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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6>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4년 11월 12일(수) 14:38 133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문제는 그 죄를 책임을 지고 누군가 옴팡 뒤집어써야만 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선 희생양이 필요해진 것이다.
G회사는 수뇌부이자 직접 지시자인 영업이사를 보호하고 실무책임자인 김민호 부장을 선택했다. 영업이사는 사장 조카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는 억울하다면 몹시 억울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최선을 다해 수행한 죄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약식 기소돼 결국 법정에 피고로 서야만 했다.
판결은 징역 일 년에 집행유예 이 년. 그리고 주식회사 G기업 규모에 비해 꽤 많은 과징금이 부과되었다.
또 한 가지 법원 지시는 범법자인 책임자 김민호를 해고하라는 판결이었다. 이번 사건이 차기 대선의 물망에 올라있는 여권 내 한 중진의원에게 치명타를 날리기 위해 경쟁세력들이 그의 스폰서인 거대 제약회사를 손보기 위해 언론에 대대적으로 터뜨렸다는 정치적 시각이 있지만 어쨌든 이례적으로 검찰이나 법원 같은 사법부가 경기도 권역 내 보궐선거 직전의 타이밍에 맞춰 속전속결로 사건을 해치운 것만은 분명하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G회사나 김민호 부장으로선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었다.
그는 그 사건을 빌미로 지난 7월 12일, 십구 년간 몸 담아왔고 이십 년 가까이 온갖 열과 성을 다 바친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통고 받았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법원 판결대로 회사규정에 의거해 해고한다는 글이 명시된 해고사유서를 읽을 때 그의 손이 벌벌벌 떨렸다. 사장은 그를 면대하기 껄끄러운지 해외출장을 나가버렸다. 그를 집무실로 불러들인 자는 영업이사였다.
이사는 침통한 표정이었고 화가 나 있었다. 이번 파동으로 공들인 신약판매망이 완전히 와해돼 큰 피해를 입었고 게다가 추징된 과징금도 막대해서 앞으로 우리 회사가 어떻게 헤쳐나갈지 모르겠다는 말부터 앞세웠다.
이사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그의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이사님께서 이번 일의 진행과정을 너무나 잘 아시잖습니까?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해고는…… 가혹합니다. 제발 선처해주십시오.
-어쩌겠소. 법 집행인데 별 도리가 있겠나.
안면몰수인 이사의 태도에 그는 눈앞이 캄캄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수없이 해왔다.
이제 와서 일의 옳고 그름을 회사를 상대로 따진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의 머릿속에선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숨 가쁘게 떠올랐다. 가슴 속에서 두려움의 북이 쿵쿵쿵 울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동안 약밖에 판 게 없는데! 아무리 업계 관행이었다고 쳐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 신분인 그를 다른 제약회사에서 받아준다는 건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야 하는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게 된 이 끝을 보자고 그렇게 죽자 살자 달려왔던가…….
그는 누군가 자신의 목을 거머쥐고 완악하게 조아대는 것처럼 숨통이 막혔다.
이제 와서 남은 터럭만한 자존심이고 뭐고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그는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이사님! 부탁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어허, 김 부장 왜 이러시나?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소나기가 오면 일단 피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그렇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비를 넘기면 제가 회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까? 이사님! 그것만이라도 약속해 주십시오. 저, 아직 이렇게 젊습니다. 노하우도 많은 영업 베테랑입니다. 저는 우리 회사 중추로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이사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최우수사원으로 제가 다섯 번, 네,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이 선정된 직원이 바로 접니다.
-김 부장 능력을 내가 왜 모르겠소. 어쨌든 두고 봅시다. 세상이 좀 잠잠해지고 회사 형편이 나아지면 당연히 김 부장 같은 사람을 다시 불러 앉혀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아니겠어. 그러니까 진정하고 일단 집에 가서 푹 쉬어요. 그동안 애 많이 썼는데.
-......!
-어허! 사람이 왜 그래? 남자라면 진퇴가 깔끔해야지. 어서 나가봐요. 나도 곧 우리 주거래은행에 가서 손 벌려봐야 하니까. 며칠 전에도 지점장 그놈이 거들먹거리는 꼴을 한참이나 봤었는데. 오늘도 또 그놈 상판대기를 보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니! 나 원 참! 그러고 보면 내 처지나 김 부장 처지나 그리 다를 바가 없네그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이사는 두툼한 턱살을 손등으로 쓱쓱 부볐다. 심한 짜증이 몰려올 때 하는 특유한 버릇이란 것을 그가 왜 모르겠는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듯 이사는 지그시 눈을 그러감고는 푹신한 소파에 등과 어깨를 파묻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참기 힘든 분노를 느꼈다.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염치가 있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있다. 물론 그 자신이 리베이트 자금 집행자로서의 책임은 있지만 그래도 법정에 서고 범죄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명령과 지시를 내린 이사일 것이다.
회사는 군대조직과 같다.
명령대로 따르지 않았다면 그는 추궁 당하고 문책 당했을 것이다. 아무리 기업이고 그 어떤 조직이라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고 사람 사는 세상이다. 보편적 상식이 있고 사람 양식이라는 게 기본이고 먼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사는 부하직원인 그에게 그 어떤 위로나 안타까움에 대한 한마디 표현도 하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어 뭐라 할 말이 없네. 안타깝게 됐네. 혹은 그 흔한 유감일세, 라는 말 한마디 없이 내 코가 석자라서 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눈을 그러감고 있는 이사의 턱을 세차게 한 대 가격하고 싶지만……. 그는 생각과는 정반대로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이사에게 다시 한 번 허리를 구십 도 굽히고 머리를 조아렸다. 남아 있을지 모를 단 영 점 일 퍼센트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사는 사장 다음 가는 회사의 실세였다. 그가 용단을 내려준다면 언제고 머잖은 날 그는 회사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헛된 기대로 끝날 가능성이 구십구 점 구 퍼센트란 것을 그는 잘 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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