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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성준길 추사비 18기중 가장 오래된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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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55> 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④ 고성지역의 금석문Ⅲ 간성 와우산(臥牛山)에 위치한 선정비들의 내력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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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21일(화) 16:26 74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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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군수 성준길 추사비 | ⓒ 강원고성신문 | |
④ 군수 성준길 추사비(郡守 成俊吉 追思碑)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상1리 293-1(GPS : N38˚22´39.8˝ E128˚28´06.3˝)
[연 대] 1625년(인조 3)
[크 기] 비신 높이 66㎝ 너비 21㎝ 두께 18㎝
비좌 가로 78㎝, 세로 49㎝, 높이 13㎝
[내 용] 군수 성준길(成俊吉, 1579~1624)은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창녕, 자는 수재(秀哉)이다. 1608년(선조 36) 무신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615년(광해 7년) 간성 군수(杆城郡守)로 부임하여 3년간 역임하면서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었으며, 1616년 간성사람 최운익(崔雲翼)을 무과(武科)에 급제시켰다.『왕조실록(王朝實錄)』 광해군 9년(1617, 만력45) 12월 10일 신축 기사에 따르면 “이조가 아뢰기를, 강원 감사 서장에서 운운하였습니다. 흡곡현령(흡谷縣令) 이후근(李厚根), 원주 목사(原州牧使) 신감(申鑑), 간성 군수(杆城郡守) 성준길(成俊吉), 금성현령(金城縣令) 이부(李阜)등이 정사를 잘한 사실에 대하여 본도 감사가 모두 포장할 것을 아뢰었으며 하니, 모두에게 가자하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618년(광해 10년) 무오 9월 12일 길주 목사(吉州牧使)와 1623년 4월 안변 부사(安邊府使)·영변 부사(寧邊府使)·경기 수사(京畿水使) 등을 제수하였다. 1624년 (인조 2년) 갑자 1월 25일 이괄(李适) 란(亂)에 연루되어 의금부에 잡혀 참형(斬刑)되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인조 5년(1627, 天啓7) 4월 7일 계묘 기사에 따르면, 성준길(成俊吉) 등을 석방하여 벼슬(官爵)을 회복시키라는 전교를 내렸다. 이때 관작(官爵)이 회복(回復)되었다. 이 비는 와우산 중턱에 위치한 18기의 비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비석으로 비신의 형태는 위쪽을 둥글게 다듬은 월두형(月頭形)이다. 비좌는 네모난 방형(方形)으로 현재 시멘트로 그 형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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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굼수 김용 영세불망비 | ⓒ 강원고성신문 | |
⑤ 군수 김용 영세불망비(郡守 金鎔 永世不忘碑)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상1리 293-1(GPS : N38˚22´39.8˝ E128˚28´06.3˝)
[연 대] 1870년(고종 7)
[크 기] 비신 높이 100㎝, 너비 37㎝, 두께 18㎝
대좌 가로 96.5㎝, 세로 57㎝, 높이 18㎝
[내 용] 간성군수 김용(金鎔)은 『수성읍지(수城邑誌)』, 미상. 1897년 편찬, 선생안(先生案)에는 “자는 장백(莊伯)이며 1821년(순조 21) 6월 30일에 문의현감(文義縣監)에서 이배되어 1825년(순조 5) 6월까지 간성군수를 지냈으며, 간성군수 재임 중에 열산관(烈山館)을 대진(大津)에 옮겨지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비는 현재 와우산 중턱에 다른 선정불망비와 함께 있다. 본래 건봉사에 위치해 있던 것을 1986년 이후에 현재의 위치에 옮겨 왔다.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蹟)』에 의하면 “1822년(순조 22)에 본 고을 군수 김용(金鎔)이 본사(건봉사)에서 바치는 두꺼운 종이 3권, 흰 종이 7권, 잡지 30여권, 대나무 그릇을 만드는 농골(籠骨) 4타를 덜어 주었다”고 한다.
이 비석은 형태는 비신의 위쪽을 둥글게 다듬은 월두형(月頭形)이다. 비좌는 네모난 방형(方形)으로 현재 시멘트로 그 형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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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통훈대부 박근형 불망비 | ⓒ 강원고성신문 | |
⑥통훈대부 박근형 불망비(通訓大夫 朴根亨 不忘碑)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상1리 293-1(GPS : N38˚22´39.8˝ E128˚28´06.3˝)
[연 대] 근대(1920년), 3월
[크 기] 비신 높이 96.2㎝, 폭 39㎝, 두께 10.7㎝
대좌 가로 72㎝, 세로 41㎝, 높이 15㎝
[내 용] 통훈대부 박근형의 불망비는 토성면 부근에 있던 것을 1986년 이후에 와우산 중턱에 옮겨와 이 지역의 다른 선정불망비와 함께 있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동헌(東軒)을 건립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을 잊지 못하여 이 비를 건립하게 된 것으로 추측한다.
비석은 개석(蓋石)이 없이 비신만 있는데, 화강암 계통의 암질이며, 비의 윗부분은 밋밋한 사선으로 처리한 원수형(圓首形)에 가깝다. 기단은 네모난 방형의 시멘트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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