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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군민들이 건립…송재의 불망비는 건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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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57> 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④ 고성지역의 금석문Ⅴ 간성 와우산(臥牛山)에 위치한 선정비들의 내력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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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11일(화) 10:02 77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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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⑩ 군수 구음 청백거사비(郡守 具음 淸白去思碑)
〈비문 전면〉
군수구공음청백거사비
(郡守具公음淸白去思碑)
〈비문 후면〉
병자12월 일립(丙子十二月 日立)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상1리 293-1(GPS : N38˚22´39.8˝ E128˚28´06.3˝)
[연 대] 1696년(숙종 22), 12월
[크 기] 비신 높이 112㎝, 너비 55.5㎝, 두께 15㎝
비좌 가로 71㎝, 세로 42㎝, 높이 16㎝
[내 용] 군수 구음(具음, 1614~1683)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차산(次山)이며 호는 명곡(明谷)이다. 증조부는 사민(思閔), 아버지는 인지(仁至)이다. 이식(李植)의 문인이며 외삼촌과 조카 관계이다.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52년(효종 3)에 참봉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669년(현종 10)에 장령,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678년에 다시 장령을 거쳐 헌납이 되고, 이듬해 사간·승지에 이어 간성군수(杆城郡守)를 지냈다. 저서로는 명곡집(明谷集)이 있으며 간성에 관련한 시가 많이 남아있다.
1680년(숙종 6) 간성 군수로 역임하는 동안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재정을 관리하는데 마음을 썼으며 도중에 억울한 일도 있었는데 이웅징(李熊徵)의 묘갈명(墓碣銘)에 따르면, 그때 선생과 이름이 같은 사람이 죄인과 시를 주고받은 일이 있었으므로 언관(言官)이 선생으로 잘못 알고 추고(推考)만을 명하였으나, 선생이 자진 출두해서 사실 규명하고서야 사건이 마침내 밝혀졌다고 한다. 선생이 이일을 계기로 벼슬을 버리고 몇 해 동안 몸조리 하다가 운명하였으니 이 때가 계해년(1683) 12월 7일이었다. 여러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얼음처럼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일관하였다.
이 비는 1696년(숙종 22) 12월에 간성군민들에 의해 읍내에 건립되었는데, 현재 와우산 중턱에 이 지역의 다른 선정불망비와 함께 있다. 비석은 개석(蓋石)이 없이 비신만 있는데, 화강암 계통의 암질이며, 비의 윗부분은 둥글게 처리한 원수형(圓首形)이고. 비좌는 네모난 방형의 시멘트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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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⑪ 군수 김시보 영세불망비(郡守金時保 永世不忘碑)
〈비문 전면〉
군수김공시보영세불망비
(郡守金公時保永世不忘碑)
〈비문 후면〉
숭정후3월 일립(崇禎后三月 日立)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상1리 293-1(GPS : N38˚22´39.8˝ E128˚28´06.3˝)
[연 대] 1722년(경종 2), 3월
[크 기] 비신 높이 117㎝, 너비 55㎝, 두께 24.4㎝
대좌 가로 72㎝, 세로 45㎝, 높이 16㎝
[내 용] 군수 김시보(金時保, 1658∼1734)는 조선 후기의 문신·시인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경(士敬)이며 호는 모주(茅洲)이다. 이조 참판 김광현(金光炫)의 증손이며, 김성우(金盛遇)의 아들이다. 진사를 거쳐 음보(蔭補) 벼슬을 하여 공조 좌랑·간성 군수·무주 부사 등을 거쳐 도정에 이르렀다. 대사성을 지내다가 1689년 기사환국 이후 은거한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으로 『삼연집(三淵集)』을 쓴 김창흡(金昌翕) 등과 교류하면서 시를 많이 썼다. 저서로는『모주집(茅洲集)』10권이 남아 있다.
1712년(숙종 38) 12월 18일에 간성 군수로 부임하여 이듬해에 윤(潤)5월 5일에 이배되었다. 간성군수 재임 동안 선비들을 양성하고 학문의 일으키는 등 공적을 남겼다.
이 비는 1722년(경종 2) 3월에 간성군민들에 의해 읍내에 건립되었는데, 현재 와우산 중턱에 이 지역의 다른 선정불망비와 함께 있다. 비석은 개석(蓋石)이 없이 비신만 있는데, 화강암 계통의 암질이며, 비의 윗부분은 둥글게 처리한 원수형(圓首形)이고. 비좌는 네모난 방형의 시멘트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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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⑫ 군수 송재의 영세불망비(郡守宋在誼永世不忘碑)
〈비문 전면〉
군수송공재의영세불망비
(郡守宋公在誼永世不忘碑)
〈비문 후면〉
신묘12월 일립(辛卯十二月 日立)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상1리 293-1(GPS : N38˚22´39.8˝ E128˚28´06.3˝)
[연 대] 1831년(순조 31), 12월
[크 기] 비신 높이 99㎝, 너비 40㎝, 두께 17㎝
대좌 가로 76㎝, 세로 44㎝, 높이 14㎝
[내 용] 군수 송재의(宋在誼, 1783~?)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의지(宜之) 이며 호는 수제(修齊)이다. 1843년(현종 9) 식년문과와 1846년 문과 중시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간성군수로는 1825년(순조 25) 7월 16일에 부임하여 1828년 5월 서울에 있을 때 체직되었다. 『건봉사급건봉사말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史蹟), 1928년, 이대련발행』에 따르면 재임 중인 1826년(순조 26) 본사(乾鳳寺)의 잡역(雜役)을 덜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朝鮮純祖二十六丙戌,本郡守宋在誼-本寺의 雜役을 減하다).
이 비는 특히 1831년(순조 31) 12월에 건봉사 승도들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현재 와우산 중턱에 이 지역의 다른 선정불망비와 함께 있다. 비석은 개석(蓋石)이 없이 비신만 있는데, 화강암 계통의 암질이며, 비의 윗부분은 밋밋한 사선으로 처리한 원수형(圓首形)에 가깝다. 비좌는 네모난 방형의 시멘트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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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 ⓒ 강원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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