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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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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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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9일(금) 09:05 204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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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하지만 아들아…… 온갖 호사스런 값비싼 물질로 도배된 시간과 미래가 네가 공부하는 이유가 되고 꿈이 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은 지극히 극소수일 뿐더러 그렇게 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재벌들을 난 본 적이 없다. 안락함과 쾌적감과 부유함이 만족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일단 향유하게 되면 그 자체가 금방 사물화되고 즉물화되며 일상화 돼버린다. 물질은 물질일 뿐이다. 황금은 비싸긴 하지만 그 자체는 가진 자와 본질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다. 천년만년 그저 황금일 뿐이다. 똑똑한 너는 이런 아빠 얘기에 대해 가질 수 없는 가난하고 무능한 자의 합리화고 궤변이라 치부하겠지만. 나는 한 사람이 자신에 대해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꾸리는 데 있어서 반드시 그렇게 많은 물질이 필요치 않다는 얘기만은 너에게 분명히 얘기해주고 싶구나.
나는 네가 이 아빠와는 달리 앞으로 세상에 나와 보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돈과 자본주의 구조를 파악한다면 앞으로 네가 벌게 될 돈으로도 충분히 부족하지 않을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여긴다. 그럼 네가 이해하기 쉽도록 구체적인 예를 한 가지 들어볼까? 네가 공부를 마치고 이 사회에 나와 네가 공부한 만큼의 직장과 일을 잡았다고 치자. 그래, 네가 아빠보다는 훨씬 똑똑하지만 네가 자주 나를 네 삶의 표본으로 드니…… 좋다. 거두절미하고 그럼 네가 아빠 정도의 직장을 잡고 월급을 받으며 총각시절을 보낸다고 해보자. 술과 담배를 떠나…… 얘기를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얘기하자면! 남자는 여자한테 잘 보일 생각만 버린다면 많은 돈이 그냥 굳는다. 그냥 검소하게…… 필요 없는 건 안 사고 살아도 별 불편함을 못 느낀다. 하지만 여자한테 잘 보여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부터 허세를 부려야 하고 그다지 돈 쓰고 싶지 않은 곳으로 돈이 새나가기 시작한다. 적어도 여자에게 허세를 부리고 싶은 생각만 버린다면 네가 버는 미래의 그 소득은 결코 작은 게 아니다. 너의 생활에서 유동성이 넘쳐난다.
하지만 연애를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너는 소비생활에 아주 충실하게 된다. 네가 현명하다면 소위 ‘연애’ 라는 것도 자본주의시스템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여기저기 돈을 쓰도록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주입된 커리큘럼 같은 게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텔레비전이나 광고, 영화 같은 데에서 끊임없이 애인을 둔 남자에게 주입시키는 이미지를 한번 떠올리길 바란다. 과소비의 연속이다. 뭐 사주고, 어디 어디 가고…… 가고…… 차로 에스코트 해주고(사실 차도 여자만 아니라면 딱히 쓸 일이 없다)…… 이런 세뇌질을 통해…… 조작질을 하는 누군가는 일반인인 우리가 자본을 축적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자본을 축적하여 보다 여유 있는 마음가짐과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음에도.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상위계급으로 올라갈 기회를 선제적으로 박탈시킨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소비를 유도하여 소득을 끊임없이 소진시킴으로써 사람들은 끊임없이 돈에 목말라하게 된다. 결국 삶 내내 돈의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힘 있는 자들의 바닥일만 대신 해주는 사람으로 삶이 전락하게 되기를 그 누군가 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냉철하게 해보아야 한다. 여성들은 이런 이미지 조작으로 인해 수혜를 보니까 전혀 의식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냥 남자가 돈을 펑펑 쓰는 과소비적 현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당사자인 남자라면 이런 의식을 한 번쯤 깊이 점검해 보고 파악해 둬야만 한다. 이런 의식도 안 해보고 그냥 여자들이랑 똑같이 허허, 거리고 있다 보면 돈 떨어지자마자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 되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의 삶이 돼버리고 만다.
핫하하하…… 수범아, 그렇다고 연애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여자와 만나 데이트하면서도 돈 한 푼 쓰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다. 단지 네 분에 넘치는 씀씀이를 경계하고 허영심에 가득 찬 여자는 만나지 말라는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 삶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네게 일러주기 위함이다.
휴우……. 어쩌다가…… 어쩌다가…… 고등학생인 너에게 쓰는 편지가 이런 내용으로 흘러오고 말았는지 나로서도 무척이나 난감하구나. 아마도 이 글이 네게 주는 마지막 편지이고 충고일 것 같아서 네 삶에 우선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삶의 마음가짐을 챙기다보니 이렇게 돼버린 모양이다만…… 수범아, 내 아들아! 이제야 하는 얘기다만 나는 네가 내 아들인 게 늘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웠단다.
중학교 때까지 너는 공부를 기발하게 잘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그 어렵다는 D외고에 들어갔을 때 엄마아빠는 물론이고 주변에서 모두 경사 났다고 부러워했었지. 하지만…… 아무리 공부해도 애들을 따라붙을 수가 없다며, 내신 오 등급 이상의 성적이 나오질 않는다며 절망하는 널 보면서 엄마와 아빠 또한 내심 커다란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집안배경이 든든한 수재들만 모아놓은 외고에서 네가 한 단계라도 치고 올라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면…… 내신 삼십 퍼센트를 기본으로 반영하는 일류대학을 경쟁으로 진학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일반고등학교로 전학을 시켜야 하나…….
설사 일 등급 내신을 받는다 해도 일반 고등학교에서 SKY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아예 없거나 손을 꼽을 정도인 게 현실이고 보면…… 타 학교 학부모들은 배부른 고민이라고들 하더라만 엄마나 나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게 그간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수범아, 아빠는 널 믿을 수밖에 없구나. 그저 아빠는 너의 노력이 설사 좌절될지라도 세상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노력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만을 두 손 모아 비는 수밖에는 없구나……. 무책임한 말이라고 네가 가시눈을 다시 뜬다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
그래…… 어쨌든 지금껏 살아오며 사내아이인 너와 농구장도 야구장도 한 번 같이 가보지 못한 게 정말 아쉽구나. 총각이었을 때 난…… 내가 만약 나중에 사내아이를 둔 아빠가 된다면 주말마다 꼭 같이 운동장에 나가 농구를 하거나 야구를 같이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그게 아들 키우면서 반드시 해보고 싶은 꿈이었는데 그렇게 해보질 못했다. 공부에 지친 축 늘어진 네 어깨를 두드려준 기억도 별로 없고……. 그래, 내가 정말 못난 아빠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구나.
네가 대학입시를 치루고 성인이 되는 날 아빠는 너를 돼지껍질집으로 데리고 갈 작정이었다. 너와 단 둘이 소주를 한 잔 하려던 소박한 꿈만은 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네가 한 남자가 됐음을 축하하면서 술은 어떻게 마셔야 하는 건지 가르쳐주고 싶었다. 다른 건 다 못했어도 그것만은 꼭 해보고 싶었던 바람이었는데…… 그것마저 너와의 시간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 가혹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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