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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렬의 經典이야기 ‘공자왈맹자왈’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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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1일(금) 14:32 159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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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류경열 칼럼위원(간성향교 수석장의) | ⓒ 강원고성신문 | 分枝別派 分別人我 反是獨立 撮徒成黨.
분지별파 하고 분별인아 하며 반시독립 하며 촬도성당 하니라.
“가지를 나누어 파를 달리하고 나와 남을 분별하며 옳은 것을 반대하여 따로 독립하며 무리를 끌어 모아 당을 이룬다.”
조선시대의 정치상황을 보면 동인과 서인의 분당으로 붕당정치가 처음 시작된 이래로 당파간의 경쟁과 분열이 끊이지 않았다.
선조 후반 서인과 북인간에는 치열한 정치적 대립이 있었으며, 북인이 집권하여 세력을 차지한 후 에는 북인간에 다양한 가지로 나누어 분열이 일어났다. 특히 적장자 영창대군의 출생으로 인해 선조의 후계자 계승 구도가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북인내의 분열은 가속화되었다.
조선이 망한 것은 당파싸움이 아닌 독재 때문이라고 하는 역사학자의 해석도 있으나, 그것은 해석하는 학자나 분류하고자 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억지로라도 독재를 원인으로 당파싸움에서 승리한 노론의 독재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세력들에게 독재라는 단어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조선의 멸망원인에 대해서 당파싸움에서 승리한 노론의 장악과 왕권약화 이 정도의 표현이 맞겠지만, 나라는 흥망은 뒷전이고 당파싸움에서 노론이 장악하게 되고 자신들이 조정 가능한 왕을 자리에 앉히고 자기의 마음에 맞는 정치를 하도록 조정하니 이것이 과연 왕권강화나 왕에 의한 정치라 할 수 있는가.
조선후기로 갈수록 왕권의 약화는 심하였으며 결국에는 왕의 정치권을 묶어두고 섭정에 이르는 정도까지 이르게 되니, 그 정치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며 사조직에 의한 그들의 속셈과 이익을 채우는 일로 돌아감에 정치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정치가 정부에서 이루어 지지 아니하고 서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지한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하려 했지만 다 이루지 못했다. 당시 이들이 권력을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었고 나라이익은 뒷전이어서 왕권과 국력은 점점 약해졌기 때문 이었다.
이렇게 분당을 이루고 지역이나 출신지역 성씨, 학연 등에 따라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찾아 분당을 새로 만들어 그 세력을 키워 힘을 기르고 기어코 사병까지 운영되니 그야 말로 당이 아니라 조그마한 소국을 만들어 왕좌에서 군림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니 나라의 권세나 위엄이 존재 할 수 없으므로 주군에 의한 정치는 자연히 소멸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게 됨이 사실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니 국력은 쇠퇴되고 자연히 분당 세력간의 다툼이 빈번하게 되며 이 세력 간의 다툼은 국정의 문란과 국정에 소요되어야 할 국력이 분당간 다툼의 경비로 소요돼 나라의 경제는 파탄으로 가고 국민의 생활은 궁핍해져 도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배불리 향락을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는 병들고 나라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를 한답시고 가지를 나누어 파를 달리하고 나와 남을 분별하며 옳은 것을 반대하고 무리를 끌어 모아 당을 이룬다면 그 개체수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며, 그 분당들은 옳음이 무언지 어떻게 나감이 옳은 길인지 조차 모르고 헛걸음에 온갖 힘을 소비 할 것이며 나라의 예산을 좀먹는 버러지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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