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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17>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5년 07월 22일(수) 08:49 150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나는 기러기아빠 칠 년차다. 아내와 딸은 우리 형님이 일찌감치 이민해 자리를 잡은 뉴질랜드에 가 있다. 형님은 거기서 커다란 잡화상을 운영해 왔는데 작년부터 사업이 잘 돼서 최근에는 이웃 도시에 두 군데 체인점까지 확장시켰다. 형님은 그중 하나를 내가 맡아 해보라는 것이다. 첫 월급으로 오백은 보장하고 나머진 성과급으로 얹어주겠다 한다. 어느 정도 내가 일을 익히면 체인점을 완전히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형제인 만큼 우리 형님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안다. 내가 아주 힘들게 노력해서 이곳의 내 가게도 웬만큼 자리를 잡았고 안정된 순수익을 어느 정도 올리는지에 대해서도 형님은 알고 있다. 형님과 나는 유일한 피붙이인 까닭에 형님은 나와 가까이 살고 싶어 한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가게를 정리하고 뉴질랜드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형님 뜻도 그렇지만 기러기아빠 칠 년차인 나는 혼자라는 것에 완전히 지쳤다. 그동안 아내와 자식에게 드는 학비와 생활비를 부쳐주다가 참 눈물도 많이 흘렸다. 혼자 밥 먹고 썰렁한 빈 집 문 따고 들어가 혼자 잠자고……. 그러다가 아프기라도 하면…….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형님도 원하고 아내와 자식도 원하고 나도 원하기 때문에 난 가게를 누군가에게 넘기고 내년 2월 중순쯤에 완전히 들어가기로 했다. 물론 우리 가게가 위치가 좋고 탄탄하게 자리가 잡혀 들어오려는 사람이 여럿 있다.
하지만 생판 남인 사람한테 넘기기가 너무 아깝다. 그래서 일단 허심탄회하게 너에게 얘기해 보기로 했고 네 의향을 듣고 싶다. 우리 가게가 잘 되는지 안 되는지, 기업형 베이커리가 절대 못들어온다는 내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내가 뉴질랜드로 들어가는 2월 중순까지 네가 매일 가게로 나와보면 알게 된다. 네가 일을 배우면서 근처 사람들도 사귀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된다는 뜻이다.
계약은 네가 의심나는 부분이 다 점검이 되고난 후 그때 해도 상관없다. 계약서 작성은 내년 1월 말까지 해도 좋다는 뜻이다. 물론 네가 빵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만드나, 잘 팔릴까, 두려움이 클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제과제빵사도 기능직인 만큼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는 자격증을 따려면 학원을 다녀야 한다. 최소 삼 개월에서 육 개월까지 이론을 공부하고 실기를 익혀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론 한 달만 다니고 직접적인 모든 기술을 한 사람에게서 배웠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뉴질랜드에 들어가기 전까지 너는 나한테서 배우고, 그게 또 모자란다면 한두 달 더 그 사람에게서 개인교습을 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빵 만드는 게 취미이지만 실력은 웬만한 프로보다 낫다. 요 근처 아파트에 살고 제과업계 현역에서 은퇴한 육십 대 남자라서 그 사람 손과 시간은 얼마든지 빌릴 수 있다.
빵맛은 정성이고 성실이다. 그건 철저히 네 몫이지만 내가 아는 너라면 나 정도 이상은 멀지 않은 기간에 충분히 해낼 거라고 본다.
그는 친구 말이 너무나 진지하고 열의에 차 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할 틈을 찾지 못했다. 어릴 때 자장면 한 그릇을 맛있게 먹게 해준 대가로 우선적으로 좋은 제안을 해주는 그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고.
-그렇다면 계약조건은 뭐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너 혼자 몇 군데 이 근처 부동산 다니며 알아봐도 괜찮다. 우리 가게 부동산 시세는 이억팔천에서 삼억 사이다. 건물 가격만 그렇단 뜻이다. 하지만 권리금이라는 게 있다. 부르는 게 값이지만 내가 알아보니 최소 오천이 적정선이라고 하더라. 하지만 난 네게 이억오천 정도라면 이 모든 것을 기쁜 맘으로 넘겨줄 수 있겠다. 왜냐? 난 어릴 때 널 좋아했었고 내가 이 땅을 떠나면서 내가 작게나마 이룬 것이 네가 살아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척 기쁠 것이기 때문이다.
박준식의 말은 그러했다. 짧지 않은 그의 얘기를 묵묵히 다 듣고 난 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친구 제안은 호의적이고 분명 좋은 마음이었다.
만약 자신에게서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두 귀가 번쩍 뜨였을 것이다. 지금은 멀쩡하게 보이지만 멀지 않은 어느 날 어느 순간인가 지독한 통증에 꺼꾸러질 가능성이 다분한 말기 간암 선고를 받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랬다면 친구 제안을 정말 기쁜 맘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 봤을 것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를 은행에 저당 잡히고 과연 이억이라는 큰돈을 빌릴 수 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자신이 건강한 몸이었다면 모자라는 돈이야 친구 호의와 친구간의 신뢰를 담보로 해 천천히 갚아나가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은 할 수 없더라도 같은 방법으로 아내에게 이 일을 대신하게 하면 괜찮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아내는 선천적으로 약한 체질이다. 빵을 만드는 일……. 신선한 재료를 구입하는 일에서부터 완제품을 만들고 판매까지 하는 일은 이른 아침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매일매일이 노동의 강행군이란 것을 굳이 친구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내 고향은 경기도 부천이다. 아내 큰언니가 부천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웨딩샵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지켜본 바로는 큰처형이 막내인 아내를 생각하는 게 각별하다. 자신이 잘못되면 장사니 거래니 하는 사회일이라곤 전혀 해본 적 없는 젬병인 아내로선 큰언니에게 의지해 일을 해나가는 게 가장 무난한 현실 타개책이다.
아내는 아이들이 어릴 때 거의 모든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혔을 정도로 재봉질과 바느질에는 일가견이 있다. 큰처형의 웨딩샵이 바쁠 때는 아내가 두어 번 이박삼일 코스로 부천 샵에 내려가서 웨딩드레스 만드는 일을 도와줬을 정도다.
그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내 혼자 몸으로 빵집을 운영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리다. 아무리 단골이 있고 고객이 많다고 하더라도 무리수가 따르면 부작용이 생겨난다. 성공할 수가 없다. 결국 자잘한 문제가 쌓여 돌이키기 힘든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손님의 입맛은 까다롭고 냉정하다. 끊임없이 보다 나은 질과 맛을 찾아 움직인다. 힘에 부쳐 결국 문을 닫게 된다면 가진 나머지 돈과 아파트조차 한 입에 들어먹는다. 부동산 시세를 떠나 하던 장사가 망하면 그 만큼의 타격을 입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게까지 생각해 줘서 정말 고맙다.
-별 말씀을 다…….
-아냐. 정말이다. 역시 어린 시절 친구가 좋긴 좋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말이다. 난 요즘 내가 해오던 일과 관련된 일을 해볼 작정을 이미 굳혔다. 제약회사와 약국을 잇는 중간 대리점 같은 사업체 말이야. 어쨌든 말이라도 정말 고맙다.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아주 가끔씩 세상 살 맛나게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니만 그게 바로 너 같은 친구였구만 그래.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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