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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아버지, 그 남자 <46>

한류작가 김하인 장편소설 / 삽화 정재남

2018년 03월 21일(수) 16:12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학창시절 그를 만나려고 했으면 만나볼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손을 내밀었다면 그는 손을 잡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맨손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즐겁게 춤을 추었듯이. 그런데 왜 나는 늘 혼자서만 생각하고 정작 한 번도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던 걸까.
처녀시절은 물론이고 결혼해서도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 탓일 거다. 하지만 그 아이에 대한 뒤늦은 후회감은 늘 미련처럼 그녀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난 11월 중순의 어느 날 그가 고향에 내려왔다는 동창회장 전화 연락을 받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약국 셔터를 일찍 내리고 주저 없이 차를 몰고 고향에 내려갔었다.
그런데…… 그 사람과의 재회가 이런 낯설고도 외진 설국의 풍경으로 연결되리라고는……!
-흐으읍…… 헉, 헉, 헉!
갑자기 그가 방바닥에 모로 쓰러지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녀가 황급히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쳤다. 그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렀고 핏줄이 잔뜩 불거진 목 쪽으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그는 두 손으로 부푼 배를 잔뜩 짓누르며 모로 누운 채 두 다리와 발을 방바닥에 비비적거렸다. 그의 상체와 가는 다리가 부푼 배를 삼킬 듯이 새우처럼 잔뜩 안으로만 깊숙이 휘고 있었다.
-이, 이를 어째? 또다시 마, 많이, 많이 아프구나!
-…… 그래. 흐으음, 흐음……
-어쩌면 좋니. 그런데, 그런데도 넌 왜 내 말 안 듣고 이렇게도 고집을 부리니? 병원에 누워 있으면 지금 모르핀이라도 맞잖아. 사람이 죽을 때 죽더라도…… 어, 어떻게 이런 끔찍한 고통을 혼자 견뎌내려고……. 안되겠다. 일단 다시 병원으로 가자. 119를 불러야겠어.
-아흡……! 윽, 윽, 윽…… 안 돼! 아, 안 돼!
그가 휴대전화를 누르는 그녀 손을 제지하기 위해 한 손을 세차게 허공에 내저었다.
-왜? 대체 왜 그러는데? 왜 이래야만 하는데?
-후으읍, 흐읍, 후우…… 읍…….나, 난 호…… 혼자서 주, 죽을 거야. 아, 아, 아무도 몰라야 돼. 으흡, 흡, 흡!
누군가 서슬 퍼런 칼날로 복부 속에 든 그의 내장을 토막치고 있었다. 그는 단말마 신음과 호흡을 연신 내뱉으며 발버둥질 치고 있었다. 그의 온몸이 금방 식은땀에 완전히 젖었다. 그의 눈에서, 입가에서 점액질 같은 끈적거림이 동시에 쏟아져내렸다. 아흐, 아흐, 흣흐흐……. 그의 단말마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입가에서 줄줄줄 흘러내렸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그녀는 너무나 안타깝고 괴로웠다. 슬프고, 무섭고, 그 광경이 끔찍해서 그녀는 그의 머리를 가슴에 싸안았다. 흐득흐득 울기 시작했다.
-이 바보야……. 대체 왜? 왜…… 이래야만 하느냐고? 네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럴 수는 없어…… 도저히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야!
그녀는 극도의 고통에 한껏 찌든 그의 얼굴을 가슴에 싸안았다. 제발 이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이 한시라도 빨리 멎어주기를!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의 얼굴을 가슴에 싸안고 소리 죽여 우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가물치처럼 펄쩍거렸다. 그녀 가슴과 배에 그가 흘린 핏물 같은 타액이 여기저기 묻어났다. 어찌하나…… 어찌하나……. 하나님…… 부처님…… 제발 좀 이 사람 좀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덜 아프게 해주세요. 제 마음이 찢겨지는 것처럼 아파서 저도 이 사람과 같이 죽고 싶을 지경이에요.
제발…… 한시라도 빨리 통증이 지나가게만 해주세요. 제발……! 그가 그렇게 완강하게 반대하니 연락을 취할 수도 없다. 시퍼런 칼날로 내장을 마구 휘젓는 듯한 그의 끔찍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어도 도무지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이 상황에선 그 어떤 약도 듣지 않는다. 오직 강력한 진통효과가 있는 다량의 모르핀 주사밖에는.
가엾어서, 가엾어서 어떻게 하나. 속절없이 안타까웠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있는 힘껏 가슴에 부둥켜안고 울음을 삼켰다. 목을 젖혀 하늘에 계신 신을 우러렀다. 제발…… 불쌍히 여기소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게만 해준다면 내가 오래도록 당신을 찬미하리다. 긍휼히 여기시고…… 가엾게 여겨주소서……. 그는 그녀의 가슴 속에서 붉은 피를 토한 뒤부터 그 격렬함이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모든 통증은 무한한 게 아니라 한계가 있다. 정점에 이른 뒤부터는 조금씩 감해진다. 병과 통증이란 사특한 것들은 최후가 다다를 때까진 사람 몸을 다시 살 수 있을 만큼 되놓아주는 간악성을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일까. 고통에 부들부들 떨며 온몸을 진저리 치던 그의 세찬 움직임이…… 삭정이처럼 뚝뚝 부러지는 것처럼 끊어지더니 이윽고 완전히 딱 멎었다.
한바탕 세찬 고통의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 비로소 맞게 된 멎음과 고요였다. 그의 까뒤집혔던 눈동자가 제자리에 와 있었다. 숨결도 정상적인 평온으로 찾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몸을 요 위에 편하게 눕혔다. 그의 입에서부터 토한 피 묻은 상의부터 그녀는 재빨리 갈아입었다. 기진맥진한 그는 땀과 피에 젖은 얼굴로 널브러져 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안채 주인집으로부터 뜨거운 물을 세숫대야에 받아왔다. 그녀는 수건을 적셔 그의 얼굴을 찬찬히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다시 한 번 더 뜨거운 물을 갈아왔다. 적당히 뜨거운 온도의 물에 수건을 빨고 짜서 온기로 데운 수건으로 그의 목과 팔, 그리고 그의 두 손을 정성스럽고도 찬찬히 닦아나갔다. 그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어때? 조금…… 괜찮아진 거야?
-…… 그래.
-이 일을 어떡하니. 그런 무지막지한 고통이 또 오고야말 텐데…….
그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 두 눈엔 진한 슬픔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경희야…….
-응?
사지를 다녀온 듯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고도 차분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줘. 내 마지막 부탁이니까.
-……!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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