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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장차 눈이나 비를 내리려면 산이 저절로 운다”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75> 울산바위의 역사적 고찰 ⑤

2014년 12월 24일(수) 11:12 136호 [강원고성신문]

 

↑↑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추강집(秋江集)』 5권,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에는 산 이름을 천보산(天寶山)과 명산(鳴山, 우는 산)이라고 달리 하였다.

ⓒ 강원고성신문

Ⅳ. 「기행문(紀行文)」에 나타난 천후산(天吼山)
옛 부터 강원도 영동지역 특유의 국지바람을 일컫는 말로 ‘양간지풍(襄杆之風), 통고지설(通高之雪)’이 전해져 왔다.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심하고 통천과 고성(이북)은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1633년 이식(李植)의 『수성지(水城志)』에는 “…산에는 동굴에서 부는 바람이 많으며 산 중턱에서 나온다. 이를 두고 하늘이 운다고 하며, 세간에 전하기를 양양과 간성 사이에는 큰 바람이 많은데 이 때문이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하면, 양간지풍이란 말은 울산바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지금의 울산바위가 본래 천후산(天吼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연유라고 볼 수 있다.

1. 명산(鳴山)과 읍산(泣山)

1485년 4월부터 총 35일간 금강산 일대와 동해안의 간성을 유람하면서 보았던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추강집(秋江集)』 5권,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에는 산 이름을 천보산(天寶山)과 명산(鳴山, 우는 산)이라고 달리 하였다.
인용문을 나열하면 “…대개 산의 모양이 하늘의 남북에 우뚝 솟아 큰 땅덩어리로 누르고 있는데 큰 봉우리가 36봉이요, 작은 봉우리가 1만 3천봉이다. 한 가지가 남으로 이백여 리를 뻗었는데, 산 모양이 높고 뾰족하여 대략 금강의 본상과 같은 것은 설악산(雪岳山)이요, 그 남쪽에는 곁따른 영(嶺)과 악(岳)이 있다. 동쪽의 한 가지가 또 하나의 작은 악(岳)을 이뤘으니 천보산(天寶山)인데, 하늘이 장차 눈이나 비를 내리려면 산이 저절로 운다. 그러므로 이름을 명산이라 한다. 명산이 또 양양 고을 후면을 돌아서 바닷가로 닿는데 오봉산이 특별히 섰으니 낙산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1553년 4월부터 금강산을 기행하고 쓴 홍인우(洪仁祐, 1515~1554))의 『치재유고恥齋遺稿』 3권, 「관동록(關東錄)」은 간결한 문체로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관동지방의 동해안을 따라 기록한 내용이 전하고 있다.
“…5월 3일 또 5里를 가서 쌍성호(雙城湖)를 지났다. 쌍성호 서쪽 10여리 되는 곳에 석봉(石峯)이 있다. 꼿꼿하게 비껴 있는 모양이 마치 울타리와 같다. 이것이 바로 이산(籬山)이다. 세속에서는 읍산(泣山, 우는산)이라고도 한다. 호수 동쪽에 또 바위산이 높이 솟아 있는데 실 같은 길이 육지와 이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비선대(秘仙臺)이다.”고 적고 있다.

2. 천후산(天吼山)

1)「관동록(關東錄)」= 유몽인(柳夢寅, 1559~1623)26)의 『어우집(於于集)』 1권,「관동록(關東錄)」은 1590년(선조 23) 江原 都事가 되어 봄에 강원도 관찰사 구사맹(具思孟)과 함께 金剛山을 유람 길에 남긴 작품이다.
작가가 본 내용은 이러하다. “천후산(天吼山) 돌구멍에서 소리가 나면 곧 바람이 분다고 해서 천후산이라고 한다. 지팡이를 짚고 와서 보니 기이한 산봉들은 창대를 마구 묶어 놓은 듯 하고 평평한 바위는 평상같이 누웠는데 천애절벽은 기묘하게 들어앉아 사랑방과 흡사하다. 천후산 동굴 속에 절이 있고 천만그루 나무들에 바람이 스칠 때면 천군이 창을 들고 진격을 하는 것 같다. 진인이 수성고을을 유람하고서”라고 적고 있다.
天吼 石竇有聲則風故名天吼山 來鳴杖。峰奇亂束槍。石平渾類榻。崖엄巧爲廂。天吼山窟中有寺。萬木俄披拂。千軍似掠槍。眞人遊수邑。

2)「영동산수기(嶺東山水記)」 = 1620년 관동지역을 찾은 최유해(崔有海, 1588∼1641)27)의 『묵수당집(默守堂集)』18권,「영동산수기(嶺東山水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수령(水嶺)의 아래에는 천후산(天吼山)이 있다. 하늘에 비가 오고자 하면 반드시 소리가 있다고 하여 이름하였다. 이것이 실상이 되었다.”
…水嶺之下有天吼山。天欲雨則山必有聲。故名。以其實。

3)「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 = 신익성(申翊聖, 1588~1644년)28)의 『낙전당樂全堂集』7권, 「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에는 1631년 9월, 휴가를 얻어 금강산을 유람하고 청간정에서 서쪽을 바라본 내용은 이러하다. “천후산(天吼山)은 양양(襄陽)에 있다. 골짜기와 산봉우리가 금강산(金剛山)과 나란히 일컬어질 만하다. 하늘에 향해 곧바로 솟아 있으면서 크지는 않지만 이름난 가람(伽藍)이 많은 정토(淨土)라서 암자를 짓고 사는 고승들이 많다고 한다.”
天吼山在襄陽。其洞壑峯巒。可與金剛竝稱。特立盤박不大耳。名藍淨土。多高僧棲結者云。

4)「관동추순록(關東秋순錄)」= 1657년 유창(1614~1690)29)의 『추담집(秋潭集)』정(貞) 잡저(雜著), 「관동추순록(關東秋순錄)」을 살펴보면, “…조계암을 찾아가니 암자는 천후봉 아래에 있다. 암석 아래에는 바위에 의지하여 방 몇 칸을 만들어 놓았는데 승려도 없이 텅 비어 있고 문 밖의 섬돌 옆에는 노란 꽃이 활짝 피어 있고 기암괴석들이 마당가에 쭉 늘어 서 있다. 큰 너럭바위가 하나 있는데 그 위가 평평하여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다. 참으로 하늘이 만들어 놓은 석대이다.”라고 적고 있다.
…繼祖庵。庵在天吼峯底。岩石之下。倚岩爲屋數椽。庵空無僧。門外계畔。有黃花盛開。奇岩列峙于庭際。有一大石上平。可坐數十人。眞一天成石也。

5)「미수기언(眉수記言)」= 1660년 10월 삼척부사로 도임한 이래로 두 번이나 관동지역을 유람한 허목(許穆, 1595∼1682)30)의 『기언(記言)』24권 중편, 「기행(記行)」에는 설악산을 돌아보고서 다음과 같이 남겼다. “천후산(天吼山)은 설악산(雪岳山) 동쪽 기슭의 다른 산인데 수성 남쪽 경계에 있다. 돌산이 신기하고 빼어나게 아름다운데 아홉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너른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산이 크게 울면 큰 바람이 불기 때문에 산 이름을 천후라고 하였는데, 산에 풍혈(風穴)이 있다. 남쪽에는 석달마(石達麻)가 있고 북쪽에는 선인대(仙人臺)가 바라보인다.”라고 적고 있다.
天吼山。雪岳東麓別山。在수城南境。石巒神秀。爲九峯。東臨大海。山大鳴則大風。故山名曰天吼山。有風穴。南有石達麻。北望仙人臺。

6)「풍악록(楓岳錄)」= 윤휴(1617∼1680)31)의 『백호전서(白湖全書)』34권 잡저(雜著), 「풍악록(楓岳錄)」에는 1672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설악산을 찾아와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남겼다. “…동구 밖을 나와 설악산을 바라보며 15리 남짓 가서 신흥사(神興寺)에 들렀더니 중들이 견여를 가지고 동구 밖까지 환영을 나왔다. 그 절은 설악산 북쪽 기슭에 있는 절로 동쪽을 향해 앉아 있었는데 전각(殿閣)이나 헌루(軒樓)가 역시 규모가 큰 사찰 중의 하나였고, 여기에서 바라다 보이는 설악산과 천후산(天吼山)의 깎아지른 봉우리와 가파른 산세는 마치 풍악(楓岳)과 기걸함을 겨루기라도 하는 듯했다.”
…出洞門。望雪嶽。而行。十五餘里。入新興寺。寺僧。以肩輿迎之於洞口。其寺在雪嶽北麓。向東而坐。殿閣軒樓。亦一巨刹也。望見雪嶽天吼。참峯峻巒。若與楓岳爭奇。

7)「현산삽십영(峴山三十詠)」과 「비선대사우선청(乍雨旋晴)」 = 1689년(숙종 15) 양양부사를 역임한 이해조(李海朝, 1660~1711)32)의 『명암집(鳴巖集)』4권,「현산삽십영(峴山三十詠)」 천후산(天吼山) 시(詩)의 주석(註釋)을 살펴보면 “부(府)에서 북쪽으로 65리에 있다. 석봉은 깎은 듯이 가파르고 기이하며 장관이다. 세속에서 작은 금강이라고 부르는데 즉 설악산의 한 갈래로서 산허리에 바람구멍이 두 개가 있어 큰 바람이 불려고 하면 산이 스스로 먼저 운다고 하여 이름 하였다…”고 적고 있다.
由神興寺西北上十里餘。石山突兀撑空。鋪張數里。卽天吼山。石色不甚潔白。而氣勢尊嚴雄偉。凜不可近。山腰。有兩穴。能生風。襄之多風。盖由此云。

8)「관동속록(關東續錄)」= 조덕린(1658~1737)34)의 『옥천집(玉川集)』7권 잡저(雜著), 「관동속록(關東續錄)」은 1708년 9월 강원도 도사로 부임하여 금강산 유람 길에 남긴 작품이다. 저자의 경로를 살펴보면 인제지역에 이르러서 내설악을 구경하고 나서 바라본 내용이다. “…연수파령 넘어서 천후산을 우러러 보니 높고 큰 돌산들은 병풍을 쭉 늘어세운 것 같고 계조굴과 선인대가 기이하게 생겼다고 하지만 너무 지쳐서 오를 수가 없었다.”
…踰連水坡。仰視天吼山。石山巍아如列屛。聞繼祖窟仙人臺之奇。而倦不能登。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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