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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37]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20년 01월 21일(화) 14:3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전쟁 중에 도성을 버리고 파천하던 임금의 수라상에도 올랐다던, 흔히 ‘굴밤’이라고 우리 동네 어른들이 부르는 상수리는 보통은 도토리라고 불렸다. ‘참나무’ 종류 나무 열매는 멧돼지가 먹는 밤이라고 해서 도토리라고 했으며 상수리나무 열매는 특별히 상수리라고 구별해서 불렀다. 상수리와 도토리, 굴밤이라고 섞어 쓰기도 했지만, 우리가 참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들은 제각각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들을 한데 섞고 아울러서 부르는 것과 같이 참나무, 진목(眞木)은 없었다. 나무에 진짜라고 굳이 불렀던 것은 재질이 단단하고 쓰임새가 다양했기 때문일 것이었지만, ‘나도밤나무’는 나도밤나뭇과이고, ‘너도밤나무’는 ‘밤나무’와 같이 참나뭇과인 것처럼 그저 같은 과에 속했을 뿐이었다.
상수리나무는 키도 무척 커서 매번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아야 했는데, 그러고도 우듬지 끝에 시선이 닿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무에서 멀리 떨어져서도 나무의 수관을 다 알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기가 어려웠다. 그렇더라도 이쪽에서 저쪽, 저쪽에서 이쪽으로 옮겨다니면서 나무의 정수리를 보려고 애를 썼지만 보려고 한다고 해서 다 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또다시 의문이 들었지만 나무에 대한 궁금증을 떨쳐내는 일에 번번이 어려움을 겪곤 했다. 겨우내 ‘o holy night’을 스웨덴 바리톤 가수 호칸 하게고드를 시작으로 같은 노래를 다른 이들은 어떻게 불렀는지 궁금하여 여러 가수들 목소리를 찾아서 들었던 것처럼.
우리 마을 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에도 작은 상수리나무 숲이 있었지만 단독으로 우뚝한 상수리나무를 보려면 고성군청 뒷머리, 와우산으로 가면 되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은 두어 갈래가 있었지만, 고성 등기소와 고성 교육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충혼탑이 나무를 가리고 서 있었고, 예전에는 울타리를 타넘어야 했지만 얼마 전에 산책로를 내면서 울타리를 터놓았으니 전보다 접근하기가 쉬웠다. 그런데 산책로를 만들면서 길옆에 낸 배수로뿐만 아니라 고성군 보호수이기도 한 아름드리 상수리나무 두 그루가 우뚝한 곳 주변은 비좁고 옹색해서 여러모로 언짢고 못마땅했지만, 아쉬운 대로 언제든지 상수리나무를 볼 수 있었다.
고묵은 나무들이 신성(神聖)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지만, 나무들은 두 팔로도 다 안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하며 또 어쩔 수 없이 인간보다 오래 살면서 인간들의 간난고초와 희로애락을 다 지켜보았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저절로 경외감이 드는 것은 마을에 늙고 오래된 나무가 있으면 어딘가 마음이 놓이는 것과 닮았다. 와우산 상수리나무도 한때는 제단이 있어 인간의 제사를 받던 곳이었으나 전쟁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바뀌면서 시나브로 사람들 사이에서 잊힌 채 외따로 서 있었다.
그렇더라도 상수리나무 가지를 아무렇게나 뚝뚝 잘라내면 손가락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상수리나무에는 또 영원불멸을 상징한다는 황금빛 열매를 가진 황금가지, 겨우살이가 자라는 까닭에 새들의 먹이 터이면서 놀이터가 되곤 했다. 그런 나무들이 땔감으로 또는 도로를 넓힌다는 명목으로 베어졌다. 그러니까 옛 문헌에 ‘즘게’라고 표기했던 나무, 큰나무들은 한 번 잃으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었는데도 아무도 서슴거리지 않았다. 어떤 이들이 나무를 신성한, 거룩한 무엇처럼 여기는 까닭은 나무가 무슨 대단한 기적을 행하거나 영험을 보여서가 아니라 오래도록 곁에 있으면서 때때로 위안과 위로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아무런 말없이 등을 기댈 수 있는 대상이 흔하지는 않았을 것이었으므로.
이웃집 할머니는 여전히 가을이면 서너 됫박쯤 도토리를 주워서 말린 뒤 한겨울이면 도토리묵을 쑤곤 했다. 묵을 쑤는 때는 주로 명절이었지만 귀한 손이 오면 그때도 빠지지 않고 별미로 준비했다.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황급히 파천하여 당장 호구할 음식이 없었을 임금에게 백성들은 비상식량으로 여퉈 두었던 도토리가루를 내놓았을 것이었고, 이것이 임금의 밥상에 올랐을 것이었다. 도토리 열매는 가루를 내거나 빻아서 음식재료로 쓰였으며 이제는 겨우 묵을 만드는 식재료로 한정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 할머니는 묵은 물론이거니와 도토리범벅, 도토리수제비 등을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상수리는 상수리쌀이라는 낱말로 남아 있었으며 상자다식과 상자죽, 상자병과 같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상수리는 한자로 상실(橡實), 상자(橡子)라고 불렸다.
참나무라고 불리는 위의 여섯 나무들은 같은 과이면서도 나무껍질, 나뭇잎은 물론이거니와 열매를 싸고 있는 깍정이 모양도 다 제각각이었다. 그렇더라도 모르고 보면 졸참나무가 갈참나무 같고, 신갈나무가 떡갈나무 같기는 했다. 그런 가운데 이파리만 놓고 보면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는 서로 비슷했지만, 자세히 보면 상수리나무 이파리가 조금 더 길고 끝이 뾰족했다. 무엇보다 두 나무는 수피, 즉 나무껍질에서 큰 차이가 났다. 코르크가 매우 발달한 쪽은 굴참나무여서 이 나무껍질로 ‘굴피집’ 지붕 재료로도 쓰고, 지금은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지만, 이웃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고기잡이배 그물망 벼리에 매다는 ‘보굿’이 바로 이 굴참나무 껍질이었다. 이 보굿을 이곳 강원 고성 방언으로는 ‘툽’이라고 불렀다고 일러주셨다.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이들이 참나무 류를 선호하는 이유는 불땀이 세기 때문이었다. 숯의 재료 또한 참나무 류였다. 쓸모로 친다면 단연 참나무 류가 으뜸일 것이었지만 무엇을 쓸모의 유무에 따라서만 가치를 매길 수 있을까. 마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상수리나무 줄기는 일자로 곧게 뻗어 위로 올라간 게 아니라 마치 땅바닥을 기어가는 뱀처럼 구불구불했다. 이런 상수리나무들을 우리 마을과 이웃 마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들 나무들은 대부분 비탈진 논두렁 주변이나 집 뒤 작은 언덕에 숲을 이루고 있었다. 상수리나무들 사이에 오동나무가 듬성드뭇하긴 했으나 이 나무들이 베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남은 까닭이 궁금했다.
어릴 때는 상수리나무 줄기에서 수액을 빨아먹는 사슴벌레를 흔하게 보았고, 동네 아이들은 이 사슴벌레를 잡아서 뿔싸움을 시키기도 했다. 마치 마을 버덩에 자유롭게 풀어 놓곤 했던 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소똥구리가 뒷발질로 똥을 모아서 점점 더 큰 공 모양이 될 때까지 지켜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사슴벌레는 물론이거니와 하물며 소똥구리는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되었다. 누구도 소를 버덩에 내놓아 풀을 뜯게 하지 않았다. 소들은 죄다 거대한 축사에서 태어났으며 도축장으로 실려갈 때나 되어서야 겨우 축사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발생한 고성 산불의 여파가 채 가지시도 않은 가운데, 이번에는 지난해 9월 발생한 호주 산불이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피해 면적만 2020년 1월 초 현재, 우리나라 면적의 60%에 이르는 600만㏊이며 12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희생되었다고 전했다. 유칼리나무 잎만 먹고, 하루의 대부분은 잠을 자며 동작이 매우 굼뜬 코알라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 산불의 끝은 어디인가, 되뇌었다.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생활 터전이 잿더미가 된 산림에는 코알라뿐이었을까. 캥거루며 왈라비는. 나무와 꽃들, 균류와 이끼류는 아니 인간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물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살처분 당해야 하는 낙타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언제부턴가 당산나무, 둥구나무, 정자나무, 그늘나무 같은 낱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마을 수호신으로 보호 받으며 제사를 받던 나무가 있다는 말은 어느새 전설이 되었다. 농촌이 도시화 되는 등 생활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겠지만, 여전히 논밭농사를 짓고 사는 곳이 또 농촌이었으므로 당산나무, 둥구나무들을 굳이 없앨 이유는 없을 것이었다. 오래된 나무들이 사라지면 그 나무가 품었을 이야기와 동식물들 또한 사라지는 것일 터였다. 마을에 저녁 빛에 빛나는 고묵은 나무 한 그루쯤 있으면 그 아니 넉넉하고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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