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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내 아버지, 그 남자 <21>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6년 02월 03일(수) 13:41 163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헤어질 때 순태 점퍼주머니에 십만 원 권 수표 한 장을 찔러넣어 줬었다. 따스한 밥 몇 끼니라도 제때 챙기라고. 여윳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친구가 늪에 빠져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는 안타까움과 자책감 때문이었다. 그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동변상련일 것이다.
병원 선고가 갑작스레 떨어지지 않았다면 언젠가 그 자신이 순태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었다. 포장마차에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온 순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무척이나 보고 싶다며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길바닥에 엉덩이를 철퍼덕 깔고 앉아 대놓고 꺼이꺼이 목을 놓아 울었다. 순태 어깨를 두드려주고, 양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일으켜 세워주고 돌아서면서 그는 자꾸만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사람 사는 세상이 왜 이렇게 돼버렸는가.
인류 역사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싸움이었고 세상은 원래부터 양육강식의 정글이라고 누군가 말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어 왔었다. 민주주의 기틀을 세운 것은 인간에게 동등한 권리와 인권이 주어져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가 갈수록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돈이 최고가 돼버렸다. 돈을 벌 수 있고 큰돈을 거머쥘 수 있다면 쉽게 사람이기를 포기해 버리는 인간들이 사회 도처에 깔렸다. 사람을 등쳐먹는 인간들이 세상에 들끓는다. 그 누군들 자신이 살고 있고 자식이 살아갈 이 세상이 이토록 각박해지길 원하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갈수록 비정하고 삭막한 사막으로 변했다.
-민호야! 나도 준식이한테 네 얘길 조금 들었다. 근데 너 섣불리 장사 같은 거 사업 같은 거 할 거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 나처럼 한방에 날려먹진 않겠지만 손바닥에서 물 새나가듯 결국 빈 손 되기 십상이다. 차라리 말이야. 퇴직금은 고스란히 집에 놔두고 네 손으로 한 푼이라도 벌 수 있는 쪽을 생각해 봐라. 하다못해 벽지 바르는 기술이라도 익혀 몸으로 뛰는 그게 야무진 거고 남는 거다. 그게 네 가정 지키는 거다. 지금 내가 너라면 난 두 말 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 남 밑에서 구두를 닦더라도 체면 필요 없이 속 편하게 그렇게 살겠다. 내가 사업입네 깝죽대며 홀랑 말아먹은 그 퇴직금만이라도 아내와 자식들에게 그냥 남겨두었더라면! 이렇게까진 괴롭진 않을 거다. 그렇게 못한 게 내 천추의 한이다. 민호야! 내가 굳이 한 잔 더 하자고 한 것은 이 말을 네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참! 너 도박은 안 하겠지? 아예 안 해봤다니까 다행인데. 앞으로도 포커나 화투짝은 건드리지도 마라. 정선 카지노 쪽은 근처에도 가지 말고. 너, 주식은 하냐? 그래. 뭐 조금은 하고 있는 게 당연하지. 직장인 치고 주식 안 하는 게 이상하니까. 코딱지 같은 은행이자 받고 예금통장에 돈 고스란히 넣어두는 사람 얼마나 되겠냐? 하지만 말이다. 웬만하면 너 이제부터라도 주식 하지 마라. 내가 집 없이 서울을 떠돌면서 적잖게 만난 인생 실패자들이 한결같이 노름과 주식에 빠졌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내가 박스를 서로 나눠깔고 소주잔도 같이 기울일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우리 연배가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도 한때 주식으로 꽤나 잘 나갔던 사람이라고 하더라. 근데 주식 이십 년차에 그 사람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그 사람 말에 의하면 주식투자로 개인이 망하는 순서라는 게 있단다. 처음엔 너나할 것 없이 펀드부터 시작한다. 해보니 노름맛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직접투자를 하게 된다. 대량 우량주 위주로 매매한다. 슬슬 돈맛을 알게 된다. 다음엔 코스닥으로 이동해 더 큰 변동성을 노릴 정도면 이젠 완전히 중독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물·옵션 시장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렇게 주식판에 뛰어든 지 이십 년 정도 지나면 개미라고 일컫는 개인 대다수는 자살하게 되거나 신용불량자가 된다. 열에 아홉 명은 거지 신세로 전락한다. 돈도 돈이지만 노름판인 주식판에서 낭비한 시간과 건강 때문에 결국은 완전한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는 거다. 자신이 잃은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돈은 증권사, 투신사, 은행 빌딩으로 변해 있고 정부 세수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아직 젊다면…… 발을 뺄 기회가 이제라도 있다면 투기판인 주식판에서 떠나야한다. 욕심이 장밋빛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끊임없이 돈으로 유혹하지만…… 벗어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모든 것을 잊는 것뿐이다. 불로소득은 절대 돌아보거나 꿈꾸면 안 된다. 그게 덫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경제신문과 경제 방송을 끊어라. 아홉 시 뉴스도 보지 마라……. 우리나라 언론은 일반인들에게 결코 돈을 벌 수 있는 고급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언론은 그런 정보를 제공해 주는 역할이 아니라 대중에게 거짓과 사기를 치기 위해 정교히 설계된 시스템일 뿐이다. 언론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큐 백삼십 이하는 절대 신문을 봐선 안 된다. 행간을 읽어낼 능력이 없으면 신문만큼 해독을 끼치는 것도 드물다. 주류신문을 보고 열광하는 사람들은 딱 두 종류 사람들뿐이다. 시스템 설계자와 살 날이 얼마 안남은 노인들이다. 물론 어폐가 있고 독단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나는 그 사람 말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 왜냐? 그 사람 삶 자체가 증거니까. 한때 주식으로 빌딩까지 사들였던 그 사람은 지금은 거렁뱅이가 되어 지하도를 전전하며 살고 있다. 까닭에 그 사람과 나, 이 땅에서 거렁뱅이가 된 자들의 충고를 반면교사 삼아 너라도 이런 지옥의 늪에 빠져들지 말기를 바란다.
순태는 그렇게 말했었다.
-세상은 온통 개미지옥이다. 남의 돈을 손쉽게 빨아먹기 위해서 곳곳에 덫을 설치해 놓고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기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고 세상이다. 뱀 같은 그 혀에 휘말려드는 순간 장사 없다. 그냥 내 꼴 나는 거다. 그러니 내 말을 꼭 명심해 둬라. 그래야 너와 네 가족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찬바람이 부니 자식들 얼굴이 더욱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술 취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
순태의 울부짖음이 전철을 기다리며 서 있는 그의 귓가에 쟁쟁했다.
전철 좌석에 앉은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간 눈을 떴다가도 다시 깊게 내려감았다. 마음이 산란하고 괴로웠다. 언뜻언뜻 순태 얼굴과 자신의 아이들 얼굴이 교차해 떠올랐다.
그는 눈 붙이기를 포기했다. 누군가 놓고 내린 석간신문이 근처에 있어 신문을 펼쳤다. 신문 사회면에 요즘 젊은 세대의 결혼관을 조사한 통계기사가 나와 있었다.
이십 대 남녀 천 명을 대상으로 했다.
혼자 살 것이다, 결혼 안 해도 상관없다, 가 무려 육십팔 퍼센트다. 직장과 일이 있다면 삶의 질적 여유를 혼자 즐기는 게 낫지 꼭 반려자가 필요치 않다는 게 젊은 세대 의식의 대세다.
결혼을 한다면! 한다 해도 아이는 안 낳겠다!, 아이는 없어도 괜찮다!, 가 사십 퍼센트에 육박하고 있다.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 주된 이유가 주택문제,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 아이 키우고 교육시키는 데 너무나 많은 비용이 지출된다, 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 출산국이고 출산율이 앞으로 영점대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내용의 기사가 커다랗게 실려 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수치들은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 앞으로 인구가 급속히 줄어든다는 거고 머잖아 젊은이는 적고 노인들만 많은 초고령사회로 우리나라가 진입하게 된다는 걸 뜻한다. 즉 머잖은 장래에 국가가 노후화됨과 동시에 세대 간 연령층 간의 인구 불균형으로 사회기반 전체가 한꺼번에 붕괴되고 와해될 수 있다는 거다.
그는 묵묵히 지면을 빠르게 넘겼다. 온통 안 좋은 소식들뿐이다. 불법과 폭력과 비리가 난무하는 정치면과 장기불황과 구조조정, 파업, 주가 하락에 대한 관련 기사를 담은 경제면……. 나라가 어쩌다가 점점 이 지경이 돼가는가. 그는 거푸 깊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음 장은 전면 통광고였다. ‘아빠 힘내세요!’란 타이틀로 정부 한 부처에서 낸 공익광고였다. 줄무늬 와이셔츠에 푸른 넥타이를 맨 사십대 중반의 우람한 사내……. 광고 속 남자는 출근하는 자신을 배웅하는 아내와 어린 딸에게 불끈거리는 알통을 자랑하고 있었다. 힘차게 거머쥔 주먹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잠시 그 광고를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보던 그의 얼굴이 일순간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신문을 아무렇게나 짓구겨 빈 좌석 저 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순태가 다시 떠올라서일까. 삶의 벼랑까지 몰린 자신의 처지 때문인가. 그는 붉은 노기가 스밀 정도로 무척이나 화가 치민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 들어서 방송이고 신문이고 할 것 없이 전 매스컴에서 시도 때도 없이 ‘아빠 힘내세요!’란 광고를 연발하고 남발하고 있었다. 일견 의도는 좋아보인다. 든든하고 믿음직스런 남편과 아리따운 아내, 예쁜 딸이 짓고 있는 함박웃음은 행복한 가정 그 자체다.
그런데 그 광고 밑바닥에 너무나 몰염치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저의에서 비롯된 선동적 세뇌가 깔려있다고 한다면…… 그만의 과민반응이고 자격지심일까.
우리나라는 나름 세계 십삼 위의 경제강국이다. 근로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 세계 최장의 노동국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국민들은 매일매일 뼈 빠지게 일한다. 그렇게 평생을 자식 공부 시키고 결혼 시키느라 허리가 휘는 게 이 시대 어른들의 자화상이다.
노후대책을 조금이라도 준비하는 직장인이 삼십 퍼센트 남짓.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지만 현실에 쫓겨 마땅한 방도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이 땅에 사는 절대 다수가 평생을 바쳐 열심히 일했는데도 정작 그들의 미래는 왜 잿빛으로 암울하고 우중충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을까.
나라에 평생 세금을 바쳐왔음에도 왜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은 왜 이다지도 허술한가?
‘아빠 힘내세요!’의 광고 이면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깔려 있다.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저의가 깔려 있다고 그는 느끼는 것이다. 찬찬히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너무나 또렷이 보인다.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 시스템은 사회 전체적, 또는 국가가 져야할 책임과 의미를 상당 부분 개인에게 전가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가 속한 G20의 여타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복지 부분이 너무나 미흡하다.
복지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국가가 책임지고 자기 국민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거기에 맞춘 편의를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이다.
국민에게 국가를 위한 사대 의무가 지워져 있다면 국가가 국민을 향한 가장 핵심적인 의무 중 하나가 바로 복지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사유재산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과 함께 국가가 국민에게 반드시 해줘야 할 복지는 국가가 국민에게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이고 실제적인 이유다.
국가가 국민을 뭘로 보느냐? 어떻게 대하느냐? 그 척도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복지다.
그 점에서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를 각 가정과 개인에게 많이 의존하다 못해 강제로 떠안기고 맡기는 시스템이다. 가정을 지키는 가장이 무너지면 그 가정의 기반은 그냥 삽시간에 허물어진다.
가족의 구성은 단 한 번의 외부 충격에도 뿔뿔이 흩어지고 와해되기 쉬운 너무나 취약한 구조다. 내 고향은 내가 지킨다는 향토예비군훈련을 기성세대가 일찍이 받아왔듯이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가장의 숭고한 사명감과 희생심! 정신력…… 아내 사랑…… 자식 사랑……. 이런 감정에 기대어 아슬아슬하게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회의 구성단위인 가족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진다. 도미노처럼.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된 그 근본적 책임은 국가의 직무유기 때문이다. 국민 개개인에게 국가가 마땅히 감수해야 할 의무를 전가시키는 것은 명백한 국가의무 불이행이다. 개인의 실패를 사회나 국가 탓이 아닌 고스란히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 말이다. 더군다나 현 MB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고환율정책을 통해 대기업의 수출을 장려했다.대기업이 살아야 국민이 산다는 미명 하에 임기 내내 밀어붙인 정책이지만 결국 폭증하는 비정규직과 고물가를 유발케 해서 전 국민의 주머니를 털었다. 그들이 줄창 주장했던 낙수효과는 사회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기업과 은행, 정부 고위관료를 빼고는 자영업자나 일반인들은 저축은 커녕 먹고살기도 빠듯한 세상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서양 아이들은 일찍 독립하는데 왜 우리나라 아이들은 부모한테 오래도록 얹혀살까?
그것은 독립이 가능한 사회시스템이 미비하거나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의 끈질긴 상호의존관계가 평생 동안 유지되고 지속된다. 어릴 때 부모가 자식을 돌보고 늙어서는 장성한 자식이 부모를 돌보게 하는 호환시스템이 평생 동안 이어진다.
만약 사회보장제도가 나라에 잘 구비돼 있다면 어떨까? 자녀의 학비는 내려갈 것이고…… 사회에 나오면 독립자금도 나올 것이고 노부모의 노후는 상당 부분 국가에서 책임질 것이므로 서로 논리적으로 깔끔한 독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게 안 된다.
안 되니까 온갖 가족애와 동양 유교사상까지 교묘하게 주입시켜가면서 서로 끈끈하게 들러붙게 만든다.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것이 걱정되어 가족이란 한 덩어리로만 의지하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이유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이기 때문이다.
너무 심한 생각 아니냐고? 편향된 반체제적 사고 아니냐고?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이지 않은가.
주변을 돌아보라. 지금 당장 널 도와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핏줄밖에 없다! 현재를 사는 모든 어른들이 가족을 향해 부르짖는 말이다. 이게 국가의 복지부재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게 아니고 무엇이라 말인가.
매스컴에서 이렇게 ‘아빠! 힘내세요!’ 떠드는 이유는 결국 간단하고 명료해진다. 너희들 문제…… 이거 국가적으로 어떻게 해줄 생각도 없고, 여력도 없으니…… 너희 가장 어떻게든 잘 추슬러서…… 사회적으로 문제 안 생기게 좀 해라……. 결국 이런 뜻으로 귀결되는 게 아니겠는가.
전철 내에서 흔들리며 그런 생각을 곱씹는 그의 표정은 씁쓸했다. 쓸쓸하고도 스산했다.
사람이 인간성을 잃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은 과연 불가능한 꿈인가. 가장이 능력껏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을 공부시키다가 분명한 한계사유로 인해 가장역할이 중지된다면. 그때 국가가 그 나머지를 책임져 아이들을 키우고 남은 공부를 시켜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순태도 그러했고 그 자신 또한 각각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장 고통을 받는 공통적인 부분이 바로 자식에 대한 무한 책임의식이다. 단지 죽어가는 자로서 기분이 울적하고 답답하고 괴로워서 하는 넋두리는 아니다.
일한 만큼의 복지를 세워달라. 그게 삶과 세상에 대한 그의 간절한 바람이고 기도였다. 국가가 존재하고 정부라는 실체가 분명히 있다면, 국가가 탐욕스런 거대한 괴물이고 짐승이 아니라면 분명히 기억해 달라.
모든 가장들이 열심히 일하면서도 매순간 불안하고 불행한 이유는 바로 사회안전망의 부재 때문이고 미래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국민에게 제공하는 복지의 울타리가 너무나 헐겁고 싸구려이기 때문이다. 복지가 미약할수록 개인의 삶은 결국 이렇듯 외통수다. 무너지면 그대로 무너지고 쓰러지면 그대로 쓰러진다. 친구 순태처럼. 그가 당면한 지금의 모든 심각한 문제처럼 말이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국민을 위해서인 게 분명하다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한 집의 가장으로서 그는 간절히 바란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면 남은 내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하나……. 국가경제와 사회경제, 가정경제의 주체자인 개개인의 가장들이 적어도 그런 두려움과 불안에 떨지 않을 정도는 국가가 앞장서 책임져 줘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가장들과 그 누구라도 즐겁게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일의 효율이 오르고 사람 간의 신뢰와 애정이 넘쳐날 것이다.
국가가 그렇게 사람 살 만한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복지고 국가의 존립 이유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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