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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힘들지만 아름답다

2015년 12월 11일(금) 14:38 159호 [강원고성신문]

 

↑↑ 이선국 칼럼위원(고성군농업기술센터소장, 시인·수필가)

ⓒ 강원고성신문

요즘 극한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본다. 생활의 여유이기도 하지만 마치 구도자처럼 고행을 통해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기도 하고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다.
예전 교육을 함께 받았던 중앙부처의 고위직 공무원 한 사람이 있었다. 비록 3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은 분임조였기 때문에 친구처럼 편하게 지냈다. 선한 얼굴을 지닌 그는 고위직 공무원답지 않게 수더분한 아저씨였다.
하지만 교육기간 내내 초조하고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담당 업무가 그를 괴롭히는 듯했다. 근무처가 교육원에서 멀지않은 곳이라서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저녁마다 사무실을 다녀오는 것이 일이었다. 오랜 공직 경험으로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때론 급박한 전화 연락을 받고 안절부절 하는 모습도 옆에서 보았다. 요즘도 TV에서 그가 속했던 부처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마음이 편치 않아 보인 그

기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아 보인 그는 언젠가 동해안을 여행하고 싶다고 혼잣말처럼 속내를 내비쳤다. 마음의 휴식처가 필요하면 언제라도 다녀가라고 위로했다. 짧은 교육기간이 끝나고 우린 헤어졌고 언젠가 그가 동해안을 찾아오길 기다렸다.
한해가 지났을 무렵 그가 명예퇴임을 했다고 전해왔다. ‘그럼 그렇지.’ 교육기간 내내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삶의 짐이 그를 그렇게 힘들게 했었나보다. 고단한 짐을 벗고 자유인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에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까톡!’ 카카오톡 벨이 울렸다. 그가 통일전망대 앞 자전거인증센터 앞에서 자전거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 온 것이다. 직감적으로 그가 평소 원하던 동해안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구나 싶었다. 굴레를 벗고 자유인의 여행을 시작한 것을 축하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기를 들었다. 초췌한 목소리가 아닌 그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화진포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다고 했다. 근무 중이라서 직접 마중하고 안내하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자전거길이 사무실 앞을 통과하기 때문에 지나가다 들려 차 한 잔하고 가시라고 했다. 그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고 두어 시간이 지나도 종무소식이었다. 전화를 할까 망설였지만 자전거 운행 중에 불편할 것 같아 생각을 접었다.
한참 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송지호철새전망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무실 앞을 지나쳐 간 것이다. 내 사무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일부러 지나쳐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상으로 그의 발길을 돌리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기 때문에 되돌아오라고 할 수 없었다. 안전하게 좋은 여행하길 당부하는 말 외에는 별의미가 없었다. 거듭 안전을 당부했고 그는 계속 남쪽을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배려와 간섭이 오히려 여행에 방해가 될 듯싶어 더 이상 연락하는 것을 접었다.
그로부터 두어 시간쯤 지났을 무렵 다시 카카오톡 벨이 울렸다. 그가 토성면사무소 앞 식당에서 식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업무 차 가까운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차를 돌려 식당을 찾아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그를 만났다. 이곳 도착이후 줄곧 카톡과 휴대전화로만 만났던 그를 그제야 대면한 것이다.
교육 마치고 헤어진 이후 처음 만난 것이다. 허름한 MTB자전거와 간단한 세면도구를 자전거 꽁무니에 매단 채 마음 편한 모습의 그가 정말 반가웠다. 모처럼 찾아 온 손님을 영접하는 것이 예의임에도 낮부터 소홀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차 한 잔하자고 손을 잡아끌었더니 그는 갈 길이 바쁘다는 이유로 극구 사양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한 시간 이후면 금방 날이 어두워질 것 같고 이왕 길을 나섰으니 무리하지 말고 적당한 곳에 숙소를 정하고 쉬면서 여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그는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고는 길을 따라 서둘러 남쪽으로 향했다. 그가 떠나는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떠나는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평소 하고 싶었던 동해안 자전거여행을 마음 놓고 시작한 그가 부러운 한편, 홀로 여행하는 그가 외로운 나그네를 닮아 애처로워 보였다. 편한 자유인이 되면 언젠가 나도 저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야 하며 자위했다. 돌아오는 내내 그의 자유로운 여행이 부러움으로 다가왔고, 저물어 떠난 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교차됐다. 가다가 어둡고 저물면 가까운 숙소를 잡아 쉬어가겠지. 이다음에 길을 떠나서 날이 저물면 쉬고 날이 밝으면 다시 길을 떠나는 편한 여행을 해야지. 결코 계획된 시간에 쫓기거나 이튿날 출근을 의식해 무리한 여행을 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약속했다.
그는 어디쯤에서 고단한 여독을 풀고 내일 다시 장도에 오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그날 밤 알았다. 필자와 헤어진 그는 쉬지 않고 어둔 밤길을 달려 양양 기사문 38휴게소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운 다음, 자정 무렵 당초 계획했던 주문진 소재 찜질방에 여장을 풀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결과적으로 한낮 통일전망대에 도착한 그는 해가 저물도록 달리고 어둔 밤길을 쉬지 않고 달려 100㎞ 넘는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저녁 무렵 서두르던 그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무슨 생각하며 낯설고 어둔 밤길을 달렸을까. 그는 여전히 무엇인가에 쫓기듯 달리고 있었다. 슬펐다.
한편, 눈에 익지 않은 길을 홀로 온종일 달린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부담스런 삶의 짐을 벗어버린 그의 홀가분한 마음이 그를 온종일 지치지 않고 달리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날아갈 듯 가벼운 마음이었기 때문에 어둠도, 고단함도 잊고 하루 종일 달렸을 것이다.
그는 이튿날도 아침 6시 숙소를 나서서 다시 남쪽으로 달렸다. 동해안 자전거 길은 해안을 따라 이어진 길이긴 하지만 강릉 남쪽지역은 유난히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어진 길이다. 일찍 출발한 그는 이튿날도 150㎞ 넘게 달려서 밤10시경 임원에 도착했다.
마지막 날 아침 곰칫국 잘하는 집을 찾아서 맛있게 식사를 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곰칫국집을 찾지 못하고 공사장 식당에서 소주 한 병과 밥 한 그릇을 홀로 먹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고 전해왔다.
‘소장님, 저 참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너무 힘듭니다. 잔차 하루 150키로…’라는 카톡의 메시지가 긴 여운을 남겼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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