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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학생

우리 사는 이야기 / 노혜숙 주부(고성문학회 회원)

2019년 12월 11일(수) 11:0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속초와 고성을 오가는 1번 시내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할머니 한 분이 버스에 오르자마자 ‘학생’이라고 외치며 요금체크 단말기에 카드를 댄다.
버스기사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할머니는 방송통신중학교 1학년이라고 큰소리로 말씀하신다. 승객들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어깨를 으쓱이며 당당한 모습이었다.

십대처럼 배낭을 멘 할머니

젊은 버스기사는 “할머니! 그건 학교에서 하구요, 버스에서는 성인요금을 내세요”라고 중얼거리며 불만스러운 듯 애꿎은 경적만 눌렀다. 만약 내 할머니가 그랬으면 “에고, 자랑스러운 우리 할머니”라고 했을 텐데….
하얀 머리 단정히 빗고 십대처럼 배낭을 멘 할머니. 환하고 당찬 모습은 청순한 소녀의 멋이 살아 있었다. 할머니의 저 당당한 웃음은 그동안 수많은 고통과 역경을 견디어 온 인생역정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만학도로서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에게 ‘학생’이란 신분은 평생 갖고 싶었던 꿈이 아니었을까? 비록 늦은 나이지만 공부하러 오가는 길이 자랑스럽고, 삶 자체가 기쁨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삶보다 자식의 삶을 행복이라 여기며 견디고 사셨던 세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삶의 기준을 오로지 가족에 맞춰 사신 삶,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교육의 기회를 놓친 할머니는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해 받은 설움과 불편함을 털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다.

가족들의 격려와 힘이 큰 도움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기쁨을 찾고 있는 할머니. 배움에는 나이가 상관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희망과 꿈을 가지고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자기 삶을 개척하고 있다.
하고 싶어도 혼자서 용기를 못 내고 계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알고는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게 만학의 길인 것 같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고 배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클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만학을 불태우시는 어르신께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만학의 기쁨은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용기와 도전정신도 필요하지만, 가족들의 격려와 힘이 큰 도움이 된다. 공부하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을 우러러 칭찬해야 하고 최대한의 응원과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
못할 것 같으면서도 일단 시작해 놓으면 다 이룰 수 있는 일, 꿈이 있는 한 희망은 언제나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족을 위해 배움을 포기했던 이 시대 어머니들의 자화상과도 같은 할머니는 지금 평생 배움에 대한 갈망이 봄눈 녹듯 소리도 없이 녹고 있을 것이다.
아침이면 손주들과 같이 등교를 하고, 면사무소에서 서류를 뗄 수도 있을 것이고, 은행에서 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녁 늦게 책상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어르신에게 용기와 박수를 보낸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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