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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 효도·세상 뜨니 시묘(侍墓), 어버이 섬기기 극진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64> 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⑤ 고성지역의 정려각 Ⅰ간성의 정선 전씨(旌善全氏) 3세 효자각

2013년 03월 05일(화) 10:07 93호 [강원고성신문]

 

↑↑ 간성읍 간촌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정선 전씨 전봉상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 간성향교에서 간성읍 방향 46번 국도를 따라 약 300m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내부에는 전봉상 효자비와 함께 전공순, 전재후의 효자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 강원고성신문

고성은 충, 효, 예를 덕목으로 살아온 선현들의 혼이 깊이 서려있는 곳으로 효자비와 열녀비를 비롯하여 일제강점기에 독립정신이 투철한 위인이 많이 배출된 충절의 고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각 면별로 효자가 많아 여러 곳에 효자비가 세워져 있는 등 후손들에게까지 그 정신이 계승되어 오는 곳이다.
한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역의 인물편이다. 인물은 대체로 후손들에 의해 좋은 이미지로 만들어지거나 집안의 족보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 이런 자료만 가지고 평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하기에 필자는 현존하고 있는 고성지역의 효자비와 열녀비에 관하여 조사하였다. 다소 부족한 자료로 인하여 빠진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후손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방향에서 정리했으며, 특히 조선시대 읍지나 각종 지리지에 기록된 사실만을 가지고 인물을 평가하는 것으로 하였다.
먼저 조선시대의 효자비와 열녀문의 건립 이유와 의미 및 건립 과정 등에 대하여 알아보고, 이번호부터 5회에 걸쳐 우리지역의 정려각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정려각의 의의(意義)

정(旌)은 왕의 뜻을 전하거나 왕명을 받은 자가 지니던 깃발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왕명을 적은 현판(懸板)까지 포함한다. 려(閭)는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문(門)인데 정을 걸어 놓은 건물을 뜻하게 된다. 정문(旌門)이라고도 해서 효자문, 열녀문이라는 말도 자주 쓴다. 비각처럼 생긴, 홍살을 두른 한 칸짜리 건물형태가 대부분이지만 대문 위에 걸기도 한다.
대부분 효행의 경우는 부모 간병 시에 약은 물론이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리거나 대변을 맛보며 최선을 다하는 경우가 많다. 잉어·수박·대추·무순·금 두꺼비·꿩알·오골계 등 귀하거나 철이 맞지 않는 것들을 구해다 드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3년 시묘는 거의 기본이다.
열녀의 행적은 남편을 따라 죽거나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무래도 오늘날에도 현실에 맞는 효행과 열녀의 행적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의미가 있는 일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정려각의 포상

충신·효자·열녀 포상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인물의 행적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인물의 행적이 세상에 알려져 지역별로 사족이나 유생들 사이에 포상의 당위성이나 필요성 등이 공존화 되어야만 한다. 물론 후손이나 지역민의 필요에 의하여 행적이 상실되는 경우 외에 국가가 정기적으로 혹은 특정 시기에 국가적 필요에 의하여 삼강인물의 행적을 찾아내어 포상하기도 하였다.
인물의 행적이 뛰어나고 향중에서 공론이 형성되면 발론 자가 중심이 되어 연명으로 정려 포상을 상신하게 되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문서가 천장(薦狀 : 추천서)이다. 이 천장은 대개 군내 유생들의 연명으로 수령에게 올리는 것이 보통이고, 수령은 이를 상급기관인 감영(관찰사)에 이관하여 예조에 품의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추천과 청원의 절차가 이루어지면 해당 부서인 예조에서는 삼강 행적에 대한 사실 여부를 현지 지방관에게 조사토록 하며, 실적이 확인되면 왕에게 아뢰어 허락을 받아 포상을 하게 된다. 가장 영예로운 것이 정려의 건립을 하명 받는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을 통하여 정려가 건립되거나 정문이 건립되는데, 명정 현판도 이때 작성된다. 명정(銘旌) 현판문의 형태는 먼저 ① 충신·효자·열녀의 구분 ② 포상을 받은 사람의 신분과 성명 ③ 명정(銘旌)년대의 순으로 기록된다.
정려의 건립비용은 예조의 입안에 관청에서 재목이나 기와, 목수나 장인들을 지급하라는 지시가 있는 경우도 있고, 후손들이 직접 재물을 모아서 건립하는 경우도 있다.
삼강 포상의 과정을 거쳤다고 하여 모두 정려 건립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급복이나 증직을 받았으나 정려 건립까지는 이루지 못한 사례들도 많다.
충·효·열의 행적이 탁월한 경우 대체로 정문·정려·복호 등의 포상형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행적의 수준과 성격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포상이 이루어졌다.

↑↑ 효자 전봉상의 묘지

ⓒ 강원고성신문



간성의 정선 전씨(旌善全氏)

정선 전씨가 간성에 들어온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의하면 강원도 간성군의 토성(土姓)편 열산현(烈山縣) 속성(屬姓)조에 전씨(全氏)가 살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뒤 신증동국여지승람(45권, 1530) 성씨(姓氏)〉편에는 간성과 열산현에 함께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정선 전씨 가문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고성군 간성읍 간촌리(艮村里)는 백제 개국공신 환성군(歡城君) 섭을 시조로 하는 36세손(世孫) 전영손(全永遜)에 의하여 1454년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단종(端宗) 때에 통훈대부(通訓大夫), 평릉도(平陵道) 찰방(察訪)을 지낸 영손은 1454년(단종 2) 단종이 임금에서 물려나자 영월(寧越)에 따라 왔다가 영의정(領議政) 문충공(文忠公) 황보인(皇甫仁)과 친밀(親密)한 관계로 화(禍)를 피해 간성군(杆城郡) 용암동(龍巖洞, 간촌리의 옛 지명)에 은둔하게 되면서 입간 시조(入杆始祖)가 되었다고 한다.
간성(杆城)으로 들어온 이후로 효자 전봉상을 비롯한 두 명의 효자가 있었는데 그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효심이 얼마나 깊고 깊었나 하는 것이 오늘에 사는 후손이나 만인에게 큰 교훈이 아닐 수가 없다.
그 후 자손들이 이 거룩한 조상의 뜻을 받들어 1906년 정축 1칸에 팔작지붕의 효자각을 짖고 ‘봉상, 공순, 재후’ 세 분을 모셨으며 그 후대에도 많은 효자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근자에 와서는 영손의 후손 14대손 전석준(全錫俊)·전승모(全承模)는 금강산 건봉사에 은신(1809~1943년)하여 금암선생이 주도하는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조직된 갑계(甲契: 무오(戊午), 갑자(甲子), 임오(壬午), 을묘(己卯) 계(契) 등의 모임에 참석하여 왔으며 현재까지도 후손들이 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자손(子孫)들이 번연(蕃衍)되어 간성 간촌, 교동, 해상, 어천, 동호, 죽왕 야촌에 나뉘어져 세거(世居)하고 있다.

정선 전씨의 3세 효자각

〈고성군지, 1998)〉에 따르면 정선 전씨 3세 효자각은 간성향교에서 간성읍 방향 46번 국도를 따라 약 300m 정위치하는 효자 전봉상의 비석과 비각으로 비각은 정측면 각 1칸이며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이다.
비각의 내부는 홍살문으로 양분하여 안쪽에는 효자비 3기를, 바깥쪽은 쪽마루를 놓았다.
3기의 효자비 중 가운데 것은 정선 전씨 문중 46대손 전봉상의 것으로 ‘효자전봉상려(孝子全鳳祥閭)’라 새겨져있다. 동쪽인 우측은 51대손 전공순의 것으로 ‘효자전공순려(孝子全孔淳閭)’, 그 맞은편의 것은 54대손 전재후의 것으로 ‘효자전재후려(孝子全載厚閭)’라고 새겼다. 모두 1906년(광무 10) 10월에 중건하였다.
비석은 모두 화강암 계통의 암질이며 비의 윗부분은 둥글게 처리한 월두형(月頭形)이고, 비의 크기를 설명한 순서대로 보면 112×48×18㎝, 115×48×16㎝, 115×44.5×11.5㎝이다.

↑↑ 전봉상 효자비

ⓒ 강원고성신문



효자 전봉상(全鳳祥)

정선 전씨 46대손이자 영손의 9대손이다. 자는 덕순(德順)이며, 호는 경재(敬齋)다. 할아버지는 희인(熙仁)으로 아버지는 참봉(參奉) 벼슬을 한 순신(順信)이다. 부인은 부호군(副護軍) 희진(希縉)의 딸이며 해은(海隱) 김자발(金自潑)의 누이 동생이다. 관직은 훈도(訓導)를 지냈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되었다. 1529년(중종 24) 3월 3일생으로 1590년(선조 23) 3월 17일 돌아가시었다.
〈간성읍지(杆城邑誌)〉, 〈관동읍지(關東邑誌)〉, 〈강원도지(江原道誌,1941)〉에 따르면 공(公)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비나, 눈이 내리고 칠흑 같은 밤에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으며, 항상 보살펴주고 치료해주는 일이 늘 즐거운 얼굴이었으며, 혹은 볼 일이 있어 밖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부모님의 근심걱정으로 대변의 맛을 보고 약을 지어 드렸으며, 과일을 먹고 싶어 하는 부모님을 위해 겨울철에도 따뜻한 땅을 찾아다니며 여러 차례 봉진(奉進)하였는데 아무런 기색도 없자 땅에 엎드려 하늘에 빌었다.
마침 한 노인이 효험을 얻을 수 있는 방법과 장소를 가르쳐 주자, 의당 15세인 봉상은 병든 아비에게 효험이 있다는 잉어를 드릴 생각으로 찾아가니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라 물가에 파도가 높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뇌성벽력(雷聲霹靂)을 치면서 한 조각의 바다구름이 비를 만들어 급히 내리더니 두 마리 잉어가 공중으로부터 땅으로 뛰어 오르자 옷의 안찝에 넣어 가지고 돌아와 봉양하였다고 한다.
천명(天命)도 한계가 있는 법, 갑자기 돌아가시니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7일 동안 살아있게 하고 돌아가시자 초막에서 3년 동안 살았으며, 땅에는 기이하게 샘이 솟고 밤마다 호랑이가 와서 보호해 주었다. 세상에서 어버이 섬기기를 하늘이 냈다 일컫는데 이 일이 알려져 1610년 정려(旌閭)를 내리고 비(碑)를 세웠다. 군(郡)의 서쪽 교동(校洞) 중간 길가에는 그의 행실(行實)을 적어 놓았다.

효자 전공순(全孔淳)

봉상의 후손으로 정선 전씨 51대손이다. 자는 찬윤(燦淪)이며 호는 해당(海堂)이다. 1805년(순조 5)에 태어났으며 1886년(고종 23)에 돌아가시었다.
〈강원도지江原道誌, 1940)〉에 따르면 공(公)은 어려서 천성이 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봉양하는 마음이 한결같았다고 한다. 부친이 병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목숨을 연장하게 하는 등 항상 하늘에 빌면서 오래사시기를 기원했다. 돌아가시자 시묘를 3년 동안 하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정려를 내렸다. 유림들이 그를 표창하는 비를 1906년(광무 10)에 세웠다.

효자 전재후(全載厚)

봉상의 후손(後孫)으로 정선 전씨 54대손이다, 자는 도경(道敬)이며 호는 위재(渭齋)이다. 1858년(철종 9)에 태어났으며 1900년(광무 4)에 돌아가셨다. 묘는 차동(次洞) 건좌(乾坐)에 있다.
〈강원도지江原道誌, 1941)〉에 따르면 공(公)은 매우 어린 나이에 어버이 섬김에 효심이 지극하여 나이 겨우 17세에 모친(母親)이 병이 들자 하늘에 빌며 손가락을 잘라 생명을 연장케 하였고, 시묘를 3년 동안 상복과 띠를 벗지 않았으며 집에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대대로 효자가 났다고 칭송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정려를 내렸다. 유림(儒林)들이 그를 포창(褒彰) 하는 비를 1906년(광무 10)에 세웠다.

↑↑ 정선 전씨 선영도

ⓒ 강원고성신문



※이 글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성지역의 향토문화에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않았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제호 선생께서 남긴〈풍암2호〉수록된 「효자 전봉상 관련 연구」를 토대로 삼았음을 밝힌다. 고 전제호 선생은 정선전씨의 후손이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145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
『수성지(水城誌, 1633)』
『간성읍지(杆城邑誌, 1748)』
『관동읍지(關東邑誌, 1871)』
『강원도지(江原道誌, 1941)』
『조선환여승람(고성군편, 1938)』
『풍암2호(豊巖2號, 2010』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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