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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어 눈빛 닮은 당신

-실향민의 한을 잊지 않는 일
금강칼럼 / 김춘만 칼럼위원(시인)

2018년 03월 06일(화) 11:1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드디어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남북공동입장과 여자 하키 단일팀이 구성되었다. 북한 응원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응원을 하였고 북한 예술단은 강릉과 서울에서 감동적인 무대로 관중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우리나라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강릉과 평창을 오가며 응원을 함께 하는 장면이야말로 고조된 평화분위기 그 자체였다.
그러나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과 그 후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들뜬 기대감을 스스로 억제하고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하던 이런 상황에서 웬만하면 기대감을 가져볼 만도 할 텐데 그동안 얼마나 실망을 자주하였으면 저럴까 지켜보는 사람이 마음 아프다. 허긴 지켜보는 사람들조차도 이후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갖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평화 분위기에 실향민들 기대감 억제

그랬다. 긴 세월동안 가족상봉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산가족이 겪는 실망감과 고통은 쌓여만 갔다. 이런 뼈저린 한에 대해 ‘누가 책임 질 것이오?’하면 손들고 나올 사람 한 명도 없는 현실에서 세상은 무슨 일 있었느냐 식으로 멀쩡히 잘도 돌아가고 있다.
그 분들의 삶과 역사를 기억해주거나 추모해 드리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분단 이후 가족을 헤어지게 한 일도 만남을 이루게 하지 못하게 한 일도 모두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바로 무능한 나의 잘못이며 우리 모두의 탓이란 것을 모두가 뼈저리게 반성해야만 한다.
실향민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쓴 몇 편의 나의 시 중 실향민들의 공동묘지에서 쓴 시가 ‘장지에서’였다.
겨울이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어두운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운구 하는 사람들, 뒤따르는 조문객들 모두 말이 없었다. 함께 월남하여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이제 홀로된 미망인과 이 땅에서 외롭게 살아가야 할 한 점 흔적인 어린 딸을 남겨두고 그는 떠났다.

‘그 언제련가 / 한 번 닫힌 땅문은 까닭 없이 / 열리지 않는 빗장 지른 세월 / 어쩌다 생면부지 이곳에 밀려와 / 퍼렇게 얼어버린 손등 위에 // 속절없이 / 펑펑 눈물 같은 눈은 내리는데 // 왜 이리 안개만 가득한가 / 흐려진 시력을 문지르며 / 산허리 올라서면 / 살아남은 사람들은 군데군데 / 저마다 말 꽃을 피우며 / 모닥불을 올리는데 / 그 위를 하얗게 / 재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장지에서」 일부>

산등성이로 천천히 오르는 장례행렬에 젊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한창때 월남하여 한 많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얼굴에 깊은 주름살을 담은 나이 지긋한 피난민 1세대들 뿐, 힘깨나 쓸 젊은 사람들이 없는 장례행렬이었다. 삼 십 년도 지난 옛 얘기인데 실향민들은 대부분 이렇게 외롭게 세상을 떠나셨다. 이 분들이 짊어지고 사신 고통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면 이 분들의 삶이나 사후에 대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 가져 주어야 했었다고 생각된다.
실향민들에게 명절은 즐거운 날이 아니었다. 찾아갈 고향이 있고, 그 고향에서 보고 싶은 사람 만날 수 있어야 명절이지 갈 곳도 올 사람도 없는 실향민들에게 명절이란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박 할아버지는 명절날이면 외로웠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몇 배나 더 무겁게 다가와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도 취했고, 명절에는 더욱 취했다.
그렇게 몇 해를 버티시더니 박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셨다. 그토록 가고 싶던 고향을 갔을 것이다. 설 쇠러 가듯, 정월 초하루에.

‘기사년 정월 초하루 / 박 할아버지 / 귀향했다 // 서지도 눕지도 못하던 고통 / 조용히 사그라뜨리고 / 면사무소에서 양식 대준 / 거택 보호자는 가난과도 떠났다 // 혀가 굳어 말도 못했는데 / 떠나기 직전에 말문도 트여 / 죽도록 고생시킨 할멈 걱정도 하고 / 한 점 혈육 떨어뜨리지 못 한 건 / 아쉬움도 없이 / 그 노구가 /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귀향했다 // 이슬 내리듯 소리 없이 / 한 장 종잇장 날리듯 가볍게 / 그렇게 박 할아버지 / 설 쇠러 갔다’ <「설 쇠기」 전문>

이제는 실향민들의 한 풀어드려야

할아버지 떠나고 혼자 남은 할머니, 그 할머니만이라도 귀향 할 수 있기를 그렇게 기도했는데, 그 할머니도 살아 계실 때는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하셨다.
눈가가 항상 젖어 사셨는데 할아버지가 고향에 못 가보고 돌아가신 게 그렇게 억울했던가 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고향이나 한번 밟아보자는 데‘적십자회담’이니 ‘방북신청’이니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리게 하다가 참으로 많은 분들 세상을 뜨셨다. 한 발짝 나가는가 싶으면 다시 두어 발짝 물러나고, 잠잠하다가 다시 거론되곤 하던 이 이야기 끝은 참 멀기도 하다.

‘산, 바다, 호수가 있고 싱싱한 횟감이 많다고 모두가 이곳을 살기 좋다 하여도 끝내 이곳에 정 붙이지 못하고 고향만 그립디다 / 한도 서리다 주저앉아 웬만하면 잊을 날도 있겠는데 모두가 떠나신 이 땅을 거저는 못 떠나시겠다고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웁디다 / 두고 온 고향 사람들 눈에 밟힌다고 평생을 보이지 않던 울음 이제서 터뜨리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 할머니 달래줄 세상은 오지 않고 바라보는 이 땅의 사람들만 애가 탑니다 / 바다 없어도 산이 없어도 좋습니다 / 할머니 살고 싶은 곳에서 하루만 사시면 좋겠습니다 / 진탕 같던 날들 가볍게 말려서 훌훌 떨고 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둘러보면 보고 싶은 사람 보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 가지 못하는 세상을 우리가 삽니다’ <「살기 좋은 세상」 전문>

실향민 1세대 분들은 이제 찾아뵙기조차 힘들다. 그 분들 자식들조차 노년기에 접어들 나이다. 실향민들의 눈을 바라보면 깨끗한 산천어가 떠올랐다. 1급수에서만 산다는 산천어는 두 눈에는 붉은 기운이 있는데 그것조차 흡사하였다. 넓은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좁은 계곡에서만 일생을 살아가는 산천어처럼 오로지 한 곳을 그리워하며 살았기에 저런 눈빛이 되었으리라.

‘검구나/ 작지만 / 소멸하지 않는 / 확실한 점 하나 / 그윽하고 깊구나 // 붉구나 / 그 점 언저리 노을처럼 붉구나 / 갈 수 없는 곳을 그리워하면 / 가슴이 활활 타오르고 / 그 불기운이 눈 속으로 몰려간다 // 젖었구나 / 늘 젖어 사는구나 /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말간 물속에 드러나는 걸 / 당신 눈빛은 젖어있구나/ / 그리하여 당신은 / 산천어 눈빛을 닮았구나’ <「산천어 눈빛 닮은 당신」 전문>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트였으니 이산가족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지 아니면 예전처럼 긴 터널 속으로 숨어버릴 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그 어떤 문제보다도 시급하게 다뤄야 할 실향민들의 한을 풀어드릴 일에 모든 분야에서 총력을 기울여주길 간절히 기대할 뿐이다.
그리고 실향민들의 후손이 많이 살고 계시는 우리 지역에서부터 이분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예우를 해 드려야하며, 이분들의 애환이 잊히지 않는 역사의 기록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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