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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⑩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8년 10월 25일(목) 14:0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개울가 갈대숲 위로 까막까막 반딧불이들이 날아올랐다. 우꾼우꾼 벼 익는 냄새가 사방으로 번지는 사이, 초여름 새끼를 친 제비 떼는 먼 길 떠날 준비로 연일 분주탕이었다. 처서(處暑)를 지나자마자 전염병처럼 드셌던 한여름 열기가 벼락같이 누꿈해지면서 바람결 또한 방향을 바꾸었고, 보랏빛 물봉선과 쑥부쟁이 꽃들이 피어났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아침저녁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불볕더위와 모다기비를 반복하던 한여름이 무색해졌다. 뒤이어 산바람에 버섯 소식이 실려 왔다.
지난해에는 버섯이 돋는 순서도 뒤죽박죽이었고, 그러다 끝내 바라던 버섯은 없었다. 산림조합에서는 수매를 취소할 정도였다. 그때 어른들은 전례가 없다는 말로 버섯이 났다는 소식을 뭉갰고, 숲에 들었던 사람들 손에는 싸리버섯, 능이, 송이들이 들려 있었다. 눈앞에 버섯을 흔들어 보여도 어른들은 왼고개를 치며 ‘유월 송이’, ‘어쩌다 불쑥 솟은 돌연변이’ 라며 전례를 들추었다. 버섯 철을 두고 한쪽에서는 아직 철이 이르다며 기다려 보라고 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버섯이 두 번 돋는 경우는 없다며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했다. 육십 년을 숲에 드나든 사람이나 십년 안팎인 사람이나 다를 게 없어 보였으나 경험은 몹시도 완악하고 검질겨서 쉽사리 자기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랬으므로 올해도 이따금 큰 산을 올려다보면서 기미를 엿보던 어느 이른 아침, 어떤 성마름에 이끌려 큰 산을 향해 집을 나섰다. 수풀엔 이슬이 무서리처럼 내려 바짓자락이 무거워졌고, 긴호랑거미가 친 거미줄은 얼굴을 뒤덮었다. 등성이 자드락길에 있던 ‘똥굴’이라고 부르는 오소리 굴은 등마루에서 기스락 쪽으로 장소를 옮겼다. 여러 개의 굴을 파 놓고 이따금 똥 싸는 자리를 바꾸는 오소리 굴은 세 개로 늘었으며, 낮은 곳에 있는 굴 입구에 똥을 무더기로 싸 놓았다. 곰쓸개에 버금간다는 오소리는 한때 그 쓸개 때문에 수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마을에 사냥꾼들이 사라지면서 새끼들은 는 듯했다.
지난해 보았던 샛노란 배암차즈기는 꽃을 피웠으나 각시취는 여태도 깜깜했다. 길섶 바윗돌에 누군가 자잘한 돌멩이를 올려 작은 탑을 쌓아 놓았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밑에 쌓인 돌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깨진 돌을 하나 주워 조심스레 그 위에 올려놓았다. 흩어지고 흔들리는 돌무더기일지라도 한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겠거니 하고 뒤돌아보지 않으며 걸음을 재우쳤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오르막길은 판판이 호흡을 가쁘게 했다. 그러나 삽상한 바람결이 코끝을 간질였고, 솔숲 사이로는 이른 아침 빛살이 비춰 들었으며 귓가에는 계곡 물소리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해마다 가을 버섯 철이 당도하면 한 번씩 오르곤 하던 등성이 가르맛길이었다. 어느 해는 숲 입새부터 깨금버섯(뽕나무버섯부치)이 흔했고, 또 어느 해는 밤버섯(벚꽃버섯)이 수두룩했었다. 올해는 흔히들 ‘잡버섯’, ‘똥버섯’이라고 부르는 무당버섯, 광대버섯들이 설핏했고, 이들 이름은 어쩌다 이리 짓게 되었으며 이들 버섯이 죄다 독버섯인 까닭은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 솔숲에 부는 바람결에, 귓가를 간질이는 물소리에 한동안 가만히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변하지 않은 듯 그러면서 가뭇없이 변한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버성기며 메마른 수풀 사이를 뚜렛뚜렛 살폈다.
숲에 들 때마다 이따금 버섯이 먼저인지, 숲 속 풍경이 먼저인지 스스로 묻고는 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민통선인 큰 산에 드는 까닭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등마루에 올라서자마자 만난 이웃 마을 주민은 그 이른 시간에 이미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덕담을 들으며 등마루를 넘어 또 다른 골짜기로 내려서는 첫걸음에 손바닥만 한 능이를 만났다. 해마다 능이가 돋기 시작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 곳에서 한 발짝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올해 처음 만난 능이는 그리 탐탁하지 않았으나 처음이었으므로 고개 숙여 천지사방에 감사인사를 올렸다.
수풀 사이사이 발길에 차이는 포탄 파편, 낡은 낙하산, 빗물에 물크러진 삐라들 그리고 오래된 상표의 술병과 낡삭은 물병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점점 더 닳아서 낮아지고 있는 부족장 무덤이라고 해도 좋을 듯한 무덤들과 그 둘레에 도래솔이었을 법한 고묵은 소나무들이 만드는 그늘에 기대 잠깐씩 다리쉼을 했다. 나뭇잎 사이로 흔들거리는 남으로 치달리는 먼 데를 바라보는 일은 어쩐지 애석하기도 하고, 또 시원섭섭하기도 했다. 먼 데는 노상 먼 데여서, 제자리는 또 제자리여서 애틋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맑게 영글어가는 물빛 위로 산그늘이 내려앉는 동안 모기떼는 또 여윈 개 겻섬 탐하듯 극성이어서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메마르고 푸석한 흙바닥에는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했으나 수풀 사이사이에서는 연보랏빛 솔체꽃이 이따금 고개를 내밀었으며 흔하디흔했던 도라지꽃은 가까스로 한 송이 구경했다. 초식동물들이 즐기는 먹이인지 줄기가 잘린 도라지가 눈에 띄기는 했으나 가물에 콩 나듯 드물었다. 그러고 보니 다래나무 아래서 다래열매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다래와 머루를 먹고 살자던 노랫말은 다시는 기약할 수 없는 언약이 될 모양이었다.
몸에 각인된 기억은 질기고 깐깐해서 등마루를 넘고 보면 지난해 넘나들었던 그곳이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먼저 오간 이들이 버리고 간 소주병과 음료수 병, 비닐봉지 들이 눈에 띄었다. 산짐승들의 흔적이라야 잘해야 발자국과 똥 무더기뿐이었다. 고정불변하는 숲은 없을 것이겠으나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파내고 태양광발전소를 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만큼 편치 않았다. 예전에는 목초지 조성을 이유로 소나무들을 파내더니 근래에는 태양광발전소를 이유로 소나무들을 팔아치우고 있었다. 숲정이 곳곳마다 마치 헌데처럼 드문드문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고 있었다.
독사 한 마리가 수로에 빠져 물길을 거스르고 있었다. 붉은 독사, 검은 독사, 얼룩 독사들이 눈에 띄었고, 새끼 독사들도 없지 않았다. 가을은 뱀들 짝짓기 철이라고, 골짜기 물가를 조심하라는 사촌의 당부가 있었다. 처음으로 나무 졸가리를 주워 막대를 만들었다. 눈앞을 가로막는 거미줄도 걷어내고, 수풀 우거진 곳에서는 발밑을 헤집었으며 오르막에서는 지팡이로도 썼다. 그러나 한순간 단단하지 못한 막대가 부러지면서 앞으로 곤두박질할 뻔했다. 손목이 시큰했다. 미련 없이 막대를 던져버렸다. 낯선 것을 길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먼저 다녀온 이들이 전한 말과는 달리 숲 바닥은 빗자루로 쓴 것처럼 빤빤했다.
팔월 뙤약볕이 길어진 것을 감안하면 고추 농사와 벼농사는 평년작은 되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논들에는 참새 떼가 파도처럼 일렁이며 무른 벼이삭을 씹어댔다. 새를 쫓는 허수아비들은 패당점퍼를 입었고, 노인들 손에는 비닐로 만든 먼지떨이, 총채가 들려 있었다. 한여름에는 흩어져 살던 참새들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떼를 지어 벼이삭을 공격했다. 참새를 잡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밤이면 멧돼지를 비롯한 산짐승을, 한낮이면 새떼를 쫓는 ‘대포소리’가 골짜기를 지나 마을을 뒤흔들었다.
솔수펑이 그늘엔 두텁게 쌓여 있던 솔가리들이 파헤쳐진 흔적이 고스란했다. 멧돼지 짓이었고, 송이 채취꾼들이 질겁하는 풍경이었으나 아직 돋지 않은 송이를 찾기 위해 먼저 도착한 이들이 쇠/ 나무꼬챙이로 떠들어 놓은 곳도 그에 못지않았다. 솔가리 아래서 잠자고 있었을 버섯 포자들은 먼저 온 산짐승과 사람들 발자국에 밟히고 밟혀 지상으로 돋아나도 찌그러지고, 갈라져 있기 일쑤였다. 버섯 가격이 치솟고, 가을철 든든한 가욋벌이가 되면서부터 산은, 숲은 사람들도 넘쳐났다. 한쪽에서는 금줄과 현수막을 내걸었고, 또 한쪽에서는 그 현수막과 금줄을 칼로 찢고 잘랐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성마르고 욕심 사나운 인간들이 된 것일까.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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