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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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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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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5월 28일(목) 08:23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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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 소리가 들판을 가로질렀다. 둥지를 만드는 것인지, 먹이를 찾는 것인지 분간을 못하는 나로서는 쉴 사이 없이 부리로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에 기가 질렸다. 딱따구리의 다른 이름이 탁목조(啄木鳥)임을 감안한다고 해도 기계송곳으로 나무를 뚫는 것 같은 소리는 새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는 가운데 고묵은 오동나무 우듬지에서 성마른 듯하면서도 맑은 고음으로 울어대는 청딱따구리를 만났다. 나뭇가지에서 위로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면서 쉴 때마다 한 번씩 울음을 우는데, 이 소리가 삐, 삐, 삐요 같기도 하고 히, 히, 히요 같기도 해서 매번 새 울음소리는 제대로 듣는 것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글자로 옮기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청딱따구리 수컷은 이마가 새빨갰으나 오동나무 줄기를 타고 오르는 청딱따구리는 이마에 아무런 색이 없었으니 암컷일 것이었다. 나와 청딱따구리가 앉은 오동나무 사이에는 밭이 있었고,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밭둑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았다. 우리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색딱따구리와 쇠딱따구리가 그렇듯 청딱따구리도 텃새였지만, 오색딱따구리와 달리 청딱따구리는 나무에 내려앉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은 탓에 자주 볼 수 없었다. 오동나무가 있는 비탈 숲은 산 기스락이었을 곳으로 위아래로는 논밭이 있었으며 이 비탈진 곳을 다 까뭉개지 않은 덕분에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들과 찔레덩굴, 느릅나무와 고욤나무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었고 그리하여 수많은 새떼들이 모여들었으나 청딱따구리와는 처음 만났다.
아주 짧은 거리를 뛰듯 종종대며 자리를 옮기던 청딱따구리는 울음 한 번 울고서는 쉴 사이 없이 고개를 돌리며 사방을 살폈고, 그런 다음 또다시 폴짝 개구리 뛰듯 가지를 타고 꼭대기로 자리를 옮겨갔다. 짧게도 울고 길게도 울며 때로는 거칠고 새된 음성으로, 또 때로는 맑고 고운 소리로 우는 새들 울음소리는 어떤 신호일 테지만, 신호를 해석할 수 없는 내게는 그저 새소리였을 뿐이었으나 살피면서 지켜보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청딱따구리 울음소리에 홀려 있는 사이 건너편 산골짜기에서는 훼방이라도 놓는 듯 노루/고라니 울음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해질 무렵이면 산비탈 호밀밭에는 매일같이 대여섯 마리에 이르는 노루가 떼를 지어서 새싹을 뜯어 먹고는 했는데, 노루 울음소리는 이들과 동떨어진 옆 골짜기에서 들려왔다. 해가 다 저물도록 노루는 두어 시간 동안 목이 터져라 울어댔으나 까닭을 알지 못했다. 호밀은 소먹이로 가을에 파종하여 이른 봄이면 벌써 푸릇푸릇 싹이 자라서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특히 눈에 띄었는데, 언제부턴가 노루들이 모여들어 어린 싹을 뜯고 있었다. 하얀 엉덩이는 이쪽 개울가에서도 보일만큼 크고 도드라져서 노루인 줄 알아챘다. 쨋쨋하면서도 꺽센 노루/고라니의 울음소리는 마을 곳곳마다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절박한 듯했으나 나는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듣그럽기만 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서 처마 밑에 둥지를 짓는 동안 텃밭에서는 할미새 수컷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암컷 주위를 삥삥맸으나 암컷은 야멸치게 뿌리치며 자리를 떠났고, 산 기스락 수풀에서 설설대던 장끼와 까투리는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장끼는 서쪽으로 까투리는 동쪽으로 날아올랐다. 봄은 흩어져 있던 새들을 끼리끼리 한곳으로 불러 모아 한편에서는 둥지를 만들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짝짓기를 하느라고 산과 들이 울렁울렁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바람이 불고 먼지잼으로 봄비가 내렸다. 말똥가리가 떠나고 잊지 않고 돌아온 할미새는 냇가 작벼리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살구꽃과 복사꽃, 벚꽃과 산벚꽃이 한목 피어서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제비꽃들이 또 한꺼번에 피었다. 눈에 띄는 노랑제비꽃보다는 둥근털제비꽃이 먼저 피고, 그런 다음 남산제비꽃과 호제비꽃 그리고 고깔제비꽃들이 이어서 피었는데, 몇 해 전부터 꽃들이 죄다 한꺼번에 피어서 미처 눈인사를 나눌 틈도 없었다. 복사꽃이 붉어지고 있는 동안 잎부터 피운 귀룽나무가 우럭우럭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으며 이르게 꽃을 피운 느릅나무 꽃은 시나브로 이울고 있었다. 갯가 벼랑바위에는 돌단풍이 활짝 피었고, 그 주변 산비탈에는 현호색과 개별꽃이 벌떼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생강나무 꽃진 자리에는 이파리들이 뾰족뾰족 혀를 내밀고 있었으며 이른 봄 숲정이에서 만났던 올괴불나무도 꽃은 이미 지고 이파리들만 무성했다.
도둑눈이 내렸던 어느 날 흑백으로 변한 숲정이에는 연분홍 진달래꽃잎과 샛노란 생강나무 꽃이 흰 눈에 덮여서 꿈속처럼 우련했다. 활짝 핀 진달래꽃잎 위로 함박눈이 내리더니 또다시 강풍이 휘몰아쳤다. 꽃이 피었으니 봄이라고 불러야 했지만, 봄은 그럴 마음이 없는 듯했으나 매번 굼뜬 몸보다는 마음이, 느린 발걸음보다는 머릿속이 먼저 앞으로 내달렸다. 그렇더라도 연분홍 진달래 꽃잎에 살포시 내려앉은 흰 눈을 바라보는 마음은 퍽 달떴다. 숲은 눈 속에 갇혔고, 새떼들 또한 소리조차 없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적막한 숲은 이미 다른 세상이었다. 물속을 들여다보듯 가만가만 숲을 둘러보았다. 꽃은 무심하고 아름다워 발끝마다 슬픔이 고였다.
벌써부터 키를 키우기 시작한 냉이가 꽃대를 밀어 올리는 동안 논두렁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아서 때로 발길에 밟히기도 하는 꽃다지와 꽃마리 그리고 주름꽃 등이 피고 지는 동안 저수지 수문이 열렸고, 봇도랑마다 차란차란 물이 흘렀다. 논을 갈아엎고 물댄 논은 천천히 무젖으면서 낮은 자리 메마른 논배미를 채우고 있었다. 어떤 논은 진작 논바닥을 갈아엎었으나 또 어떤 논은 아무런 준비가 없었지만 모내기철이 당도하면 그 또한 달라질 것이었다. 날씨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벼 품종이 바뀌는 것과 더불어 논바닥에다 직접 만들던 못자리가 비닐하우스로 옮겨지더니 그예 볍씨 파종기를 두고서도 이제는 직접 볏모를 기르지 않고 사서 쓰는 농가가 늘고 있었다. 이제는 농부들 누구도 지게를 만들지도, 쓰지도 않는 것처럼.
변하는 것은 변하는 것대로 까닭이 있을 것이었으나 내 걸음으로 쫓기에는 숨이 가빴다. 이번 봄처럼 이리 봐도 꽃이요, 저리 봐도 꽃인데 그렇게 꽃이 피어서 좋았으나 때 없이 한꺼번에 몰려서 피어나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제는 절기를 따져 묻는 일이 멋쩍어지는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올고비’가 났다고 했더니 이웃마을 어르신은 ‘못자리고비’라고 수정했다. 이를테면 나는 시간에 주목했고, 이웃마을 어르신은 농사 절기에 주목한 것이었다. 동시대를 살아도 시간 감각은 이토록 달랐다. 이것은 어쩌면 이십 세기에 태어나 이십일 세기를 사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마을 큰길에 가로수로 심어 놓은 벚나무에는 직박구리와 참새, 멧새와 같은 마을에 사는 새들이 내려앉기도 했는데, 꽃망울을 터뜨리자 벌떼들이 나타났다. 가끔 도둑고양이들도 벚나무 아장귀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곤 했다. 산앵(山櫻)으로도 불리면서 벚나무로 묶이는 가로수들이었지만, 꽃잎 색깔도 피는 시기도 제각각이었다. 각각의 나무들뿐만 아니라 한 나무에서도 꽃과 이파리들이 피고 지는 때는 저마다 달랐다. 어쩌면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금을 긋거나 지우는 일보다 애초 금을 만들지 않은 것이 필요한 것인지도.
여전히 언제 끝날지도 모를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아우성이었고, 이 외진 시골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을 경로당 폐쇄는 물론 노인들 일자리인 ‘희망 일자리’ 사업도 중단되었다. 집에 농토가 있는 노인들은 논밭으로 나갔지만, 그마저도 없는 노인들은 들/산나물을 찾아 들과 산으로 나섰다. 농약을 치면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던 이들이 읍내에 나갈 때면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썼다. 가까운 해변에는 도시에서 몰려온 자동차들로 몸살을 앓았으나 근처 식당은 또 텅 비었다. 해변에는 텐트와 캠핑카가 줄지었다.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봄꽃은 피고 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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