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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설악 중간에 위치한 금강산 제1봉 ‘신선봉’

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2] 신성봉 아랫마을을 걷다
선인능을 따라 이어지는 산자락에 ‘화암사’가 포근하게 안겨

2017년 06월 07일(수) 12:56 196호 [강원고성신문]

 

↑↑ 멀리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신선봉 정상. 책 23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흔히 금강산을 일만이천봉이라고 말한다. 기묘하고 빼어난 봉우리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금강산의 끝자락 고성 토성면에 해발 1,204m의 신선봉神仙峰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신선봉을 영험한 금강산의 제1봉이라고 불렀다. 신선봉에서 남쪽 상봉의 고갯마루인 미시파령, 지금의 미시령을 경계로 북으로는 금강산이, 남으로는 설악산으로 구분된다. 신선봉은 남쪽 산마루의 황철봉을 정점으로 저항령과 이어지고 그곳에서부터 남도로 백두대간이 흐르고, 동쪽으로 울산바위가 이어진다. 미시령 정상에서 화암재를 사이에 두고 1㎞ 지점 정상부에 너덜로 이루어진 암봉이 신선봉이고, 능선은 암릉으로 이어져 있다.

금강산 끝자락의 화암사

상봉에서 암릉 선인능을 따라 이어지는 산자락에 화암사禾巖寺가포근하게 안겨 있다. 경내는 단아하고 밤새 내린 이슬로 청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찰엔 정휴 큰 스님과 웅산 주지스님이 중생제도 衆生濟度와 부처님의 공덕을 쌓기 위한 불사가 한창이다. 잘 단장된 경내를 내려다보며 금강산의 말사로 대가람을 이룬 사찰의 옛 흔적을 더듬어본다.
서기769년 신라36대 혜공왕 5년 진표율사眞表律使가 금강산의 남쪽 기슭에 비구니 도량으로 창건했다. 창건 당시 이름은 화엄사華嚴寺 였는데, 사찰의 기록에 따르면 다섯 차례나 화재를 입게 되면서 이름을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원년 화재는 서기 1623년 조선 인조 때이다. 이때 화재의 원인을 사찰의 입구에 있는 수바위와 뒤편에 있는 코끼리 바위 때문이라고 전해온다. 이 두 바위의 맥이 서로 상충하는 자리에 절터가 있어 수바위가 뿜어내는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여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다는 것이다. 원년 화재로 사찰이 소실되고 3년 뒤인 인조3년에 다시 고쳐지었다. 두 번째 화재는 서기 1634년 인조12년에 산불이 나면서 다시 소실되었고 서기 1644년 인조22년 구지동舊址東 옛 절터의 동쪽에 옮겨 고쳐지었다. 지금의 절이 창건 당시 위치에서 남쪽으로 100m쯤 떨어진 장소에 위치하는 것을 보면 이때 옮겨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기 1662년 현종3년에 세 번째 화재를 당하여 그 해에 중건되었으며 서기 1760년 영종36년에 화재로 다시 소실된 것을 다음해 옛터에 다시 세웠다. 서기 1864년 고종 원년에 또 화재로 소실되어 그해 9월 지금 있는 자리인 수바위穗峰 밑에 옮겨 짓고 이름도 수암사穗岩寺라 하였다.

↑↑ 일주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 요사채 등만 남은 화암사 전경. 책 25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일견 수암사穗岩寺의 이삭 수穗의 변에 속하는 화禾는 불 화火와 동음이므로 화불을 면한다는 뜻이고, 또한 수穗는 물 수水와 동음이므로 물로써 화火를 막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서기1912년에 다시 화암사禾岩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수암사穗岩寺의 이삭 수穗자에서 오른쪽 혜惠를 없애고 벼화 변禾만 남기게 된 것이다. 이후로 큰 화재는 없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일주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 요사채 등만 남았다. 문화재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부도군浮屠群과 일부 계단석이 남아 있다. 미타암彌陀庵과 안양암安養庵 두 암자도 있었다고도 전한다.
사찰의 이름에 관해서는 또 다른 사료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360여 년 전 서기 1633년 인조 11년, 택당 이식李植, 1584~1647 선생이 간성군수로 있을 때 썼다는 『간성지 화암사조』에 “천후산天吼山 미시파령彌時坡嶺, 현재의 미시령 아래에 화암禾岩이란 바위가 바른편에 있기 때문에 절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 이 절은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어 가까이는 영랑호, 멀리는 창해에 임해 있고 양양, 간성의 모든 산과 평원심곡이 눈 아래 보이고 넓고 아름다운 경치는 절이 토해 놓은 것 같다. 절 뒤에는 반석과 폭포가 특수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가히 볼 만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금강산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발연사가 있고, 서쪽에는 장안사, 남쪽에는 화암사가 있어 금강산에 불국토를 이루려는 진표율사의 뜻이 담겨 있는 사찰이라 소개하고 있다.

↑↑ 달걀 같기도 하고 이삭 모양 같기도 한 수바위와 그 위에 얹어진 왕관 모양의 반석. 그 윗면에는 깊이 1m, 둘레 5m나 되는 웅덩이가 있다.

ⓒ 강원고성신문


사찰 입구에서 경내에 들어올 때 길목 정면에서 내내 시선을 붙잡은 커다란 바위가 문헌에서 말하는 화암禾岩이다. 수바위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지금은 수바위라 부르는 이 바위는 계란 모양의 반석이다. 수바위穗岩의 이름에서 보듯이 벼 이삭穗을 닮기도 했다. 그 위에 왕관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윗면에는 깊이 1m, 둘레 5m의 웅덩이가 있었다. 이 웅덩이에는 물이 항상 고여 있어 가뭄을 당하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수바위 이름의 ‘수’자를 물 ‘수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바위의 생김새가 빼어나 ‘수秀’로 보는 사람도 많다. 또 수바위는 멀리서 보면 마치 볏가리를 쌓은 모습이라 침입하던 왜군들이 엄청난 볏가리에 놀라서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볏가리 바위 또는 쌀 바위를 한자로 표기하여 화암禾岩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웅덩이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옛날 이 사찰은 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이 공양미와 시주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절에서 수행하던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수바위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부처님 공양 때 마다 그곳에 지팡이를 세 번 흔들라는 것이다. 잠에서 깬 스님들은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난밤 꿈을 생각하며 작은 구멍을 찾아 백발노인이 시킨 대로 했더니 신기하게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스님들은 끼니때마다 손쉽게 쌀을 얻을 수 있으므로 공양미 걱정 없이 수행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객승客僧이 찾아와 머물게 되었다. 객승은 이 절 스님들이 시주를 하지 않고도 수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 없이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객승은 지팡이를 세 번 흔들어서 2인분의 쌀이 나 온다면 여섯 번을 흔들면 4인분의 쌀이 쏟아질 것 아니겠냐며 욕심을 갖게 되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을 흔 들었다. 그런데 쌀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쌀이 나와야 할 구멍에서는 붉은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객승의 욕심은 산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그 후 부터 더 이상 수바위에서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 만나기 쉽지 않은 울산바위 봄의 전경. 책 28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울산바위를 마주하는 길

수바위를 따라 산길을 오르면 솔숲을 지나 산중턱에서 ‘시루떡바위’ 일명 ‘퍼즐바위’도 만나고 울산바위와 미시령고개를 건너다 볼 수 있는 널찍한 반석도 만난다. 산정의 너럭바위엔 욕조를 닮은 여러 개의 웅덩이가 있고 그 웅덩이에 고인 물에서 천상의 선녀가 달밤에 목욕하고 하늘로 올랐다고 하여 선인대仙人臺 또는 선인치仙人峙라고도 부른다.산정 초입에는 촛대를 닮은 형상의 기묘한 바위도 있다. 이곳에서 선인능 산마루를 따라 오르면 북쪽 만물상, 남쪽 미시령 도로와 고성군의 경계인 울산바위로 이어지는 능선을 좌우로 보면서 오를 수 있다. 산정 아래 샘터에서 정상으로 오르면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5월말 경 분홍빛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어 피는데 강한 바람으로 바위틈에서 나는 소리가 마치 하늘이 우는 것처럼 들린다고 한다. 마주하는 울산바위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울산바위는 본래 울산에 살았는데 옥황상제가 전국 명산을 금강산으로 불러 모은다는 소문을 듣고 부지런히 길을 떠났다. 날이 저물어 동행했던 칼바위가 이만 하룻밤 쉬어가자고 해서 지금의 자리-설악산-에 머물렀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금강산에서 일만이천봉이 모두 모였으니 울산으로 돌아가라는 전갈을 받게 된다. 울산바위는 금강산의 일봉이 되지 못한 아쉬움에 지금의 미시령 옛길 곁에라도 그대로 남기로 했다. 그런데 해마다 울산의 관료가 올라와 이 바위를 바라보는 이곳 주민들에게 바위세를 받아갔다. 매년 치르는 바위세가 억울한 이 마을 호림동자는 꾀를 내어 관료에게 ‘울산바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담판을 짐으로써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영악한 울산의 관료에게 어수룩한 강원도 사람들이 당하지만 이들이 누군가. 설화로 가득한 금강산의 정기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마을 영특한 소년 호림동자가 나타나 울산관료를 통쾌하게 물리치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박장대소하게 된다.

구비구비 힐링로드, 미시령 옛길

화암사를 빠져나와 미시령옛길로 들어선다. 먼발치에 새로 개통된 미시령 길이 보인다. 조선시대 때 미시파령으로 불렀던 미시령은 한때 진부령, 한계령과 함께 인제, 외설악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요 요충지였다. 정상에서 북쪽으로는 신선 봉-소파령-진부령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황철봉-마등령-공룡능선으로 이어진다. 미시령터널로 우회하라는 안내표지판을 따라 차량들은 미시령 터널 쪽으로 가고 옛 길은 한가로운 드라이브족과 걷는 사람들을 위한 힐링로드가 되었다. 정상에는 미시령 표지석이 남아 이들을 맞이한다. 이 길을 새벽에 오른다면 멀리 동해바다의 일출도 볼 수 있다.
원래 미시령옛길은 울산바위 앞 원암저수지 상류에서 시작한다. 폭포민박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오르면 산길이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1.7㎞지점에 이르면 작은 폭포가 발길을 가로 막는다. 옛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말을 타고 가던 중 말이 밀어서 폭포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고 전하는 말굽폭포다. 말굽폭포 일대는 설악산 국립공원구역이기 때문에 입산할 때는 별도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난 울산바위는 웅장한 위용은 어디가고 아담하고 순진한 옆 얼굴을 보여준다. 이렇듯 신비한 울산바위를 비롯해 금강산의 신선봉과 화암사는 곳곳마다 유서 깊은 역사와 아름다운 이야기가 서려 있는 이 고장의 소중한 보배라 아니할 수 없다.
‘금강산을 향하는 길 떠나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바로 이곳 울산바위 아 래 미시령길이 출발점이다. 여기 금강산 끝자락에서 시작해 통일전망대까지 긴 여정을 함께 하려 한다.

ⓒ 강원고성신문

필자 이선국 약력

-1957년 고성 출생
-고성고, 방송대 법학과 졸업
-2012년 수필가 등단
-고성군청 공무원 생활 40년
-전 고성문학회 회장(현 고문)
-현재 ‘물소리 시낭송회’ 회장
-저서 <지명유래지>, <고성지방의 예날이야기>,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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