정이 아닌 만경대를 제명으로 사용했다.
이렇듯이 만경대와 청간정은 시대에 따라 차이점이 보이다가 조선 후기에 와서는 만경대 주변의 청간정과 만경루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것은 만경대가 비건축물인데 비해 건축물인 청간정과 만경루가 입지적인 부분이 많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기행문은 시대적 순서로 배열하여 놓았다. 주로 벼슬에 뜻을 두지 않는 선비들이 금강산 여행 중에 이 지역에 들러 만경대 주변을 설명한 작품이다.

1. 봉암(鳳巖)의 「동정기(東征記)」 = 채지홍(蔡之洪, 1683~1741)의 『봉암집(鳳巖集)』 권13 「동정기(東征記)」는 1740년(영조 16) 4월,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의 연시례(延諡禮)에 참가한 뒤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와 더불어 마침 고성군수(高城郡守)로 있는 권정성(權定性, 敬仲)을 찾아가 함께 금강산(金剛山) 일대와 관동지역 동해안을 유람하며 남긴 장문의 유람기이다.
내용의 보면, “앞으로 나가 청간정 이르니 정자는 큰 바다 물가에 있어 땅은 평탄한데 어촌 마을은 10호수가 좌우로 빙 둘러 헌당(軒堂)은 서쪽에 있고 방실(房室)은 동쪽에 있다. 벽에는 아름답게 꾸며 놓았으며, 이엉을 씌운 것은 왕래하는 사신이나 나그네가 머물러 잠자는 곳이다. 당은 서쪽이며, 또 계단의 누각을 지어 올라가 바라보면 매우 뛰어나다. 바로 낙산과 더불어 같으며, 문설주 위에는 고금(古今)의 사람들이 시를 쓴 편액이 많은데, 거의 질 좋은 나무들인데 반해 나무가 재앙을 입지 않은 것이 없다. 일찍이 우암(尤庵)의 쓴 바의 액판이 바로 당(堂)에 있었는데, 십여 년 전 감사(監司) 모 사람이 누(樓)의 위에 매달렸던 것을 치워 버려 필사로부터 대신하였는데, 옳다 그르다 설명하지 못할 뿐이다. 북으로 5,6보 나가면 돌 봉우리가 우뚝 솟아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이 만경대이다. 서쪽으로 10보 남짓 오르면 빈 누각이 하늘에 치솟아 날개를 편 채 바람을 타고 나는 것이 운근정(雲根亭)이다”고 했다.
채지홍은 1740년(영조 16) 「동정기(東征記)」에서 지금까지 표현된 작품들 보다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을의 정경은 물론 청간정 위치와 청간정이 가지고 있는 역할까지 설명하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의 필체가 존재함을 역역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누(樓)는 보이지 않고 운근정(雲根亭)이 새로 발견된 점이 특이하다. 이 경황으로 보아 누(樓)가 무너져 버려 새로 운근정이라는 정자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추측을 해 볼 수 있는데 채지홍이 본 운근정이 바로 만경루인 것이다. 1712년 만경루의 누명(樓名)을 운근정이라고도 불렀다.

2. 성담(性潭)의 「동행일기(東遊日記)」= 송환기(宋煥箕, 1728~1807)는 1781년(정조 5) 7월 29일 서울 출발하여 여강(驪江)을 지나 원주(原州)에서 강릉(江陵)으로, 8월 20일에는 간성(杆城)을 지나 금강산(金剛山) 등을 유람하고 9월 29일 서울 마포까지 60여 일간 유람한 일기의 작품으로『동행일기(東遊日記)』와 시를 남겼다. 이 작품은『성담선생문집(性潭先生文集)』 권12 잡저(雜著)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간성지역의 고을에서 거리 40리에는 청간정(淸澗亭)이 역로(驛路) 옆에 있다. 바다를 임하여 넓게 탁 트였으니 둘러보면 바위 끝에 기이함이 있다. 편액은 우암 송시열의 필적이 라 전하며. 지나가는 곳에 역참(驛站)이 모두 객관으로 있는데. 마침 호수 가운데 있는 원사(院舍)와 같았다. 이 정자는 편리상에 객관으로써 지어졌다. 예쁜 누(樓)가 있는데 누의 이름은 만경(萬景)이다. 곁채와 이어 삼았으며 높이 솟아올랐다”고 했다.

3. 첨의헌의 「동행일기(東行日記)」= 첨의헌 조필감(趙弼鑑)의 『첨의헌유고(瞻의軒遺稿)』 「동행일기(東行日記)」는 1802년(순조 2) 59일간 여행한 기록이다. 출발과 노정을 보면 처음 부여를 출발하여 삼척에서 조카 결혼식을 마치고 나서 금강산 유람 길에 나섰다.
내용을 보면, “강릉, 낙산을 지나 5월 15일에 간성(杆城) 땅의 청간정(淸澗亭)에 이르렀다. ‘청간정 남쪽에 한 층이 높은 건물이 있으니, 만경루(萬景樓)’라고 하였다. 앞쪽으로는 큰 바다를 임하여 가슴이 시원하도록 탁 트이어 즐기며 놀만한 곳이기는 하나, 그 밖의 다른 경치는 볼만한 것이 없었다. 나는 바다를 따라서 동쪽으로 700~800리(약 280~320㎞)의 지경 안에 이름난 경치가 얼마나 많은지 아직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청간정이 관동팔경의 한 곳으로 들어 있는 것은 무슨 뜻인가?”라고 했다.
조필감은 다른 기행문의 저자들에 비해 청간정에 대한 비판의 모습이 다소 보인다. 청간정보다는 만경루의 정경이 더 크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청간정이 관동팔경에 들어간 이유를 모르겠다고 의문을 던지고 있다.

4. 성재(成齋)의 「금강관서(金剛觀敍)」 =
조병현(趙秉鉉, 1791~1849)은 그의 문집인 『성재집(成齋集)』에 실려 있는 「금강관서(金剛觀敍)」는 동생 조병황(趙秉璜), 친구 이의철(李懿喆), 종자(從子) 조덕겸, 선노(仙奴)와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기행문으로, 출발과 노정을 보면 그들은 1819년 9월 6일 도성을 출발하여 10월 7일 한 달여일 동안 유람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인용문의 기록을 살펴보면, “오후 무렵 청간정 5리(里)에 청간정은 푸른 바다에 임하여 중년(中年)에 이건하였으며, ‘청간(淸澗)’이란 두 글자는 읍정(邑亭)의 옛 명칭을 취한 것으로 이내 이 정자의 제명을 따랐다. 바다 가운데 임해 만경루(萬景樓)가 있는데 문설주에 편액을 걸고 앞사람들의 제명을 노래하였다. 푸른 물결은 앞을 누르고 긴 바람은 어깨를 부딪치니. 드넓고 호걸스럽네”라고 기록돼 있다.
조병헌의 「금강관서(金剛觀敍)」는 19세기초 청간정의 역사성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다. 간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후 정양(鄭瀁)이 다시 중수하기 까지 과정을 중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청간(淸澗)이라는 글자는 청간역(淸澗驛)에서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표현해주고 있으며, 청간정은 개인이 만들 정자가 아닌 고을에서 사신이나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청간정 가까운 위치에 만경루(萬景樓)가 있는데 문설주에 편액을 걸어 놓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시 한수 씩 짓고 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5. 연재(淵齋)의 「동유기(東遊記)」= 송병선(宋秉璿, 1836~1905). 여기에 실린 「동유기(東遊記)」는 『연재선생문집(淵齋先生文集)』20권 잡저(雜著)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작가는 1868년 3월 봄에 숙부 송익수(宋翊洙), 김용혁(金龍赫), 이치달(李致達), 박승호(朴承浩) 등과 함께 금강산(金剛山)과 영동 지방을 유람하고 지은 것이다.
내용을 보면, “청간정은 좌우로 에워싸여 있고 앞에는 큰 바다가 임하여 만경창파(萬頃蒼波)를 이룬다. 하늘은 끝이 없이 펼쳐져 난간에서 기대어 바라보며 영인(令人)의 가슴이 확 트이어 허공으로 바람을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중략> 남쪽 꺾어진 부근에 작은 누각이 있는데 만경이라 불렀다. 예로부터 문정공(송시열 諡號)의 액자가 있었는데 흉인이 있던 커다란 필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쪽에는 석벽이 있는데 바다 위로 우뚝 솟아 임하였으니 모두가 만경대라고 이른다”고 했다.
송병선은 「동유기(東遊記)」에서 청간정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 청간정 좌측으로 만경대, 우측으로 만경루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며 앞에는 바다가 있어 만경창파에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 정자는 간성군수 최천이 중수하였으며 정양(鄭瀁)이 예전처럼 다시 중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남쪽으로 꺾어진 부근에 만경루가 있고 동쪽으로는 우뚝 솟은 것이 만경대를 표현하였다.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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