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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⑤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8년 08월 07일(화) 11:29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복수초가 피었다 이우는 사이 봄눈이 폭설로 내렸으며 봄눈이 쌓이는 동안 박새와 딱따구리, 멧새 떼들은 눈 쌓인 들판을 헤덤벼치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일손이 재바른 농부가 논바닥을 갈아엎을 즈음 숲 바닥에서는 노루귀들이, 산기슭에서는 생강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겨울 한파가 유난스레 길었던 터라 눈앞에 꽃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서 봉오리를 따서 향을 맡으면서도 실감하지 못했다. 알근하면서도 싸한 향이 코끝에 감돌았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나무 그늘 앞에 섰다. 한파에 얼어붙은 겨울눈은 까맣게 빛이 죽었고, 추위를 견뎌낸 봉오리는 붉은빛으로 부풀었다.
생강나무 꽃을 보았으니 꽃차를 떠올렸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른 봄 생강나무 꽃이 채 만개하기 전에 꽃잎을 따 모았고, 그것으로 차(茶)를 만들어 도시에 사는 몇몇 지인들과 나누곤 했다. 생강나무 꽃을 시작으로 한여름엔 칡꽃으로 차를 만들기도 했으나 차를 만드는 일은 흥미로우면서도 퍽 번거로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때를 놓치면 안 되었다. 잎이 활짝 피어도, 잎이 덜 피어도 아니 되는 만개 직전 꽃잎이어야 향과 맛이 그윽할 뿐만 아니라 차로 우릴 때 모양새도 좋았으므로 매일같이 꽃그늘 아래로 스며들어 꽃봉오리 상태를 살펴야 했다.
이제는 유명하고 흔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수 년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 춘천 출신의 소설가 김유정이 쓴 소설 『동백꽃』이 생강나무 꽃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우리 마을 어르신들 또한 생강나무를 ‘동박나무’라고 불렀으며 검은 열매로 짠 기름을 머릿기름으로 사용했다고, 그렇지만 그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강원도「정선아라리」에도 ‘싸리골 올 동박’ 또는 ‘동박지름을 슬슬 발라서’와 같은 가사가 나온다. 이를테면 강원도 산골에서는 흔한, 이른 봄 숲에서 피는 꽃이라는 말이었다. 골짜기 기슭이든 산비탈이든 아무 데서나 꽃을 피웠으며 멀리서 보면 호박꽃등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여름 밤, 짝을 찾아 냇가 주변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들을 굳이 잡아서 호박꽃 속에 넣고 꽃 이파리를 오므리면 반딧불이들은 꽃잎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을 냈고, 어린 우리들은 그것을 호박꽃등이라고 불렀다.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에도 하지 않았는데, 요즈음 호박꽃잎에 부침가루를 묻혀 튀겼으나 꽃등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어쩌면 낭만은 사라지고 실재만 남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지인에게 차를 만들어주겠노라 약속했으므로 생강나무 꽃잎은 따야 했다. 무릇 모든 꽃잎이 그러하지는 않았지만, 생강나무 꽃봉오리는 물 묻은 바가지에 깨 엉겨 붙듯 다닥다닥 피었으므로 가지를 붙잡고 하나하나 망가지지 않도록 따야 했다.
한 어미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라고 한 그루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들도 이르게 피는 것이 있고, 지르되게 피는 것이 있었으므로 또한 꿀벌들도 꿀을 모아야 했으므로 건너건너 꽃잎을 따야 했고, 그렇게 한 움큼을 모으려면 사뭇 더뎠다. 그랬으므로 마을 동서남북, 골짜기와 비탈을 찾아서 발품을 팔아야 했다. 어린 나무는 꽃봉오리도 작아서 차로 쓰기 어려웠고, 또 큰 나무는 우듬지뿐만 아니라 둘레에도 손길이 닿지 않았으므로 나무 아래에 피어난 꽃봉오리만 겨우 딸 수 있었다. 저녁 산책길에 바구니가 아니라 손바닥만 한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며 한 줌 한 줌 모으다 보면 부지하세월이었으나 그 또한 괜찮았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행여 비닐봉지에 든 꽃봉오리들이 망가질까봐 가끔 봉지를 열어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면서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던 무논에 살던 미꾸라지의 안부가 궁금했다. 꽝꽝 얼어붙은 논배미에 미꾸라지가 살고 있는 것을 알아챈 것은 어느 날, 그때도 평소처럼 저녁 산책을 하다가 문득 어릴 때 ‘빙구’ 타던 일이 떠올랐고, 무심코 언 논배미로 들어섰다. 빙구도 없었고, 어릴 적 동무들도 없었지만 혼자서 얼음 위에서 미끄러움을 타다가 그것도 시들해진 뒤 얼음 바닥을 지켜보았다. 처음엔 꾸물꾸물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 몰라서 온몸으로 얼음판 위에서 뜀뛰기를 했다. 흙탕물 속을 헤엄치는 것은 미꾸라지였다.
얼음판 위에서 발을 구를 때마다 미꾸라지들은 놀랍도록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미꾸라지들에겐 어쩔 수 없이 한정된 공간이었으므로 더는 얼음판을 흔들어 미꾸라지들을 괴롭힐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산책을 할 때마다 얼음판 위에 쪼그리고 앉아 미꾸라지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곤 했다. 얼음판 위에 서 있기만 해도 미꾸라지들에게 진동이 전해지는지 슬금슬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또 손가락으로 얼음판을 똑똑 두드려서 기척을 냈다. 미꾸라지들은 느릿느릿 헤엄을 치거나 논흙 벼 뿌리그루 속으로 몸을 숨겼다. 논흙과 얼음판 사이 공간이 좁았으므로 때때로 미꾸라지들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해서 얼음판이 가로막은 사실마저 잊고는 했다.
그렇게 겨우내 산책길에 만나곤 했던 논배미 미꾸라지들이었는데, 어느새 부지런한 농부는 논바닥을 갈아엎었다. 미꾸라지들 행방이 궁금했으나 해가 서쪽 큰 산 마루에 걸렸으므로 걸음을 재촉했다. 일상에서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였으나 그렇다고 그 일이 또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었고, 쉬이 면역되는 것도 아니었다. 겨우내 두물머리 물둑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저녁마다 우두커니 서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이란 그저 추운 겨울을 버티고,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면서 언 내를 맴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언 내에 패름이 도는가 싶더니 얼음은 녹아 없어지고 냇물은 빠르게 불어났다. 냇가 기슭으로 더듬더듬 내려섰다. 생강나무 꽃은 함함했고, 나무의 키도 알맞추 커서 아무데서고 손길을 뻗으면 꽃잎을 딸 수 있었다. 꿀벌은 꿀벌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꽃잎을 따 모았다. 겨울을 난 벌레집도 피하고, 거미줄도 피하느라고 손길은 더뎠지만 코끝을 맴도는 꽃 내음 때문에라도 차는 이미 마신 거나 다름없었다. 꽃잎을 따다 말고 비닐봉지를 펼쳐 냄새를 맡곤 했다. 막혔던 숨통이 터지고 머릿속은 맑아졌으며 눈이 시원했다. 꽃에겐 열매 맺지 못한 이른 죽음이었을 테지만, 한 잔의 차를 얻을 내겐 잠깐의 위로이며 휴식이었다.
어릴 때 새집을 맡아 놓던 때처럼 머루와 다래덩굴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손에 든 비닐봉지를 덜렁덜렁 흔들면서 집으로 향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가을을 떠올리며 입에는 벌써 군침이 돌았다. 어쩌면 멧돼지 무리들이 먼저 탐냈을 머루와 다래였을 테지만, 가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은 가볍디가벼웠다. 해거름이 겨운 시간 두물머리 물둑에 다시 섰다.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는 동안 새 떼를 품은 갈대숲은 바람에 누운 채 수선거리고 있었고, 외딴 곳에 핀 매화나무 가지는 이제야 꽃눈을 내밀기 시작했다. 어느 것은 이르게 또 어느 것은 느리게 제자리에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냇물 한가운데 큰물이 나면 물길에 잠기기도 하는 어평바위에는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만 물그림자로 짙게 남아 있었다. 겨우내 홀로 냇물을 휘젓고 다니던 백로였을까, 서쪽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던 기러기 떼였을까, 아니면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수달이었을까. 바람도 없는 냇물에 물결이 일었다. 꽃마저 잊은 채 한동안 물가 기슭을 개개는 물길을 건너다보았다. 문득 주먹을 쥐었다 펴고서는 바람결을 만졌다. 물길은 그대로 인 채 아무 것도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어름사니 허공잡이를 하듯 잠시 앉았다 일어섰다. 떠난 뒤에야, 이별한 후에야 비로소 뒤를 돌아다보는 인간은 그러므로 영영 어리석은지도 모를 일이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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