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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이야기 / 아버지의 양말

2014년 04월 22일(화) 09:00 120호 [강원고성신문]

 

↑↑ 김향숙 칼럼위원(시인)

ⓒ 강원고성신문

내 양말 서랍장을 열면 먼저 눈에 띄는 회색 양말 한 켤레가 있다. 친정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때의 치열하고도 따뜻하신 생애와 차디찬 발의 감촉을 동시에 대하게 되는 아름다운 흔적.
한 밤중 아버지의 위급하심을 남동생에게 전해 듣고 친정으로 갔을 때는 벌써 응급차로 모시고 병원으로 떠난 뒤였다. 아버지께서는 주무시다가 밤 두 시쯤 어머니를 깨우시고는 일어나면서 그대로 어머니의 품에 안기신 채로 의식을 잃으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고 있던 남동생을 불러 응급차를 부르라고 하셨고 이미 임종을 예견하시고는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평소에 늘 부르셨던 ‘주안에 있는 나에게’,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등의 찬송가를 부르며 옷을 갈아입혀드리고 응급차로 실어 보내셨는데 나중에 보니 양말을 꺼내놓고 미처 신겨드리지 못했다고 내 손에 들려주셨다. 남편과 서둘러 속초에 있는 병원의 응급실로 갔을 때는 이미 아버지는 숨을 거두신 뒤였고 차디찬 발에 양말을 신겨 드리려하자 직원들이 손을 내 젓는 바람에 그냥 내 외투주머니에 넣어두고 말았다.

양말을 미처 신겨드리지 못해

숨지진 뒤 잠시 뵌 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이 깨끗하고 평안해 보이셨다. 경황 중에도 아버지의 입술 아래쪽에 주황색의 반점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손수건으로 닦아드렸는데 잘 지워지지 않은 채로 직원들이 흰 보를 덮어 영안실로 모셔갔고 나중에 남동생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저녁식사를 잘 드시고 밤 아홉시 쯤 홍시감 하나를 맛있게 다 드셨는데 아마 그 때 흘리신 것 같다고 했다.
평소에 무릎이 아프셔서 많이 걷기 힘들어 하셨을 뿐, 큰 병원에도 한 번 가 보신 적 없으셨던 터라 우리는 아버지께서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므로 많이 놀라고 안타까웠다. 그나마 장례기간 중 주일이 들어있어 하루를 더 연장하는 동안 우리는 아버지를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가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우리에게 하실 이야기들을 일일이 기록해 놓으셨고 미국에서 급히 들어온 여동생 내외를 비롯한 온 가족이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그 편지 같은 유서들을 함께 눈물로 읽으며 그 마음을 나누었다.
요즘도 우리 여섯 남매들은 만날 때마다 <아버지의 어록 베스트 10>을 즐겨 이야기한다. 사람들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늘 일러주셨고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좋은 일을 만났을 때에도 ‘새옹지마’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시며 중심을 진중하게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어릴 때 학교에 가서 필통을 열거나 교과서를 펼쳤을 때 아버지가 써서 넣어두신 쪽지를 자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주로 ‘촌음을 아껴 써라’, ‘물건을 아껴 써라’,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등이었고 다 자란 뒤에도 다른 도시에서 지내다 집에 돌아올 때는 절대로 빈손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한 번은 멀리서 대학을 다니던 막내 남동생이 겨울방학을 맞아 거의 밤 열두시가 가까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게 문들이 다 닫혀서 빈손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염려했던 우리형제 모두의 예상대로 막내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여지없이 밖으로 쫓겨났다. 추운 한겨울 밤에 온 동네가게를 찾다 한참 만에 꽁꽁 얼어 돌아온 그에게는 다행히도 식빵 한 봉지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보내준 돈으로 공부하고 먹고 살다 오는데 나에게 빈손으로 오는 것은 옳지 않다’ 고 하셨고 그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감사헌금의 원리를 더욱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들 눈물을 목으로 넘겨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문제만 아니라면 절대로 하시지 않으셨을 것 같은 여러 가지 돈이 될 만한 일들을 끊임없이 구상하고 실행 하셨다. 여섯 남매를 이어서 차례로 대학에 보내시느라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특히 수업료 납입고지서를 받으신 아버지의 한숨 섞인 목소리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의 어록을 이야기하던 중 ‘벅차다’라는 뜻의 평안도 고향 사투리로 하시던 이 대목에 와서 우리는 늘 말을 잊었다. ‘배차누나.’ 모두들 눈물을 목으로 넘기는 순간인 것이다. 온 힘을 다하여 우리의 교육에 애쓰시던 아버지의 힘겨운 한계가 온 몸으로 전달되어 오던 아찔한 아픔.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중년이 지나서부터 상업으로 생계를 이어오신 아버지는 일흔이 넘으셔서는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나이가 되셨다면서 남의 빚보증을 서시는 등의 돈 거래를 더 이상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오히려 머리카락은 더 검어지시고 눈도 밝으셔서 안경 없이 여러 종류의 신문을 거의 매일 아침마다 통독하시곤 했다. 산소를 쓰는 일과 비석에 새길 내용까지 다 적어 두시고 때로는 덤으로 사는 삶의 고단함을 말씀하시기도 하셨지만 한 가장으로서의 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다 마쳤음을 늘 감사로 여기시며 온가족들이 다 모일 때마다 한복에 두루마기를 갖춰 입으시고 가족 예배를 즐겨 드리셨다.
여든 두 해. 평안남도 순천, 두고 온 고향의 일기예보를 텔레비전에서 매일 놓치지 않고 보셨던 아버지의 숨은 외로움을 우리는 다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좋아하셨고 이야기나누기를 즐기셨던 멋지고 따뜻하셨던 세상에서의 삶을 그렇게 놓으시고 아버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아침이면 늘 만나게 되는 서랍장 속 아버지의 양말. 그래도 양말을 신겨드렸어야 했는데…. 아버지의 싸늘하셨던 발의 감촉과 함께 내 발이 시려오는 것이다. 아버지 그곳에서는 발이 따뜻하시겠지요?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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