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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내 아버지, 그 남자 <25>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6년 07월 01일(금) 09:28 173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통증이 하루에 한두 번 꼴로 그를 방문했다. 2010년 10월 16일이다. 오른쪽 어깨가 당기는 듯 무겁고 소변색깔이 눈에 띄게 짙어졌다. 어젯밤에는 잇몸에 피가 났다. 코피까지 터졌다. 화장실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다행히도 가족들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언제까지 숨기긴 힘들 것이다.
의사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복부 상단 오른쪽 간 부위의 둔통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라고 한다. 점차 면도칼로 긋는 듯한 예리한 통증으로 바뀔 공산이 크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 그가 하루하루 느끼는 병세가 다르다.
분명해졌다. 부딪친 곳마다 살갗에 멍이 시퍼렇게 들고 손목과 무릎이 자주 시큰거린다. 쉽게 잠들 수 없는 뻐근한 어깨 관절통증까지 생겼다.
깊은 잠을 잘래야 잘 수가 없다. 하룻밤에 네댓 번 깨어나는 얕은 토막잠을 잘 뿐이고 한번 깨면 좀체 다시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식욕이 떨어져 체중이 줄었다. 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간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좁아지고 빨라지고 있다.
병세가 깊어질수록 증세는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 지금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몇 가지의 진통제를 섞어 먹으면서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지만 머잖은 날엔 강력한 모르핀 처방이 뒤따라야할지 모른다.
하루해가 눈에 띄게 짧아졌다.
바람결에 서리와 한기가 배어들기 시작한다. 나뭇잎마다 붉고 노란 단풍이 들었다. 아버지를 뵈러 가야겠다. 어머니를 뵈러 가야겠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2010년 11월 19일

아내에겐 일박이일 출장으로 부산을 다녀오겠다고 말해 두었다. 아파트를 나온 그는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해 달리다가 여주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탔다. 집에서 출발한 지 세 시간 반이 지나서야 고향인 H읍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늘 그래왔듯이 제일 먼저 선친이 계신 선산을 향했다.
우회도로를 통해 H읍을 지나쳤다. H읍에서 선산까지는 삼십여 분 거리. 드넓은 벌판엔 추수를 끝낸 빈 논들과 누렇게 익은 볏단을 거둬들이는 농기계의 움직임이 부산스럽다.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일컬어온 고향. 투명한 흰 쌀과 하얀 명주, 하얀 분이 오르는 맛난 곶감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명성답게 산비탈 곳곳에는 뽕나무밭이 많이 있었고 여기저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감들이 열려 있었다.
그의 집이 풍요롭진 않았지만 고향산천만은 늘 풍요로웠다. 눈에 익은 오봉산 자락과 시냇물을 지나 과수원과 정미소건물을 어귀에 부려놓은 동네를 지나갔다. 논둑길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몇 마리 소와 까만 염소들.
그의 차는 아스팔트길에서 흙길로 접어든 뒤 산 사이 길을 올라갔다. 천수답에 물을 대는 저수지의 높은 둑이 보이자 그는 마음을 차분하게 다잡았다. 두어 개의 검은 바위와 함께 툭 삐져나온 산비탈을 휘어돌면 선산이었다.
아버지는 고봉밥 같이 둥그런 잔디를 덮고 누워 계셨다. 볍씨같이 야문 가을볕이 그득했다. 그는 준비해 간 북어를 뜯고 소주 한 잔을 올린 뒤 큰 절을 하였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아버지는 대답이 없고 근처 갈참나무 가지에 매달린 마른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아버지 무덤에 나있는 잡초를 손으로 뽑아냈다. 무덤은 나란한 두 기로 쌍봉이었다. 아버지 당신께서 큰 병이 들자 선산을 지키는 사촌동생과 대학생이던 그에게 자신의 묘 옆에 어머니 가묘를 미리 만들게 하셨다.
그가 스물다섯 살 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위암이셨다. 아버지께서 숨을 거두실 때 그는 옆에서 아버지 오른 손을 두 손으로 꽈악 싸잡고 있었다. 평생을 남의 논과 문중에서 내려오는 논을 경작 하시다가 세상을 뜨셨다.
죽음이 산 사람 목숨줄을 끊는 게 그리 힘든 것이던가. 아내와 아직도 공부 중인 외아들을 놓아두고 가는 게 싫어서 버티시는 것일까.
임종 때 그의 손을 거머쥔 아버지 손아귀 힘은 무섭도록 강했다. 아버지는 그의 손을 본인 가슴 쪽으로 세차게 끌어당겼다. 그의 몸 전체가 딸려갈 것만 같았다. 그때 그는 아버지 죽음 쪽으로 함께 끌려들어갈까 싶어 겁이 더럭 났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의 그 칡뿌리 같던 완강한 힘이 스르르 풀렸다. 동아줄처럼 느껴지던 팔의 근육과 힘살이 어느새 새끼줄 같고 지푸라기 같아졌다. 이윽고 바람이 돼버렸다.
아버지는 눈을 부릅뜨신 채 운명하셨다. 한이 많으셔서일 것이다. 그는 아버지 눈을 두 손으로 감겨드리며 울었다.
덩어리 진 울음을 아버지 가슴에 뚝뚝 떨구며 말씀 드렸었다.
-아버지…… 아무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제가 엄마 모시면서 잘 보살펴드릴 게요. 저도 열심히 잘 살 테니까 염려하지 마시고요. 먼 저승길…… 마음 편히 가세요.
그는 그렇게 아버지 귓바퀴에 눈물 다짐을 부어 드렸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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