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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렬의 經典이야기 ‘공자왈맹자왈’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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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5일(목) 15:00 164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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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치중화면 천지위언하며 만물육언하니라
“中과 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에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 이니라.”
쉽게 의역하면 일상생활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편협적인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중용의 위치에 자리하고 모든 일에 융화되고 화합 할 수 있다면 하늘과 땅이 제 자리에 있게 되고 만물이 자라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하고 할 것이다.
中이란 희로애락 등의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는 상태의 내면적 갈등이 없는 마음을 의미하며 치중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그에 대한 처신이 부합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치중 설은 본래의 모습을 지키면서도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강조한다.
송대에 이르러 성리학이 성립하면서 특히 중용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이에 따라 중화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졌다. 정이는 중을 적연부동으로 화를 감이수통으로 해석했다. 이를 계승한 주희는 사려가 싹트지 않고 사물이 이르지 않은 때를 미발이라 하고 이때의 심은 적연부동한 본체가 되며 천명지성이 온전히 갖추어진다고 했다. 따라서 이러한 상태에서는 과불급이나 치우침이 없기 때문에 중이라 했다.
和는 단단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는 順하다는 의미로 표현되며 군자는 화합하고 소인은 화합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군자는 義에 화합하고 소인은 의에 화합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화를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규범에 모두 알맞은 것을 화라 하였고 화는 천하의 달도라 하였다. 또한 중화에 극진하면 천지가 제자리에 안정되며 만물이 제 삶을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화는 주체의 발현에 조화의 극치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어 만물을 얻는다고 하였다. 형제가 모두 具存하여야 화락하다는 내용에서는 형제들의 모임과 우애의 曲盡으로서 화를 설명하고 있다.
경전에 보인 화의 의미를 다시 종합 정리하면 본질과 인간관계 그리고 인간과 대상과의 관계 사물간의 관계에서의 화로 요약된다. 본질 문제로 본래성과 성실성의 원만한 연계를 화로 인식하며 개개인이 각각 인격체로서의 만남에서 상호화합 하는 인간관계를 화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 상호작용에는 변인으로서의 사물이 개입하게 되며 여기서 자기와 타인 그리고 사물과의 관계가 성립된다. 이 관계의 조화를 화로 설명하는 것이고 상호작용은 본래성에 연계된 규범에 의하여 주체적 상호입장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보편타당한 것이다.
원초적인 이치를 거슬리고 인위적으로 그 원칙을 바꾼다면 우주의 이치와 순리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을 건가 말이다. 아마도 우주의 신비로움이 깨어지고 순조로움에 의한 변화나 질서가 깨어지면 우주의 모든 행성에서 정상적인 괘도를 벗어나 이상 현상과 더불어 몰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편협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중용의 위치에 자리하고 모든 일에 융화되고 화합 할 수 있다면 하늘과 땅이 제자리에 있게 되고 만물이 자리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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