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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렬의 經典이야기 ‘공자왈맹자왈’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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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5월 03일(화) 15:39 169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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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父母之喪 無貴賤一也
부모지상은 무귀천일야니라.
“부모의 상은 귀천 없이 하나인 것이니라.”
임금이 부모의 상을 당하더라도 귀천을 떠나 3년상을 기본으로 티내지 않도록 하였나니 누군들 제 부모 가시는 길 최고로 모시고 싶지 않으랴?
왕이라면 태산 같은 봉분에 모시고 싶지 아니할까? 부모 모시기의 기본은 과유불급으로 예를 다하되 효는 양구체(養身)의 효가 아니라 양지(養志)의 효로 정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며 돌아가시면 정성을 다하여 시묘살이를 해야 할 것이니라.
시묘살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이 탈상할 때까지 3년 동안 묘소 근처에 움막을 짓고 산소를 돌보며 공양을 드리는 일이다. 살아계실 때 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후에도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돌보는 것은 당연하다.
≪삼강행실도≫에서 고려시대 한림학사 최누백은 수원호장 최상저의 아들이다. 15세 때에 아버지가 사냥하다가 호랑이에게 살해되자 최누백이 그 호랑이를 잡으려 하니 어머니가 말렸으나 최누백이 말하기를 “아버지의 원수를 어찌 갚지 않겠습니까?”하고 곧 도끼를 메고 호랑이의 자취를 따라갔다.
호랑이가 아버지의 시신을 이미 다 먹고 배가 불러 누워 있으므로 최누백이 곧장 앞으로 나아가 호랑이를 꾸짖어 말하기를 “네가 내 아버지를 먹었으니 내가 너를 먹어야 겠다” 하니 호랑이가 꼬리를 흔들며 엎드려 있었다. 드디어 호랑이를 찍어 죽이고 배를 갈라 아버지의 뼈와 살을 내어 그릇에 받들어 담고 호랑이 고기를 독에 넣어 냇물 속에 담갔다. 아버지를 흥법산 서쪽에 장사하고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어느 날 잠시 졸고 있을 때에 그 아버지가 와서 시를 읊었다.
『수풀을 헤쳐 가며 효자 여막 찾아오니 천륜의 정 깊거니와 눈물 또한 무궁토다. 흙 져다가 날마다 무덤을 쌓아 올리니 그의 벗 누구런가 청풍과 명월이라. 살아서는 봉양하고 죽은 뒤엔 묘 지키니 효도에 시종이 없다고 그 누가 일렀던고.』 읊기를 다하고는 보이지 않았다. 복(服)을 마치고 나서 호랑이의 고기를 꺼내다가 다 먹었다.
『최씨 아비 산중에서 토끼 여우 사냥타가 도리어 자기 육신 범의 먹이 되었네. 그 당시 저와 같은 효자가 없었던들 그 누가 도끼 휘둘러 범의 해골 찍었으랴. 범 잡아 원한 갚음 너무도 대견한데 산 서쪽 시묘 살이 삼년간 다시 했네. 짧은 글 와서 외니 꿈만은 아니리라 그 슬픔 그 효성이 구천에 통함일세.』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살기를 100여년도 못되거늘 귀천이 어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내 부모가 비록 남과같이 배우지 못하고 인물이 남보다 조금 뒤 떨어진다고 하여 내게 부족함이 있었던가? 오직 나를 이 세상에 오게 하여 주신 그 큰 은혜는 무엇과도 비교가 아니 되는 큼이 아니던가?
내 비록 남보다 많이 갖지도 못하고 남과 버금가게 배우지도 못 하였을지라도 내 부모는 더 많이 그리고 더욱 크게 되라고 온갖 정성과 축수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던가! 부모님에게는 내가 삶의 전부였고 삶의 목표였음이 사실이 아니던가 말이다. 이제 그 무거운 짊을 벗어내려 놓으시고 떠나시려니 가벼이 가시도록 보내드림이 옳을 것이다. 이에 어찌 귀천이 있으랴. 정성을 다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함이 내가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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