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열산호는 바다에 접해 있는데 관동에서 가장 크다”
|
|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 95 > 화진포의 팔경과 시문학 고찰 [6]
|
|
2016년 08월 23일(화) 09:47 177호 [강원고성신문] 
|
|
|
Ⅳ. 화진포의 시문학
1. 기행문(紀行文)
1)〈관동록(關東錄)〉= 홍인우(洪仁祐)50)가 관동지방의 명승지들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으로, 그의 문집인《치재유고》3권에 수록되어있다.
작자는 조선 명종 8년(1553) 4월 9일부터 서울 동소문(東小門)을 출발해서 4월 11일 김화현에 도착하여 잠을 자고, 5월 20일까지 40일 동안 금강산의 단발령·장안사·만폭동을 둘러보고, 이어서 구룡연·비로봉·구정봉 등을 구경하고 관동지방의 명승지인 총석정·삼일포·청간정·영랑호·낙산사·경포대를 지나 대관령을 넘어 평창, 원주를 지나 집으로 이르러 여정이 끝난다. 1553년 5월 2일 간성에 이르러 열산현(烈山縣)에서 남긴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60여 리 떨어진 명파역(明波驛)까지 가서 쉬었다. 밥을 먹고는 다시 10여 리를 가서 열산현(烈山縣)을 지났다. 열산현의 북쪽 2리 무렵에는 큰 호수가 있었는데 그 둘레는 수십 리나 되는 듯 넓었다. 언덕과 골짜기가 호수를 감싸고 있었는데 물이 가득하여 넘실거렸다. 민간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큰 홍수로 인해 옛날 한 현이 물속에 잠겼는데, 하늘이 맑아지고 물결이 잔잔할 때에는 그 현에 있던 집들과 담장이 그대로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거탄천(巨呑川)을 건너서 간성군(杆城郡)의 한 민간에서 여장을 풀었다.
2)〈금강록(金剛錄)〉= 정엽(鄭曄)이 양양 부사로 재직하던 1617년 윤4월 초1일(기미) 나만갑(羅萬甲), 이상질(李尙質) 두 사위와 무산(巫山,강원도 양양)을 출발하여 14일 동안 금강산 여행하는 길에 기록한 기행문으로 《수몽선생집(守夢先生集)》3권, 〈잡저(雜著)〉에 수록되어있다.
특별나게 ‘능파대(凌波臺)’ 명칭을 ‘능허대(凌虛臺)’라고 불렀으며 ‘거탄천(巨呑川, 巨春川)’을 ‘거륜천(巨淪川)’으로 부르고 있는 사실에 매우 흥미로운 점이었다. 여행 다음날인 4월 초2일에 간성지역의 화진포에 들른 그는 호수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군청의 서쪽 문으로 성을 나서니 바람이 불어 먼지와 모래로 눈을 뜰 수가 없다. 거륜천(巨淪川)에 도착하여 샛길로 화진포에 들어갔다. 호수가 언덕과 골짜기에 잠겨 눈 닿는 데까지 물이 가득하였다. 송림이 띠를 두르듯이 해구(海口)를 막았는데 몇 천 그루인지 모르겠다. 속설에 전하기를 옛날에 여기에 읍을 두었는데 하루아침에 용이 물에 잠기게 하여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맑은 날 파도가 잔잔하면 지금도 담장과 지붕이 보인다고 하니 괴이한 말이다. 쓸쓸히 서너 집이 호숫가에 임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그 중에 창백한 얼굴에 백발을 한 자가 자기 이름이 이전(李筌)이라고 하는데 나이를 물어보니 79세이다. 귀와 눈이 밝고 정력이 조금도 쇠하지 않았으니 이것 또한 거처에 따라 기(氣)가 옮겨간다는 것이란 말인가? <중략>
3)〈유산록(遊山錄)〉= 이명준(李命俊)의 작품 〈유산록(遊山錄)〉은 1628년(인조 5) 강릉부사로 제수되면서 공무 중에 틈을 내어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것으로 지은 것으로 《잠와유고(潛窩遺稿)》3권, 〈잡저(雜著)〉에 수록 되어있다.
출발과 노정(路程)을 보면 강릉을 출발하여 관동 일대와 금강산을 유람한 뒤 다음 달 5월 5일 강릉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23일간의 여정을 기록하였다. 4월 15일 열산호에 들러 기술한 내용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월 15일 병오 새벽에 대궐을 보면서 예를 하였다. 아침에 간성을 출발하여 20리를 가서 화진포(花津浦)에 도착하였다. 토착인들이 처음 말하기를 최초에는 운근현(雲根縣)이었다고 한다.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로 들어가니 물 밑바닥에 집들이 은은히 비쳤는데 그것은 경험하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다. 대개 모래톱과 물가가 맑고 넓으면서도 그윽하니 경포대와 비교한다면 경포대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 경포대의 명성이 도리어 위에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중략>
4)〈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 신익성(申翊聖)이 1631년(인조 9년) 가을 금강산을 유람 한 뒤에 남긴 기행문으로 〈유금강내외산제기(遊金剛內外山諸記)〉와 〈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를 지었다.
이 작품은 《낙전당집(樂全堂集卷)》권7,〈기문(記文)〉에 실린 것으로 서울에서 출발하여 다시 되돌아 올 때까지의 주요 사건을 조목조목 기록하고 있으며 여행 중에 만난 사람 및 그와의 대화, 명승과 유적에 대한 특징과 감회를 78개의 조목으로 나뉘어 기술하고 있다. 여러 기행문과 달리 언제 누구와 금강산 동행한 인물에 대해서 기록이 없고 다만 1631년(인조 9) 9월 13일 열산호을 구경하고 간성을 걸쳐 15일에는 경포호에 도착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간성 가는 길에 갈매기 수천 마리가 모래톱에 내려앉는 것을 보고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바라보노라니 물굽이 너머 어부의 집이 안에 기대어 있고 부녀자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않았는데 언덕처럼 쌓아 놓은 것이 있으니 작은 고기들이었다. 갈매기 떼들은 사람들이 움켜 쥘 만해도 꺼리지 않았다. <중략> 열산호(烈山湖)는 바다에 접해 있는데 관동지방에서 가장 크다. 바라보니 아득하기 그지없는데 떠다니는 배가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명사(鳴沙)가 수백 리나 펼쳐져 있는데 혹은 큰 가마를 타고 혹은 작은 가마를 걸터앉아 마음대로 가다보니 고성 길을 막 벗어나게 되었다. 도중에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앉아서 쉬기도 하고 천천히 걷기도 하였다. 지나가는 길이 가면 갈수록 더욱 아름다워 일일이 다 볼 여가가 없었다. 매향포(埋香浦)·우두대(牛頭臺)·화진포(花津浦) 등은 더욱 기이한 곳이다.
5)〈동유록(東遊錄)〉= 이세구(李世龜)의 이 작품은 1700년(숙종 26) 금강산을 유람 한 뒤에 남긴 기행문으로 《양와집養窩集》12권 〈잡저(雜著)〉에 수록되어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열산호(烈山湖), 화진포(花津浦), 화진호(花津湖) 세 가지 지명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여타의 작품과 다른 점이다. 그가 바라본 하나의 호수는 열산 현에서 북쪽 2리에 떨어진 烈山湖라고 하였으며 또 하나는 호수가 7,8리를 더 가서 동쪽으로 1리쯤에 花津湖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內湖와 外湖를 가리켜 두 개의 호수로 보고 있다.
28일, 기묘일. 새벽에 또 보슬비가 내리다가 아침이 되니 개었다. 남쪽으로 5리쯤 가서 애현천이라는 재를 넘어 해안을 따라 25리를 갔다. 열산 역마을서 아침밥을 먹었다. 그 서쪽에 열산현 창고가 있었다. 그 북쪽으로 한 2리쯤 떨어진 길 아래편에 열산호가 있었는데 호수물이 산골짜기에 가득 차 있었는데 화진포와 잇닿아 있었다. 또 7, 8리를 더 가서 동쪽으로 1리쯤 떨어져 있는 화진대에 올라보니 앞으로 화진호가 펼쳐져 있었는데 고요한 호수가 무척 넓어 뱃놀이도 할 수 있고 고기잡이도 할 만 하였다. 북쪽 언덕 수림 속에 앉은 마을은 몹시 한가로워 보였다. 남쪽으로 한 5리쯤 가니 큰길이 나섰다. 또 10리를 가니 바다 수달이 바위 끝에 엎드려 있었는데 물새가 떼를 지어 우는 바람에 머리만 약간 내밀고 있었다. <중략>
6)〈북유록상(北遊錄上)〉(1819년)= 유휘문(柳徽文)의 이 작품은 1819년 금강산 유람 길에 기록한 기행문이며 《호고와문집(好古窩文集)》16권, 〈잡저(雜著)〉에 수록되어있다.
그는 화진포에 이르러 말하기를 “네 갈래의 시냇물이 합수되어 호수물이 엄청나게 많이 고이는 바람에 30여리가” 되었다며 화진포의 생성과정을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지역의 토박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 섞여 있어서 지역의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원문에서 ‘원당(院塘)’지역은 지금 지명의 同音인데 한자가 틀리고, 최씨(崔氏) 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간성군을 지나는데 군이 앉은 고을이 방죽 옆 산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돌을 쌓아서 만든 성이었다. 마을에 있는 못가까지 이르니 날이 벌써 저물었다.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은 석로라고 하였다. 우리 일행을 자기 집으로 안내하여 들이더니 극진히 대접을 하였다. 알고 보니 간성에 사는 사대부출신이었는데 일찍이 관북, 호서 등 지방을 두루 유람한 적도 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을 환히 알아 자세하게 일러주었고 영동의 산수와 인물, 풍속 및 민요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들려주었다. 마을 앞에 있는 큰 호수의 이름이 화진포라고 하였다. 네 갈래의 시냇물이 합수되어 호수물이 엄청 많이 고이는 바람에 둘레의 길이가 30리나 된다고 하였다. <중략>

| 
| | ⓒ 강원고성신문 | 김 광 섭
- 향토사학자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사무국장
- 논문 : 〈선유담의 고찰〉, <간성의 만경대와 누정 고찰〉
|
|
|
|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