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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仙人)이 사는 곳 봉호리(逢壺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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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어재동 향교장의 杆城鄕校元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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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 26일(수) 09:40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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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지역사회의 지명을 살피는 동안 ‘선인(仙人)이 사는 곳’ 간성읍 봉호리에 귀착하여 옛글에서 발췌(拔萃)한 내용(內容)을 열거해 보고자 한다.
인조때 택당 이식(李植) 선생은 수성(杆城) 현감으로 부임하여 진부령 개통과 수성현 학문발전에 진력하였으며 수성지역 산하의 교통, 행정, 조세, 사묘(寺廟), 인물, 설화, 한시(漢詩) 등 많은 행적을 남기신 분이다.
봉호(蓬壺)라고 노래한 택당 이식
그러한 택당 이식(李植) 현감의 탁월한 공적은 2015年度 高城文化 誌에 필자의 오피니언 칼럼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 있어 생략하며, 인조시 이조판서 부제학을 지내시고 이씨조선 한학 사대문장가 이신 택당 이식 선생이 음시(吟詩)한 바 있어 지명(地名)과 함께 소개(紹介) 해본다.
봉호(蓬壺)라고 노래한 택당 이식 선생의 수성詩 원본 100의 詩文에 의하면 마지막 구절에 봉호(蓬壺)는 신선의 곳이라고 택당 이식 선생이 음시한 詩이다.
<鮫宮具闕 五雲中(교궁구궐 오운중) 왕궁의 궁궐이 이 구름 속에 잠겼으니 / 赤岸銀河 一派通(적안은하 일파통) 땅과 하늘이 한데 연결이 되었네 / 桑土幾番 今作海(상토기번 금작해) 육지가 몇 번이나 변해 바다가 됐을 때 / 輿圖此外 更無東(여도차외 경무동) 지도는 여기서 동쪽이 없게 되었고 / 賓暘羲仲 勢將命(빈양희중 세장명) 태양은 희중의 명한데로 오고가고 / 駕石秦王 枉貴功(가석진왕 왕귀공) 돌들은 진시황의 챗죽을 받았도다 / 誰識貊墟 微小吏(수식맥허 미소리) 누가 맥국의 지방관이 될 줄 알았으랴 / 晴窓朝合對 蓬壺(청창조합대 봉호) 맑은 아침 빛이 신선의 곳을 마주보네>
중국의 전설에도 신선(神仙)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은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명시하고 있고, 중국 문헌에 봉래산(蓬萊山)을 봉호산(蓬壺山)이라고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노래했다.
“하늘이 만든 특별한 자리로구나”
또한 정조때 정승 번암 체제공(1720~1799)이 1749년 30세때 작품중에‘혈성루에서 금강산 만이천봉을 굽어 보면서’에서도 초장에 봉호(蓬壺)를 바라보니 라고 노래하며 음송(吟誦) 하시었다.
<高樓 一嘯攬蓬壺(고루일소람봉호) 높은 누각에서 휘파람 불며 선산 봉호를 바라보니 / 天備看山別作區(천비간산별작구) 산을 구경하라 하늘이 만든 특별한 자리로구나> - 이하생략
현(現) 간성 봉호리는 함종어씨(咸從魚氏)와 연일정씨(延日鄭氏), 파평윤씨(坡平尹氏), 三姓이 향약(鄕約)을 준수하며 권선징악과 상부상조하여 평화롭게 생활하며 번창해 왔다.
농토가 기름지고 평탄하여 고성군의 부촌으로 지명되기도 했고 전란에도 훼손이 없는 곳으로 봉호에 적(籍)을 둔 후손(後孫)들은 姓氏 區分없이 봉호라는 지명을 잘 새겨 번성하기 바라며, 봉호의 자긍심을 살려 사랑의 삶을 계승 발전하길 기원하며 이에 서문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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