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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문에 소식이 끊긴 북쪽의 가족이 궁금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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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17] 나무할아버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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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6일(화) 10:36 81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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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자원하여 군국이 되었다. 빼앗겼던 서울을 다시 찾고 북쪽으로 쳐 올라가면서 할아버지는 고향 마을 근처를 지날 수가 있었다. 부모형제 소식을 알아보았으나 전쟁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 외에는 가족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나자 곧 제대를 하였다.
제대 후 부산에서 조그만 가게를 얻어 장사를 시작하였다. 조그만 고물상이었는데 의외로 수입이 괜찮았다. 돈은 한푼 두푼 늘어갔고 돈이 모이는 재미에 고향 생각도 잊어버리고 일만 열심히 하였다.
할아버지는 고물상을 팔고 친구가 경영하던 신발공장을 샀다. 조그맣게 시작한 신발공장은 그 규모가 해마다 커졌다. 할아버지의 신발이 품질이 좋다고 해외에도 알려져 수출을 하는 회사로 커졌다.
결혼을 하여 아들딸도 낳았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늘이 있었다. 전쟁 때문에 소식이 끊긴 북쪽의 가족이 궁금해서였다.
“부모님과 동생들은 살아 있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보고 싶은 생각이 사무쳤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동생들과 산에 소풍 가서 찍은 빛바랜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무릎을 ‘탁’하고 쳤다.
“그래, 바로 그거야!”
할아버지는 회사 경영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서서히 회사일에서 손을 놓기 시작하였다. 할머니와 살림집을 서울로 옮기고 복덕방 아저씨들과 휴전선 가까운 산을 매일 돌아다니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산을 내려오셨다. 며칠 후 할아버지는 파주의 어느 야산을 꽤나 많이 사셨다.
그리고 그곳에 나무동산을 가꾸기 시작하셨다.
나무동산의 출입구 푯말에 이런 글을 써서 붙이셨다.
“이 나무동산에 심겨진 나무는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평화를 안겨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자식을 키우듯 온 정성을 다해 나무를 보살피셨다. 동산의 나무들은 해마다 굵은 나이테를 감아가며 쑥쑥 자랐다.
가끔 학교나 관청에서 나무를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무를 나누어주기도 하셨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자식을 머리 보내는 것처럼 서운해 하셨다.
할아버지가 제일 아끼는 나무는 수년 전 서해안 간척지에서 옮겨다 심은 느티나무들이었다. 간척지에서 옮겨올 때에는 바싹 메마른 볼품없는 어린 나무들이었는데, 이곳에 와서 키가 훤출하게 자라고 줄기도 튼실한 어른 나무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나무를 관리하는 아저씨들을 불러 가끔 느티나무들을 정성껏 보살피셨다. 그리곤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씀하셨다.
“얘들아, 멋지게 자라나야 한다. 너희들은 이다음, 정말 좋은 곳에 심겨지게 될 것이야. 내가 죽기 전에 그 일이 이루어져야 할 텐데….”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의 눈은 촉촉이 젖곤 했다.
매미 울음소리가 동산을 흔드는 무더운 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선들바람이 불고 가을 풀벌레 소리가 동산 가득 넘쳐 울렸다.
마을 사람들이 커다란 정자나무 밑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허 참, 그렇게 가깝고도 쉬운 길이 왜 이제야 뚫렸는지 원.”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 나무할아버지의 소원도 이루어질 것 같아요.”
“지난 광복절에 남쪽과 북쪽 이산가족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만났고 이제 또 좋은 일이 있대요.”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도가 다시 예전처럼 생겨난대요.”
“그럼 이제 기차를 타고 신의주에 가볼 수 있겠구먼.” “백두산도 가겠어요.”
마을 사람들은 신바람이 나서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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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황연옥 칼럼위원 | ⓒ 강원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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