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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렬의 經典이야기 ‘공자왈맹자왈’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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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21일(목) 09:54 162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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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得魚忘筌 得意忘言 得兎忘蹄 得道忘傳. (莊子 外物篇)
득어망전 하고 득의망언 하며 득토망제 하고 득도망전 하니라.
“고기를 잡은 뒤에 통발을 잊고 뜻을 깨달은 뒤에 말씀을 잊으며 토끼를 잡은 뒤에 올무를 잊고 도를 깨달은 다음에 그 도를 전해준 이를 잊느니라.”
통발이나 그물은 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러나 고기를 잡은 후에는 고기를 잡은 도구의 필요성과 역할을 잊고 만다. 올무나 덫은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토끼를 잡으면 올무나 덫은 잊고 만다. 말은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뜻을 나타낸 뒤에는 말은 잊고 만다. 득의망언은 어떻게 하면 말을 잊는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장자는 시비선악을 초월한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는 표현인데 지금은 다양하게 쓰인다. 사소한 일에 얽매여 큰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쓰기도 하고 목적을 달성하면 그동안 쓰이던 사물이나 사람은 無用之物이 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학문이 성취되면 책이 무용하게 됨을 이르기도 하고 轉하여 근본을 확립하면 지엽적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까지 함유하고 있음이다.
옛날 堯임금은 許由에게 천하를 물려주려 했으나 허유는 달아나 받지 않았다. 殷나라 湯王은 務光에게 나라를 주려고 했지만 무광은 화를 냈다. 紀他는 이 소식을 듣자 나라가 자기에게 돌아올까 겁이 나서 제자를 거느리고 관수가에 은거하고 말았다. 제후들은 3년 동안 사람을 보내어 기타를 달래고 돌아오기를 권했다고 한다. 이 유명한 구절에 뒤이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 난 뒤에는 통발은 잊어버린다. 덫은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나 토끼를 잡고 나면 덫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말은 뜻을 나타내는데 쓰이기 때문에 뜻을 알고 나면 말은 잊어버리게 된다. 내 어찌 저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서 그와 더불어 말할 수 있을까.
장자는 말을 잊은 사람을 끌어내기 위해 통발과 덫을 잊는다는 말을 전제했다. 장자가 말하는 말을 잊은 사람이란 말 같은 것은 잊어버려 그에 얽매이지 않는 참된 뜻을 깨달은 사람을 가리킨다. 이렇게 결론을 다른 데로 몰고 간 得魚忘筌을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통 일단 목적을 달성하면 수단으로 이용하던 물건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필요에 의하여 얻어진 결과만 성취하면 결과를 얻어오기까지의 과정은 모두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고 그 결과에만 만족하는 경우가 우리 생활의 전반에 녹아져 있음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실리를 추구하는 서구의 문화가 급속도로 들어와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이지만 무조건 따라서 그 문화에 귀속될 것이 아니라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을 선별하여 선택하는 영리함과 지혜로움을 발휘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 우리들이 늘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물론 우리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들도 있을는지는 몰라도 외국어를 함부로 이용하거나 외국어를 병용하여 사용함이 유식하다고 생각함에서인지 일상화되어 있음도 재고해 볼일이다. 과정 없이 결과가 도출될 수가 있을 것이며 옛날이 없으면 지금이 어이 있을 것인가? 요즘 사람들은 과거의 것은 모두 낡은 것이요 보수적이고 현재를 부정하는 구태의연한 폐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 모두 버려야만 하는 것인가. 아마도 자기의 전신인 조상도 부정하고 버려야 할 존재로 여김과 동시에 그를 추모하는 제례조차 부정하는 패륜을 저지름을 당연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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