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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명절마다 여전히 그리운 사람들

2015년 10월 14일(수) 09:31 155호 [강원고성신문]

 

↑↑ 이선국 칼럼위원(시인·수필가,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소장)

ⓒ 강원고성신문

며칠 전 한가위 명절을 보냈다. 매년 맞이하는 명절이지만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TV영상은 삼삼오오 가족들이 성묘를 하거나 추모공원을 찾아 가족의 그리움과 회한의 아쉬움으로 눈물짓는 풍경들이 이어진다.
저마다 사연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연휴기간 내내 돌아가신 아버지를, 북녘에 살고 계시는 형님과 누님들을,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지만 쉽사리 만날 수 없는 가족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도 그리운 가족을 생각하며 소중한 정을 함께 나누는 명절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소중한 정을 함께 나누는 명절

연휴기간 동안 모처럼 네 식구가 모여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최근 개봉한 ‘서부전선’, 배우 설경구와 여진구가 남복과 영광으로 분장한 한국전쟁의 비극을 코믹하게 다룬 영화였다.
영화는 한국 전쟁의 휴전이 진행되던 1953년 무렵, 국군 전령병 ‘남복’이 전쟁의 운명을 가를 일급 비밀문서를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까지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게 되지만, 인민군의 습격으로 동료들과 비밀문서까지 모두 잃게 된다. 한편, 인민군 탱크병 ‘영광’은 남으로 진군하던 도중 무스탕기의 폭격으로 사수를 잃고 혼자 남게 된다. 동료를 잃은 영광은 탱크를 버리고 혼자 도망치다가 우연히 국군 남복이 잃어버린 비밀문서를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탱크로 돌아와 탱크운전 교본으로만 배운 탱크를 끌고 홀로 북으로 돌아가려던 ‘영광’은 남복과 단둘이 맞닥뜨리게 되는데 잃어버린 비밀문서를 찾기 위해 탱크 안에서 남복과 영광은 총을 뺏기고 빼앗으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어느새 형과 아우로 변한다. 전장에서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코믹 전쟁영화였지만 웃음보다 동족상잔의 슬픈 현실에 가슴이 저렸다.
이데올로기의 전쟁이 빚은 희생양들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북녘에 가족을 둔 국군 연대장은 고향을 탈환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휴전협정은 조인되었고 결과적으로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처지에 절망한다. 집중 폭격으로 죽음이 된 영광의 시신은 달구지에 실려 돌아가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 미10군단 소속의 부대 간부이셨던 아버지는 1.4후퇴를 하면서 북녘 가족들에게 “잠시 나갔다가 금방 돌아올게.”라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난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셨다.
휴전 이후 서부전선은 전쟁이 멈췄지만 동부전선에선 피아간에 싸움이 계속됐다. 비록 휴전이 되었지만 아버지 고향 금강산을 목전에 두고 전쟁이 멈추기 직전까지 치열하게 싸운 것이다. 아버지도 북녘의 고향 가족을 생각하며 전쟁에 매달렸다. 휴전협정 조인으로 고향을 갈 수 없게 된 현실에 비통함으로 얼굴을 감싸던 영화 서부전선 연대장의 일그러진 모습과 아버지의 고통스런 모습이 겹쳐왔다. 전장에서 그리운 가족을 생각하며 혼신의 사력을 다하는 그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전쟁은 멈췄고 포연은 가셨지만 끝내 고향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늘 혹한의 빙벽처럼 외롭고 추운 나날을 보내시다 세상을 뜨신 아버지. 천길 바람 따라 하늘로 가셨다.
아버지껜 내가 늦둥이였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땐 환갑을 훌쩍 넘긴 연세의 할아버지셨다. 어린 시절 호기심으로 아버지께 세상의 이것저것들을 여쭙기도 하면서 대화를 나누어야 했지만 난 그저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아들이고 마냥 철부지 자식일 뿐이었다. 늘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시던 아버지. 전쟁 직후 삶의 무게가 버거웠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으셨다. 간절한 그리움과 회한의 고통에 가끔 술심으로 내게 말을 건네곤 하셨는데 그 때마다 슬쩍 자리를 피했다. 아버지와 살가운 대화가 없었다. 그런 연고로 불행하게도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우리 명절은 가족공동체를 다시 생각하는 좋은 기회다. 요즘은 예전처럼 대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사는 경우가 흔치 않다. 대부분 직장 또는 사업 등 이런저런 사연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떨어져 살고 있어 일 년 한두 번 명절 때나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오가는 차량의 홍수가 명절 풍경이지만 잠깐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일 뿐이다.
명절 스트레스로 은근히 걱정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가족들이 여럿 모여 성가시럽다거나 불편하다는 볼멘소리도 있다. 더러 명절을 구태의연한 형식과 허례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명절이어야 평소 만나지 못하는 가족을 만난다. 그리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소중한 가족의 정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이번 명절엔 묻지도 않은 말을 아들에게 주절거렸다. 나름대로 무언가 대화를 시도하려 하지만 그들에겐 실없는 잔소리로 들리는지 무뚝뚝한 표정으로 휴대폰만 뚫어지게 바라 볼 뿐이다. 나도 그런 아들이 아니었을까. 외톨이 아버지,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다.
가을햇살은 돼지감자 노란 꽃에 더욱 눈부시고 코스모스 꽃길에 바람이 분다. 노란 은행잎 너머 오곡이 알알이 영글어가고 푸른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새삼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다. 풍요로운 가을걷이를 앞두고 함께 기뻐하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가족과 만남의 시간이 바로 한가위가 아닐까 싶다. 이 계절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이 넘치는 행복한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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