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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13>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5년 04월 22일(수) 11:10 144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무리 문 밖이 저승이라고 해도. 아무리 사람 한 치 앞을 못 본다고 해도. 건강 자신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영업부서 마흔세 명 통틀어서 건강을 가장 잘 관리했고 자랑하던 박 과장이 순식간에 운명을 달리 했으니 그를 알던 사람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뒤 한동안 G제약회사 사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다니던 헬스클럽과 조깅을 그만두었다. 담배를 힘들게 끊었던 사람들도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다 필요 없어. 박 과장만큼 건강 챙긴 사람 없었잖아. 그렇게 타고난 몸을 돌다리 두드리듯 하루하루 다져가며 건강을 자신하던 사람도 한 방에 가버렸는데. 제기랄! 기왕지사 언제 죽을지 그 누구도 모른다면 담배라도 속 편히 피우다가 죽는 거지 뭐, 그래야 덜 억울하잖아. 내 탓이다 핑계라도 댈 수 있을 테니까 말야. 그런 어처구니없는 막 가는 바람이 한동안 회사 내에 횡행했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일이 내게까지 닥쳐오리라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밀려오는 비애가 눈앞을 물기로 가득 흐리게 만들었다. 그는 쓰디쓴 헛웃음을 머금었다.
‘Hodie mihi, cras tibe’ 그날이 박 과장이었다면 오늘은 나란 말이군!
그는 공원 나무 아래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하늘 위로 구름이 흘러갔다. 바람결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들을 흔들었다. 햇빛이 눈부셨고 가을이 진행되고 있는 잔디와 가을꽃들과 가을잎들은 너무나 생생했다.
그의 음울하고 습지고 어두운 생각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내가 죽을 거라고……? 그것도 머잖아서? 너무나 또렷한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이 슬그머니 사라져야 한다고? ……왜? 내가 여기 앉아 있는데. 어디 아픈 데도 없고 설악산 대청봉까지 올라가라고 해도 끄떡없게만 느껴지는데. 이런 내가 대체 왜 죽는다고 하는 거지? 악몽이 아닐까. 내가 변한 게 없잖아. 머잖아 죽는다면, 그것도 올해를 넘길까 말까 한다면 내가 지금 병상에 드러누워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난 꼬마들 축구공을 뻥 차서 홈런을 날려줬을 정도인데 이런 멀쩡한 나를 두고 죽을 거라니!
그는 자신의 두 손바닥을 펼쳐 들여다보았다.
그런데도 내 손엔 보이지 않는 죽음의 티켓이 들려 있다고? 그게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그는 모든 게 생경스럽고 의아했다. 근처 푸른 얼룩버즘나무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공차는 아이들, 산책하는 젊은 연인들을 눈길로 뒤쫓다가 자신의 손바닥과 손등을 뒤집어가며 찬찬히 들여다보고 살펴보았다.
죽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환자에 따라 통증과 증상도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암환자라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선 죽기 직전까지 모르핀 주사 한 대도 안 맞은 사람도 있다고 하긴 하더니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너무나 멀쩡하게 느껴져 혼자만의 거대한 착각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여겨졌다. 악몽을 꾸는 게 아닌가 싶어 그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허벅지와 볼살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아팠다. 어김없는 현실이었다.
내가 나를 배반하고 내 몸이 내 삶을 배신해서 버림받는 게 이런 심경일까. 어금니를 지그시 깨무는 그의 두 눈에 물기가 뿌옇게 차올랐다. 짧으면 석 달…… 길면 반 년……. 의사는 그렇게 엄혹하게 말했다. 삼 개월…… 반 년이라……. 나 원 참!
죽음이 이토록 코앞까지 포복자세로 기어올 때까지 지금까지 멀쩡해주었던 자신의 몸에 대해 고마워해야 할지. 아니면 삽시간에 삶을 점령당하게 한 까닭에 치욕과 분노에 떨어야 하는 건지 모를 심정이었다.
굵다란 목젖이 목에서 환하게 떠오르도록 그는 상체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법 햇빛이 뜨거운 태양이 만물을 익게 하고 건물과 나무마다 적당한 그늘을 내려다주는 오후의 산책을 끝내려 하고 있었다.
크득, 크드득! 목구멍에 물기가 차올랐다.
분노감이었다. 도대체 죽음의 패를 누가 내게 던진 건가? 저 높은 하늘엔 사람 운명을 걸고 내기를 하는 신들의 카지노가 있을까. 누가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내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 한 방에 날려버렸을까? 왜 하필 돈도 없고 두드러진 게 하나도 없는 나를 걸고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그렇게 악하게 살지 않았다. 사기를 치지도 않았고 누구 맘을 그렇게 아프게 한 적도 없다. 누구를 폭행한 적도 없고 누구를 원망하거나 저주한 적도 없다. 그런데…… 그런데…… 대체 왜? 저기 나무그늘에 앉아 잔 돌리며 노는 노인들마저 모두 웃음꽃이 피고 멀쩡한데. 왜 하필 나이 오십도 안 된 내 손에만 죽음의 잔이 들려졌을까? 빌어먹을!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억울했다. 분했다.
그래. 젠장!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 난 그렇게 쉽게 내 삶을 통째로 네 놈들에게 넘기진 않아. 한번 저 세상까지 끌고 가봐라. 내가 어디 간단히 끌려가나! 봐봐, 눈이 있으면 확인하라고. 내 몸은 이렇게 싱싱하고 멀쩡하잖아. 검버섯 하나도 없고 머리카락도 숱이 많아 고민일 지경이야. 내 체력을 시험해 보라고. 지금 백 미터 달리기를 하래도 십육 초 대는 족히 끊겠다. 누가 준다면 쌀가마니도 번쩍 어깨 위로 들어올려 지고서 집까지 가져갈 수 있겠다.
근데 뭐라고? 하긴 원래부터가 의사들이란 작자는 돼먹지 않은 족속들이지. 저들이 뭐라고 내게 함부로 죽는다는 딱지를 붙이나 붙이길. 나 원 참!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오네.
그는 애써 부정했다. 고개를 도리질쳤다.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하지만……. 태양이 서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내게 벌어진 일은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미 삶이라는 질그릇은 금이 가버렸고 깨지는 건 기정사실화되었다. 헛허허허…… 그렇다면 머잖아 나도 박 과장을 따라 가겠구나 생각하니 소리 없는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렀다.
오래 전에 작고하신 선친과 박 과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곳도 그리 낯설지는 않겠구나 싶다가도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면 보이는 것은 온통 다 물그림이 되어 흐릿했고 출렁거렸다.
두 아이들. 수범이…… 승윤이…… 내게 삶을 뿌리박아온 아내……. 그리고 시골에 지금 홀로 계신 노모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숨쉬기 힘들 만큼 가슴이 미어졌다.
끝없을 눈물이 앞을 가렸다.
미운 짓도 하고 서운하게도 하지만 그래도 두 자식만큼 애틋한 게 세상 어디 있겠는가. 자식들이 대학 가는 것도, 결혼하고 손자 낳는 것도 못 보고 죽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뻐개지는 것만 같았다. 가슴에서 넘쳐 목 끝까지 차오르고 결국 쉼 없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건 눈물과 깊은 한숨뿐이었다.
이제 한 창 사춘기를 갓 넘긴 중고등학생들인 그놈들이 가엾어서 어떻게 하나. 아버지 없이 그놈들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건 든든한 지원군을 잃는 건데. 아직 다 자라지도 못했고 지금부터가 한창 돈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책임진 아빠라는 사람이 자식들의 삶과 미래를 보호해 주던 버팀목을 제 손으로 뺄 수밖에 없다니.
한스러웠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남편 잘못 만나 많지 않은 나이에 혼자가 되는 것도 모자라 두 자식 놈을 혼자 떠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엾고도 가여웠다. 그는 슬픔과 분노로 지레 죽을 것 같아서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비벼대며 자식과 아내에 대한 생각을 간신히 밀쳐냈다.
어쩔 수 없이 늙으신 어머니 생각도 떠올랐다.
어머니가 손을 홰홰 내젓던 모습이 떠올랐다.
-에히구. 또 그놈의 서울 가 살자는 말일랑은 하지도 말거라. 나는 내 몸이 움직이는 동안 내 손으로 콩도 심고 배추도 심을 거다. 내는 말이다. 절대로 닭장 같은 아파트에선 답답혀서 못 살아. 이틀만 있어뿌도 숨이 턱턱 막히잖녀. 평생 땅만 밟고 산 내가 십일 층 허공에서 어떻게 살 것냐? 어지러워서 못 산대이. 그리고 아파트 층층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고것도 탈 때마다 속이 여엉 메스껍기도 하고.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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