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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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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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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20일(화) 11:26 196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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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마음
11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27일 오후.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집에서 나는 혼자 팔짱을 끼고 베란다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삼십여 분 전 참기 힘든 통증이 왔었는데 모르핀 주사를 팔에 주입하고 난 뒤 통증이 가라앉았다. 강력진통제이자 마약 성분이 든 모르핀 주사액은 엄중 관리를 받는 품목이다. 하지만 약의 유통구조를 잘 아는 그였기에 종로 대형약국에서 잘 알던 약사를 통해 어느 정도 분량의 모르핀을 구할 수가 있었다.
아직까진 눈 주위를 비롯해 얼굴과 손바닥 발바닥, 그리고 전신 살갗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외견상 병색이 두드러지진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머잖아 간 내 암조직이 담도를 압박할 것이다. 십이지장으로 내려가는 경로를 막아 황달이 발생할 확률이 아주 높다. 복수도 차오를 것이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다간 가족들의 눈을 속이기가 더 이상 불가능한 한계상황에 닥칠 것이었다.
나는 골똘하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현 상황에서 주어진 선택권은 세 가지. 첫 번째는 지금이라도 아내와 두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먼저 실직을 얘기하고…… 차후든 연달아서든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 한다……. 가족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겠고 절망할 것이다.
아내에게만 얘기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가족은 두려움과 비탄에 빠질 것이다. 아내는 맨 먼저 병을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받은 병원부터 달려간다. 의사의 설명을 들은 아내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녀는 교회에 뛰어갈 것이다. 남편을 살려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그녀는 기도를 통해 힘을 얻는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실 거라고 확신한다. 그녀는 부랴부랴 나를 입원시킬 것이다. 내가 만류하고 거절한다 해도 통사정을 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내가 머잖아 죽는다는데 그냥 뻔히 쳐다보고만 있을 아내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내는 자신의 간 일부를 잘라서 내게 주는 수술을 위해 조직검사도 받을 것이다. 맞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우선 아내와 난 혈액형부터가 다르다.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면 두 자식들까지 받아보게 할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결사코 반대할 것이다. 이미 신장에도 전이가 됐고 척추에도 전이 흔적이 있어 수술을 해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사 말은 아내에게 들리지 않는다. 아내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기적의 존재시니까.
아내는 이식에 맞는 간을 구하려고 여기저기를 애타게 뛰어다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합법적인 절차로 간을 이식받으려는 대기자가 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알고 좌절한다. 아내는 타인의 간 일부를 불법적으로 매매하는 방법을 어디선가 듣게 될 것이다. 불법 장기매매가 암암리에 성행하는 중국에 건너가서라도 이식수술을 받아보려 할 것이다. 브로커를 통해 중국내 수술전문병원을 수소문할 것이다.
두 손 놓고 그냥 보내기엔 너무 억울한 나이가 아니냐. 원이라도 없게 수술이라도 한번 받아보자며 아내가 발 벗고 나서면 나는 아내 고집은 꺾기 어려울 것이다. 타 장기로의 전이고 뭐고 일단 기능이 죽어가는 간부터 우선 살려놓고 보자. 그래서 시간을 벌자. 그 다음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자연을 섭식하면서 대체의학치료를 하든지 하자. 민간요법을 병행해서 성공한 사례도 있지 않는가.
그렇게 수술을 성공리에 할 수만 있다면 오 년 이상, 관리만 잘하면 십 년도 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그녀는 물론이고 나 또한 움켜쥐려 할 것이다. 나도 살고 싶으니까.
하지만 성공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간 이식수술을 시도하는 그 순간 내 퇴직금 전부가 비용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니, 뒷돈도 필요해진다. 은행에 아파트를 잡힌 돈을 추가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 간 이식수술의 길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끝장이 나기 전까지 중도에 포기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살든 죽든 상관없이 우리 가족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밀어넣고 난 뒤에서야 이 싸움은 끝이 나게 된다.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설사 성공을 한다 해도 나는 경제적 활동이 불가능하다. 여생이 요양생활이 전부일 뿐인 몇 년의 목숨을 더 연장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의 거름이 되는 그 요긴한 돈을 맞바꿀 수는 없다.
두 번째 상황은 아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케이스다.
아내는 여러 사람들의 말을 통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 나이 오십도 안 되어 그런 몹쓸 병에 걸렸다면 그것은 팔자다. 죽을 운명이다. 죽을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고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한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조언일 것이다. 수술을 제외시키면 죽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구걸로 연명하듯 기다리고 버티는 일뿐이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 대세와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는 명분은 설득력이 있다. 남은 기간이 이 개월이든 반년이든 나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적 처방이 아닌 그저 통증을 없애는 진통제 위주인 최소한의 의료적인 조치를 받게 될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는 수술을 받고 안 받고이다. 대부분의 환자들과 가족들이 그 범주 안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두 방법 다 싫다. 마뜩치 않다는 정도가 아니라 결단코 피하고 싶다.
내게는 연로하신 홀어머니가 계시다. 그분에게 하나뿐인 제자식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시게 할 순 없다는 것이 이미 내린 결론이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장례를 치르는 사흘 내내 곡기를 끊으셨다. 아무리 청해도 물 한 모금 삼키지 않으셨다. 나흘째 되던 날, 아버지를 선산에 묻고 돌아온 어머니는 나를 본인 앞에다 앉혀놓았다. 그리고 말없이 혼자 밥상을 받으시곤 묵묵히 수저질을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흐르는 눈물에다가 밥을 말아 드시던 그 처연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내는 말이다. 참말로 니 애비 따라 당장이라도 죽고 싶은 맘 간절하구마. 한쪽 다리에 풍까지 맞아 걸음까지 느리고 더딘 양반인데 그 먼 저승길을 어이 혼자 절뚝거리면서 걸어가시게 하겠누. 지금이라도 내가 나선다문 그 외로운 저승길을 따라잡을 수 있을 틴디. 이런저런 얘기로 저세상까지 길동무해 주고 싶꾸만도. 그기…… 그거시 내 본마음이구마. 하지만서도 하나뿐인 자식인 니가 이 세상에 이렇게 턱하니 앉아있으니 나가 어짜지 못하고 참는다이. 니가 여기에 있으니 니를 보지 못하는 곳으로 나가 도저히 갈 수가 없는 기라. 이런 내 맴을 니가 알기나 알런가.
당신께선 아무 말 없이 죽 한 그릇을 다 비우셨지만 그때 어머니는 내게 온몸으로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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