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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이야기하고 노래하기

금강칼럼 / 김향숙 칼럼위원(시인)

2018년 05월 16일(수) 16:51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분홍빛 산벚 지고 난 오월의 산과 들에는 밝은 초록을 배경으로 하얀 꽃이 유난히 많이 피어난다. 층층나무, 팥배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쪽동백, 아카시아, 이팝나무, 찔레꽃, 설유화…. 신부의 드레스처럼 화사한 순백 꽃의 나무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냥 ‘푸른 산’이라는 무심한 이름의 여름 숲에 섞이고 나면 저마다의 아름다웠던 모습들도 점점 잊혀져간다. 그리고 가을, 겨울. 누가 그 꽃나무들을 기억할 것인가.


꽃 그림자

꽃이 진다
낮은 나뭇가지 끝
숨 다하여 놓아 준 꽃받침에서
꽃잎 하나 비틀짚으며 내려온다

꽃 그림자
꽃 따라 피어나
바람 함께 흔들리더니
꽃 지는 날
나폴나폴 따라 받아
한 몸으로 누웠다

흙이 되지 못한
꽃 그림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 시집 『따뜻한 간격』에서

아끼던 것들도, 떠난 사람도 잊어지는데 그까짓 꽃도 아닌 꽃 그림자를 누가 생각이나 하고 살까. 아니,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사람 이야기도 돈 이야기도 아닌 먼 산, 나무 꽃 따위 피고 지는 일에 무슨 관심이나 의미를 둔다는 말인가.

글은 말보다 정중하다

프랑스 문화의 예술적 성장 기반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200여 편의 시를 학교에서 암송하게 하는 국가교육정책에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암송해 온 수많은 시들은 고품격 언어구사와 사고의 확장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뿐 아니라 자연과 세상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국가적 큰 자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말은 생각보다 정중하고 글은 말보다 정중하다. 귀한 보석처럼 채집하고 연마된 단어를 문장으로 줄 세운 시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시인들은 인고의 산을 넘으며 깊고 외로운 밤을 새운다. 그렇게 완성시킨 시를 독자들은 단 몇 초면 읽을 수 있지만 그 정서의 공감이 가져오는 파급효과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그 긍정적 단어들은 수시로 달려드는 칼바람 같은 세상살이에서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아를 빛나게 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고난이나 역경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용어가 있다. 감정통제력, 충동통제력, 낙관성, 원인분석력, 공감능력, 자기효능감, 적극적 도전성의 7가지 요인으로 이루어지며 회복탄력성지수(RQ)가 큰 사람일수록 유연한 치유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아이가 길을 가다가 작은 장애물에 걸려 같이 넘어졌다. 일어나 발을 구르고 소리 지르며 크게 신경질을 내는 아이, 툭툭 털고 일어나 이 상황이 오히려 재미있기라도 한 것처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괜찮아?’ 하며 친구까지 챙기는 아이.
한 세상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여러 상황의 갈등과 어려움들을 겪게 되지만 오랜 세월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 때를 좀 더 지혜롭게 잘 넘겼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남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여러 문제를 만날 때마다 극도의 스트레스 반복으로 인해 폐인이 되는 지경까지 이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고난으로 인해 더욱 빛나는 인생을 살게 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사물과 자연, 심지어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까지도 물질적 화폐가치로 환산하려고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소통의 난감함을 경험한다. 더구나 ‘꽃 그림자’ 이야기는 그런 경제원리를 우선하는 사람 앞에서 여지없이 쓰레기취급을 받게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살아도 아무런 관계도 문제도 없는 누군가가, 혹은 무엇이 우리의 감성을 따뜻하게 만져 줄 때 눈시울 뜨거워지는 뜻밖의 위로를 느끼게 될 때가 있다.

꽃과 함께 한 세상 살다 간 그림자

첫 머리에 옮겨 놓은 졸시 「꽃 그림자」. 아무도 생각하거나 기억하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꽃과 함께 한 세상 살다 간 그림자 하나. 그것이 특별히 중요하다거나 큰 가치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생애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시 한 편을 읽는 동안 급한 달음질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자는 것이다.
시와 이야기와 노래는 하나의 고운 꽃다발이다. 시로 인한 웃음과 이야기와 노래로 우리네 굽이굽이 험한 산길을 쉬이 넘어갈 수 있다면 회복탄력성지수 이야기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한 세상 살아 볼만한 힘 넉넉하지 않겠는가.
비소식이 있다. 하얀 꽃 흐드러진 숲으로 큰 바람 없이 조용히 잘 다녀가시기를.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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