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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어촌마을

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9] 실향민어촌 아야진
김삿갓이 아야진을 배경으로 읊은 한시 2015년 발굴

2017년 11월 22일(수) 12:41 207호 [강원고성신문]

 

↑↑ 청간마을을 지나 작살개를 돌아서면 아야진 포구로 들어선다. 아야진은 일명 ‘애기미’라고도 부른다. 책 62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청간마을을 지나 작살개를 돌아서면 아야진 포구로 들어선다. 아야진은 일명 ‘애기미’라고도 부른다. 얄궂은 운명의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절절이 녹아있는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 야트막한 고개를 경계로 북쪽마을은 큰말 또는 큰애기미, 남쪽은 작은말 또는 작은애기미라고 부른다. 큰말과 작은말 경계의 바닷가에 커다란 암반이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작은말과 큰말을 오가는 작은 길을 넓히려고 길을 막고 선 바위를 깼더니 바위에서 붉은 피가 나왔다는 용선바위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바위가 마치 큰 배를 닮았다고 하여 ‘용선바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바위 기슭엔 서낭당이 있고 최근에는 그 앞에 작은 공원이 생겨 주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북쪽 큰말 방파제가 시작되는 부분은 거북바위가 있던 곳이다. 방파제 규모가 크지 않았던 시절에 마을사람들에겐 영험한 바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높아진 콘크리트 방파제에 묻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전후 외지인들이 모여든 아야진

아야진은 유난히 가슴 아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어촌마을이다. 수복직후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고향 잃은 많은 실향민과 전재민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아야진 포구로 모여들었다.
사람마다 사연 하나쯤 가슴에 묻고 사는 실향민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 위로하고 보듬으며 이웃으로 살았다. 가난을 쉽게 벗지 못하는 마을을 사람들은 마을 지형이 바다를 향해 삼태기로 퍼내는 형상으로 돈이 모이지 않고 없어지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도회지로 떠난 사람, 형편이 펴지지 않았지만 호구지책을 위해 할 수 없이 마을을 등지고 떠나는 사람도 점차 늘어났고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작은 어촌 마을은 인구는 크게 줄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포구에서 그물손질을 하면서 천생어부의 멍에를 벗지 못하고 업보처럼 대를 이어 그 자리를 지키는 순박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가난 한 어부는 바다가 유일한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아야진도 한때 흥하던 시절이 있었다. 난리통에 정상 조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전후 바다에는 비교적 어족이 풍성한 상황이었다. 특히 아야진은 연근해 조업에 치중했기 때문에 곧 어획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1955년 아야진어업조합이 결성됐다. 어업조합은 어획된 생선의 위탁판매뿐만 아니라, 어구를 조달하는 등 어업에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담당했다.

↑↑ 김삿갓이 아야진을 배경으로 읊은 한시. 김삿갓(김립. 본명 김병연. 1807~1863)이 25세 때(1831년)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근철 선생 집에 머물며 써준 한시 6수가 장정룡 교수(강릉원주대 국어국문과)에 의해 지난 2015년 발굴되었다. 책 64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어촌 삶의 흔적, 선술집과 방석집

순조로운 조업으로 자그마한 어촌마을은 비교적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포구주변엔 작은 선술집이 둥지를 틀었고, 요즘 방석집이라고 일컫는 술집도 생길 만큼 제법 풍족한 어촌 규모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어촌사람들의 생활은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풍성한 어획량에도 불구하고 보관과 유통망이 취약했던 시절이고 어가 또한 낮았기 때문이다. 또 작은 동력선과 어선의 조업은 거친 파도를 감당하기엔 다소 위험했고 따라서 어획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희미한 백열등 불빛 아래 다소곳한 한복의 여인들의 장구 장단과 창 소리에 가슴 아픈 사연의 그림자는 술에 취해 어촌의 경제처럼 어스름하게 저물어 갔다. 어부의 생활은 비좁은 셋방을 벗어나지 못했고 아야진 마을은 실향의 아픔이 속 깊은 상처로 남아 아물지 못했다.
금강산을 오가던 방랑시인 김삿갓은 생전 456수에 이르는 한시를 남겼는데 아야진 포구에서도 시를 읊었다. 이 시는 간성의 대부였던 이근철의 아야진 고택에서 발견되었는데, 나루터와 금강산으로 향하는 승려, 가난에 대한 풍자를 쓴 것으로 보아 아야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아야진에는 조선 헌종6년(1840년) 대기근으로 굶주림을 겪는 간성 주민들을 구휼해 살렸다는 이근철의 공적을 기리는 ‘영세불망비’가 세워져있다.

↑↑ 포구를 호위하듯 양쪽에 서있는 아야진 등대. 책 63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미역 백사장이던 봉이재

김삿갓의 향기가 배어있는 아야진 포구를 돌아 북쪽으로 올라서면 넓직한 백사장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봉이재라 부른다. 예전엔 마을 안쪽의 고개를 넘어 다녔지만 지금은 해안가로 돌아 지나다닌다.
넓은 백사장과 물속에 잠긴 암반이 어우러진 봉이재는 조용한 해변으로 널리 알려져 많은 피서객이 여름마다 이곳을 찾아와 더위를 식힌다. 어린시절 4월이면 봉이재 백사장엔 싱싱한 미역이 눈이 모자랄만큼 가마니에 널렸었다. 하얀 모래밭이 까만 미역으로 천지가 뒤덮이곤 했던 봉이재 해변의 풍경이 지금도 긴 여운으로 남는다.


필자 이선국 약력

-1957년 고성 출생
-고성고, 방송대 법학과 졸업
-2012년 수필가 등단
-고성군청 공무원 생활 40년
-전 고성문학회 회장(현 고문)
-현재 ‘물소리 시낭송회’ 회장
-저서 <지명유래지>, <고성지방의 옛날이야기>,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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