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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10>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5년 02월 04일(수) 16:22 139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십 년 전에는 개인이 뜻한바 사업을 시작했다면 열에 하나는 성공하고 두셋은 그럭저럭 유지하고 나머지 일곱은 투자금을 전부 까먹거나 빚까지 지고 망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 창업한다면 자영업 성공률은 과연 얼마나 나올까? 백에 한두 군데 성공할 것이다. 백에 여덟아홉은 겨우 현실유지, 그 나머지 백에 구십은 예외 없이 망해버린다. 중산층은커녕 최하위층, 빈민층 나락으로 삽시간에 내려간다. 그러니까 지금 다급하게 뭘 시작하겠다 서두르다가 낭패를 보지 말고 긴 호흡을 가져라.
현실에 쫓기는 게 너무 초조하고 괴로웠을 때 그는 고교 동창생들 중 유일하게 신부가 된 친구를 만나봤었다. 사제인 친구가 그런 조언을 해줬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고.
-먼저 네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뭐가 잘못됐고 뭐가 잘된 것인지 네 삶의 하나하나마다 시시비비를 가려봐라.
반성과 후회를 통해 네 약점을 파악하고 네 부주의한 점과 네 실수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가 냉철하게 조목조목 짚어라. 그러면 그 실수를 최소한 줄여나갈 수 있을 테니 네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남보다 잘할 수 있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장점을 먼저 네 안에서부터 찾아라.
돈을 좇으면 결코 돈이 잡히지 않는다. 숨바꼭질의 기본이다. 네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정말 네가 스스로 원해서 열심히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는가 우선 그것부터 찾아라. 돈은 욕심 안 부려도 열심히만 한다면 그 만큼은 자연스럽게 따라들어온다. 강박관념을 버리고 너를 돌아봐라.
너를 깊게 들여다볼수록 네 안에서 길이 열릴 것이다.
한가한 소리로만 들렸다. 너는 가족도 없이 하나님 울타리 안에서 먹고 입을 걱정 안 하고 사니 그렇게도 말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사제가 된 친구 말은 그의 맘 한 켠에 남았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라던 그의 말은 불가의 가르침인 회광반조(廻光返照)를 연상시켰다. 내 밖을 비추던 불빛을 내 안으로 돌려 나 자신을 살필 것을 권하는.
그 후 그는 친구 찾아다니기를 그만두었다. 거리를 할 일 없이 떠돌거나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도봉산이며 남산을 올라가던 어색한 산행도 그만두었다.
그는 출근한다고 집을 나서면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정독도서관에 가서 보냈다.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골똘하게 생각했다. 살아온 삶과 현재 살고 있는 삶과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 생각했다.
대학 때 봤던 경제서적들도 다시 만져보았다.
현재의 경제동향, 새로운 학설을 쓴 신간들도 도서관 서고에서 빌려읽었다. 세계경제가 언제 다시 좋아질 것인가. 좋아진다면 어느 분야에서 어떤 현상으로 제일 먼저 나타날 것인가. 경제가 머잖아 바닥을 친다면 어느 분야에서 제일 빠르게 신호가 나타날 것인가. 현대 세계경제의 판도는 어떻게 짜여 있는가.
세계를 점령한 기축통화인 달러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돼왔으며 현재 살아 있는 거대공룡인 은행들은 어떤 신상품을 만들어 파는가. 우리나라 실물경제가 회복되기 위해선 어떻게 판을 새로이 짜야 하는가. 가정경제와 개인경제는 국가경제로부터 어떻게 구체적인 영향을 받는가. 가계의 엄청난 빚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MB 정부하에서 물가가 급속하게 뛰고 중산층 붕괴가 나날이 느는 이유는 뭔가. 개인 경제를 튼튼하게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는 실직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화폐의 역사』 『달러 전쟁』 『개인과 경제』 『위기의 시대』 『불황과 주가』 『금융의 패러다임』 같은 책을 읽었다.
그러고 보면 회사를 다녔던 이십 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그는 두꺼운 경제서적 한 권을 제대로 읽어보질 못했다.
그가 나태했다기보다도 회사가 책 읽을 시간을 제대로 준 적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는 단거리 경주마처럼 매출목표를 향해 매일 달리기만 했다. 구축된 영업망인 일정한 궤도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열심히 돌고 돌았을 뿐이다.
물론 약을 파는 데 있어서 두꺼운 경제신간 읽기가 도움이 된다면 그는 밤잠을 자지 않고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대국인 기축국가 미국이 전 세계를 향해 무제한의 달러를 찍어냄으로써 전 세계가 입게 되는 막대한 폐해를 아는 것이 과연 약을 파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
모든 경제지표와 수치는 정치적 트릭과 음모의 산물이라는 것, 고로 모든 통계 수치가 정치적인 숫자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한다고 한들 현재 실직자인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 경제학을 전공했었던 그는 세상이 급속히 변화한 만큼 국가경제와 개인경제의 상관관계며 자본에 의해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와 원리를 적확하게 파악해 보고 싶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지 않는가.
세상이 왜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고 뒤죽박죽인지, 왜 모두가 돈만을 정신없이 좇는지. 과연 그 돈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 돈을 누가 찍어내며 그 돈을 장악한 세력은 누구인지, 그 돈이 어떻게 이토록 완전하게 개인을 지배하게 만들었는지, 막연히 그런 거 아니냐는 식의 거짓지식과 선입관을 들춰내고 왜 그렇게 돼버렸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맘먹고 책을 독파해 냈다. 물론 언제까지나 책만 읽고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딱 한 달 정도만 원 없이 책을 읽어보자고 기한을 정했다.
그는 다른 실업자들이 노인들과 함께 탑골공원에 앉았거나 길거리를 배회하고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밤늦은 시간까지 내내 책을 읽었다.
매일매일 도서관 문이 열리고 닫힐 때까지 옆에 두꺼운 책들을 잔뜩 쌓아두고 열심히 책장을 넘겼다.

9월 10일이었다.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앉아 서고에서 찾아온 책을 읽던 그는 갑자기 복부 상단 오른쪽 부위에서 둔탁한 통증을 느꼈다.
엇! 왜…… 이러지? 꼼짝 않고 안 읽던 책만 내리 읽어서 그런 건가. 그는 상체를 구부리고 묵직한 통증이 멎고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맘 잡고 책 보는 것도 몸이 방해하나?
기분이 불쾌했고 마음이 언짢았다.
세상에는 아는 게 힘이 되는 사람과 아는 게 병이 되는 사람이 원래부터 따로 있기나 한 걸까. 열람실 구석진 책상에 앉아 두 손으로 복부 상단을 움켜잡은 그는 온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송글송글 돋았다.
원인 모를 통증이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지만, 웬 걸. 주먹으로 내장 안쪽에서 간헐적으로 쿡쿡 치는 것 같은 불쾌하고도 둔중한 그 느낌은 삽시간에 갑자기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선연한 고통으로 뒤바뀌었다.
참기 힘든 아픔이었다. 장소가 도서관 내라 그는 어금니를 악물고 참아냈다. 식은땀이 그의 등을 흥건하게 적시도록 꼼짝 않고 있었는데 낮게 흘러내리는 신음소리만은 덮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 어디가 많이 안 좋으세요?
누군가 걱정이 됐는지 그의 곁으로 와 조심스럽게 말을 던졌다. 아가씨 목소리였다. 그는 대답대신 으으, 하는 긴 신음소리를 흘려내다가 간신히 꿀꺼덕 목 뒤로 삼켰다.
그가 퇴직한 지 두 달에서 꼭 이틀이 빠진 날의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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