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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고 크는 나무가 어디 있으랴

-어느 귀농 부부의 농사일기

2014년 10월 28일(화) 13:15 132호 [강원고성신문]

 

↑↑ 황연옥 칼럼위원(시인, 동화작가)

ⓒ 강원고성신문

추수를 마친 들녘이 한가롭다. 금년엔 영북지방에 태풍이 없었고 가을 날씨가 좋아 대체적으로 풍작이라고 한다. 농부들의 얼굴에 수확의 기쁨이 가득하다.
몇 년 전부터 인천에서 고성을 오가며 주말농장처럼 밭농사를 조금 지었는데, 금년에 정년퇴임하고 정식으로 고향에 귀농하여 1600평의 논농사도 지었다.
노년에 힘든 일이라고 만류하였으나 농사일을 좋아하는 남편은 농부셨던 부모님의 노고를 더 나이 들기 전에 경험해 보고 싶고, 농약을 뿌리지 않고 농사를 지어 자식들과 이웃들에게 나누고 싶다고 하였다. 물론 기계화된 영농기술을 갖고 있는 마을 분들께 모를 심고 벼를 베는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고향으로 귀농해 첫 논농사

5월 중순 못자리를 주문하여 모를 심었다. 가급적 자연친화적인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논에 우렁이도 넣었다.
토질이 좋아 모는 순조롭게 모살이를 하고 가지치기를 하며 잘 자랐다. 논물을 보고, 논두렁의 풀을 깎고, 잡초를 제거해 주는 일을 하며, 아침저녁으로 논두렁에 나가 모포기를 들여다보는 남편의 얼굴엔 생기가 가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6월 10일, 보일러 탱크가 노화된 마을 어느 집에서 밤새 경유가 새어 하수구를 통해 우리 논으로 흘러들어갔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제일 넓은 마지기 600평의 논에 기름때가 출렁거렸고 벼는 군데군데 축 늘어져 있었다.
군청에서 직원들이 방제포를 가지고 나와 기름때를 걷고 난리가 났다. 며칠에 걸쳐 기름때를 걷어내고 농수로에는 겹겹의 방제포가 설치되었다. 소동을 벌이고 수차례 논물을 갈아도 기름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검은 기름때가 모포기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모포기가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마치 버짐을 먹은 아이 머리처럼 듬성듬성 흉물스럽게 기름띠를 몸에 붙이고 죽어가기 시작했다.
무공해 쌀을 이웃과 나누려는 희망을 가지고 농작물을 자식처럼 보살피며 키우던 우리부부에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이었다. 병든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같았다. 마을 큰 길 앞에 있는 논이라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두 혀를 차며 마음 아파하였다.
종일 논에 나가 모포기를 들여다보던 남편은 작심을 한 듯, 논에 들어가 죽은 모포기를 하나하나 뽑아내기 시작했다. 모를 뽑아내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 어두웠다.
넋을 잃듯이 그렇게 멍하니 논바닥을 바라보며 두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일이 생겼다. 남은 모포기 일부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정말 저토록 강인한 식물이기에 쌀이 세계인들, 특히 아시아인들의 주된 식량이 되었나보다.
집안 조카가 이웃 동내에 남은 모가 있다며 모를 구해 주겠으니 한번 심어보라고 하였다. 그 때가 6월 초순이었고 다른 논의 모들은 벌써 가지치기를 하여 바람에 잎사귀를 나풀거리며 푸르게 자라고 있는 시기였다.
망설이던 남편은 살아날지는 모르지만 희망을 가지고 모를 보식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항기모 12판을(120평에 심는 분량) 일일이 손으로 보식하였다. 논 한가운데 기름에 쪄들은 벼를 뽑아 처리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모포기 사이를 조심조심 다니며 보식하는 일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칠순의 나이에 경제적으로 노후보장까지 된 저이가 어찌 저 같은 일을 할까? 너무 힘들어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나도 묵묵히 곁에서 그 일을 도왔다.

밤새 경유가 논으로 흘러들어

모를 구해 준 조카가 고맙고, 포기하였을 때 듬성해진 초췌한 논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농부들이 가을까지 마음 아파할 걸 생각하면서,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걸고 고통을 참으며 그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농작물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키우는 진정한 농부의 마음을 남편에게서 느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살아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보식한 모들이 뿌리를 내리고 푸르게 자라기 시작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땅은 정직하다는 말이 실감났다.
처음 모내기를 한 날과 보식한 날이 거의 한 달 정도 차이가 났는데도 7월초가 되자 모들이 평균적으로 키기 비슷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복병이 나타났다. 심한 봄 가뭄이 몰려왔다. 들녘엔 밤낮으로 양수기를 돌리는 발동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우리 부부는 고심하다가 양수기로 물을 푸지 않기로 했다. 농업을 전업으로 하는 농민들이 한 그릇의 물이라도 더 풀 수 있기를 바라며, 하늘만 쳐다보았다.
7월 중순이 되자 논바닥은 거북이등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모포기들이 누렇게 말라갔다. 봄에 모를 보식한 큰 베미 논은 유난히 가뭄을 더 탔다.
이렇게 힘들게 농사지어 자식들 공부시켜 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던 7월 23일 밤, 천금 같은 비가 내렸다.
비다! 비가 온다~ 온몸에 맞아도 좋을 단비가…….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이삼일을 흡족히 내려 온 들녘이 해갈이 되었고, 이런 저런 아픔을 겪고 자란 벼들은 가을에 치렁치렁한 이삭에 알찬 결실을 맺으며 고개를 숙였다. 농약을 거의 뿌리지 않고 논둑에 제초제도 뿌리지 않고 세차례에 걸쳐 논두렁의 잡초를 손수 깎았다.
문전옥답의 좋은 토질과 주인의 특별한 사랑을 먹고 자란 벼는 많은 수확을 냈다. 우리 부부는 그 어려움을 이기고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됨을 감격하며 어려운 이웃들, 자녀들, 지인들과 추수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리고 감사의 두 손을 모았다.
아프지 않고 크는 나무가 어디 있으랴!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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