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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4>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4년 10월 15일(수) 10:47 131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내가 왜 그렇게 미친놈처럼 일하는데? 다 너희들을 위해서다. 나의 피와 땀이 서린 노동으로 너희들이 자라고 인생을 준비하는 이상 난 너희들에게 최소한의 존경이라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희들이 언제 아빠 얼굴 제대로 보고 인사한 적 있느냐? 얘기를 건네면 아빠 눈을 보고 제대로 대답을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느냐? 아빠가 너희들 얼굴이라도 볼라 치면 모두들 제 방으로 뛰어들어가 틀어박히고. 아빠 심정이 몹시 서운하다. 부탁한다. 아빠를 좀 이해해 주고 봐주면 안 되겠니?
언제였던가. 그는 야속한 아이들 행동에 속이 터질 지경이어서 녀석들을 앞에 앉혀놓고 하소연하듯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가타부타 말을 안 하고 묵묵부답이었다.
침묵만 지켰다. 툭 튀어나온 입과 볼멘 그 표정은 무엇을 말하고 있던가?
-칫! 그런 일은 아빠로서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닌가요? 다른 아빠들도 다 그러잖아요. 자식들 밥 먹이고 공부 시키고. 누구 아빠는요, 의사고 변호사인데요.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가 까무러치는 줄 알았어요. 별 여섯 개 호텔 주방장이 요리를 차려놓았거든요. 걔네 집 아파트 평수가 백이십 평이에요. 백 미터 뛰어도 되겠더라고요. 걔네 집에 외제차가 총 다섯 대래요. 아빠 차, 엄마 차, 형 차, 누나 차……. 가족여행용 벤까지 있었어요. 연예인들이 타는 그런 고급 벤 말이에요. 걔가 우리 반에서 일 등 하거든요. 걔 한 달에 드는 고액학원비가…… 쪽팔려서 말하기 싫지만…… 아빠 월급보다 훨씬 많을 걸요.
그리고 내 친구 은지가 한 달에 쓰는 돈이 얼만 줄 아세요? 걔는 최고급 브랜드 아니면 입지도 신지도 먹지도 않아요. 한마디로 어휴…… 제 용돈은 걔 껌값도 안 돼요. 뭐라고요? 그런 애가 혹간 한 반에 하나 있을 뿐 아니냐고요? 아뇨. 우리 반에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 엇비슷한 집 무지 많아요. 무슨 사장이니 상무, 전무, 변호사…… 대형 음식점집, 학원원장, 치과의사, 상가건물주, 세무사, 큰 교회 목사……. 우리 학교가 강북에서 제일 산다는 집 자식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일류대학 진학률도 강남 이상 가는 유일한 곳이란 걸 아빠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걸요?
볼멘 표정으로 꾸욱 닫힌 아이들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 그는 더럭 겁이 났다. 너희 생각들을 어디 말해봐, 라고 했지만 녀석들을 더 이상 다그칠 순 없었다.
-아빠가 우리한테 뭐 잘한 거 있는 줄 아세요? 우리도 힘들어 죽겠어요!
갑자기 왜 아빠까지 안 하던 잔소리를 하고 그래요! 하고 맹렬히 쏘아붙일 것 같은 두 아이들의 가시 눈빛.
그는 아내에게도 응원을 청할 수 없었다. 초록은 동색인 것처럼 아이들과 아내는 그에 한해선 비슷한 맘일 것이므로.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 한 시를 넘긴 시간에 동네 포장마차에 나가 혼자 술을 마셨었다. 답답하고 분통이 터졌다. 맘 같아선 소주 열 병이라도 비우고 싶었지만 그 다음날 일 때문에 달랑 한 병만 비우고 씁쓸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불 꺼진 아파트를 향해 걸어왔었다.
회사일에 치여 결국 아내와 아이들에게 마땅히 받아야할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처지의 사내. 그 사내가 그였다. 그러면서도 회사로 나가면 그런 비애를 싸악 잊어먹고 처자식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어디 그런 처지의 가장들이 한둘일 것인가.
이 땅에 사는 무수한 가장들이 내가 돈 버는 기계인가? 자조 어린 탄식을 해왔었다. 그 또한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수없이 들은 얘기고 자신도 했던 얘기다. 직업과 직급에 따른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수많은 샐러리맨 가장들이 느끼는 애환과 절망은 그와 엇비슷하다.
가족을 위하고 안정된 미래와 노후를 위해 현재를 완전히 희생하지 않는 가장이 누가 있겠는가.
가장인 남자는 사람이지 철인이 아니다. 회사에 무한 충성하면서도 가족에게까지 정서적 만족감을 주는 가장은 드물다. 없다. 회사 일로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무슨 수로, 가족들 마음까지 일일이 챙길 수가 있겠는가. 손 한번 따뜻이 잡아주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주는 게 뭐 그리 어려워? 바빠 시간이 없다고? 핑계일 뿐이지! 하고 말할 것이다.
발이 질질 끌릴 정도로 녹초가 되어 밤늦게 귀가하는 가장 마음도 사람 마음이다. 격무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신경도 날카로워져 있다. 더없이 무거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가장은 누구나 집에서만이라도 편히 쉬고 싶고 위로 받고 싶다.
따스한 말 한마디를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진정 건네받고 싶은 사람이 가장이다. ‘어휴. 내 마음 아무도 모르지. 더 이상 얘기하면 입만 아프다. 그냥 말을 말자 말아’로 끝내는 것이 직장인의 단골 푸념이다.
정말…… 남자 직장일이 그렇게나 힘들까?
진짜 김민호 일도 그러할까?
그렇다. 제약회사 영업직은 간과 쓸개를 다 빼놓아야 일할 수 있는 직장이다. 무한 발품을 팔아야 하고 고객을 찾아가 무한한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허리를 굽실거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가 평사원일 때는 서울 강북의 동네 약국이란 약국은 다 돌아다녀야만 했다. 자사 신제품을 약사에게 알려주고 자사 제품을 원활하게 소비자에게 연결시키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선 그 약사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어떤 경우엔 아이들 생일까지 챙겨야 한다. 자기 아이들 생일은 제때 챙기지 못하면서 중곡3동 보람약국의 여자약사의 다섯 살 난 아이 생일 케이크와 인형선물을 챙겨들고 가야만 했다.
대리를 달고 난 후부터는 대형약국과 보건소, 동네 소병원을 담당했다. 과장 때부터는 종합병원 의사들을 담당했다. 과장급 의사들, 전문의들은 물론이고 인턴, 레지던트까지 비위를 맞추는 일. 그것이 바로 제약영업의 핵심이었다.
약은 소비자 인지도가 완벽한 극소수 브랜드 제품만 빼고 소비자나 환자들은 의사나 약사가 처방해 주는 대로 따라가는 것. 한 질환을 치료하는 약에 있어 십여 개 회사 제품이 있다면 그 약효도 대부분 엇비슷한 게 보통이다. 그런 까닭에 의사나 약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제품이 팔리게 된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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