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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렬의 經典이야기 ‘공자왈맹자왈’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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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08일(수) 11:36 113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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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老子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자왈 노자안지하고 붕우신지하며 소자회지하니라
“노인들을 편안하게 하여 드리고, 벗들에게는 신의를 지키며 젊은이를 따뜻하게 감싸주려 해야 하느니라.”
노인들을 편안히 해 드리려는 마음은 내가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뚜렷한 사실 때문은 아니다. 내가 귀하게 여기던 조상이나 부모님이 모두 노인이 되었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분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의 표현이라 하면 아니될까.
노인이 허약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거동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인생의 무상함보다는 그 들이 우리에게 쏟아온 정성과 사랑이 느껴지고 측은한 마음이 저절로 솟기 때문이다. 벗이란 나에게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벗의 삶에 즐거움이 되어줄 수도 있음을 미처 모르고 넘어가기도 한다. 종종 벗에 의하여 이익과 해로움이 오갈 때는 반드시 서로 믿는 마음이 소멸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사이가 곧 와해되고 말 것이다.
나이가 든 사람은 왜 젊은이를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하는가? 나이든 사람은 세상을 먼저 살아오면서 많고 적은 난관과 고난의 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 왔기 때문에 모든 일에 젊은이보다 지혜로운 혜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는 성장 과정에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미흡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혜를 가지고 노련한 경험과 경륜이 있는 노인이 미숙한 젊은이를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명이 발달된 현대에 와서 옳다고만 하는 것에 의문이 든다. 나는 과연 노인으로서 젊은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보듬어 주는 사랑을 베푼 적이 있는가 의문이다.
그들의 모자란 부분을 조금이라도 채워주기 위해 노력을 했으며 그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잡이로서의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해 왔는가를 되새김하여 볼 일이다. 한편으로 너무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엄하게 행동함으로서 젊은이를 따뜻하게 감싸는 일에 간과해 왔음을 후회한 적은 없는가 말이다.
이러한 일에 조금도 후회가 없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젊은이들로 부터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이며 편안한 자리를 제공받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할 도리를 다하고 내가 할 의무와 권리를 다했을 때만이 젊은이들이 주는 안일함의 자리에 편히 임할수 있을 것이며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편안한 자리를 취하기 위함으로서가 아니라 나이 먹은 선지자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살이의 선배로서의 할 일을 해야 할 것이니라. 댓가를 바라는 인식에서 오는 행동이 아니라 선지자로서의 당연한 일로 여김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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