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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43>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8년 01월 10일(수) 14:3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도대체 어딜 그렇게 헤맸고 다녔을까. 세찬 겨울바람을 맞아 피부 곳곳이 갈라지고 심하게 튼 얼굴은 군데군데 딱지가 앉았다. 머리카락은 수세미처럼 헝클어지고 입가에는 희끗한 버짐 자국이 나 있었다. 손톱 밑에 때까지 까매서 그녀 자신이 민망할 정도였다. 이, 이럴 수가! 눈앞에 보고 있어도 믿어지지 않는 망연자실함을 못 이겨 그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간암 말기를 지나도 한참이나 지나 이 사람은 오늘 죽어도 놀랍지 않을 만큼 병이 진행된 상태라고 했다.
미, 민호야……. 어쩌다가…… 어쩌다가 겨우 한 달 조금 넘은 상간에 이렇게…… 이렇게까지…… 사람이 못쓰게 변해버렸다니.
그녀는 한숨이 절로 나왔고 눈가가 빠르게 물기로 젖었다. 나무토막처럼 숨 쉬고 있는 그의 얼굴빛은 푸르딩딩하면서도 검고 노랬다. 무명천으로 얼굴을 쥐어짠 것처럼 살이 완전히 빠진 얼굴은 해골 같았다. 피부는 파삭하게 마른 귤껍질 같고 팔다리가 수수깡처럼 깡말랐다. 하지만 배는 만삭의 여인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 배에서 가는 플라스틱 관이 휘어돌아나와 커다란 유리병 속에다가 누리끼리한 물을 반 정도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억장이 내려앉듯이 가슴이 탁 막혔다. 뺨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그녀는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다시 보고 또 봐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라니! 가족들은 다 어디에 두고 너 혼자 이 낯설고 물선 곳에서 이 지경이 되도록 떠돌아다닌 거니. 나는…… 널 삼십 몇 년 만에 처음 본 뒤 지금까지도 맘이 설레었는데……. 이 바보야! 그렇다면 넌 그때 이미 몸속에 병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그렇게나 스스럼없이 웃었고 정겹게도 얘기를 나에게 나누어준 거였구나. 그런데 어떡해, 이 일을 도대체 어떡하니! 이 바보야……. 차라리 그때라도 얘기했다면 내가 널 낫게 할 순 없겠지만 너한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따스하게 지어줬을 텐데. 그저 모든 게 후회되고 안타까웠다. 삶 속에 이런 참혹한 그림이 복병처럼 끼워져 있을지는 그녀 또한 전혀 예감하지 못했었다.
그녀가 두 손으로 그의 한 손을 살며시 그러쥐었다. 그녀 뺨에서 쉼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릎에 놓인 손수건을 마악 집어드는 순간 그가 흐릿하게 눈을 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눈앞의 형체가 또렷이 잘 안 보이는지 잠시 그녀를 잘 못 알아보는 듯 했다.
-미, 민호야!
-……!
-민호야! 정신이 드니? 나, 경희야. 이경희! 나, 알아보겠어?
-어, 어……떻게 네가……?
그의 눈빛은 당혹감에 푸르르 떨었다. 잠시 믿겨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다시 눈을 크게 끔벅거리며 그녀를 분명히 확인하고 나서는 다시 말을 천천히 이었다.
-경희구나……. 네가, 근데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지금 내가 여기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대체…… 어떻게 된 거니? 아내도 있고 자식도 둘이나 있는 네가 왜……? 왜 이런 꼴을 하고서 여기 혼자 이렇게 누워있는 거야?
-……!
-엉? 얘기 좀 해봐.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네 가족들이 너 여기 있는 거 모르지? 그렇다면 내가 지금이라도 연락해 줄게. 집 전화번호 말해봐. 아님, 부인 휴대전화 번호를…….
-아냐. 괜찮다.
-뭐라고? 연락하지 말라고?
-그래…….
-아니, 왜? 네 병이 이렇게나 위중한데……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달라질 건 하나도 없으니까. 아 참, 내 가방은……?
-네 가방? 네가 들고다니던? 그거야 전날 네가 묵었다는 숙소에 있지. 건봉사 쪽 민박집 말이야.
-그럼, 거기로 다시 가야겠어.
그는 그녀가 만류하는데도 상체를 일으켰다. 고집스레 일어나 앉았다. 링거액이 삼분지 일쯤 남았는데도 그가 바늘을 뽑아내려 하자 그녀는 그의 손을 드세게 낚아챘다.
-그러지 마. 가방이 중요하다면 내가 얼른 가서 가져올게.
-아니. 난…… 병원이 무조건 싫어. 그리고…… 그 민박집에 이미 삼 일치를 선불했으니까…… 난…… 그 방으로 갈 거야. 누워있더라도 그 방에서 누워있을 거고…… 잠을 자도 그 방에서 잘 거야.
-웬 고집이니! 왜? 돈이 아까워서?
-아니…… 그 방이 편해. 그 방에서…… 볼 수 있는 솔숲이 너무나 푸르고 아름답거든……. 그리고, 훗후후후. 그 방은 장작으로 지핀 방이라 얼마나 뜨뜻한지 몰라. 이런 병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지금 웃음이 나오니? 웃으니 보기 좋긴 하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 병원에서 모르핀 처방을 해서 지금 넌 조금 괜찮아진 거야. 거기로 갔다간 넌 또 밤중에 지독한 통증으로 의식을 잃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제발 고집 피우지 말고 일단 며칠만이라도 이 병실에 입원해 있자. 나 때문이라면 너 불편하게 하지 않을게. 내가 아무 것도 너한테 묻지 않을게. 내가 그렇게 해줄 테니까…….
-아냐. 네 맘…… 모르는 바 아니다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줘라. 경희야…… 부탁한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강한 의지가 실렸고 간절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부딪치게 되는 소란스러움과 번거로움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하는 걸까.
그가 호소하듯 부탁해 오자 그녀는 온몸에서 힘이 쫘악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막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어보이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면 좋아. 네 원이라면 그렇게 하자. 그러면 일단 내가 계산을 마치고 올 때까지 너는 잠시라도 여기 누워서 기다려. 그리고 그 링거만은 다 맞고 가는 거야.
그녀는 문 앞에서 그를 향해 휙 돌아섰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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