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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장수 아들

<고성문학회> 회원 작품 릴레이 [5] 강정희 / 수필

2020년 07월 21일(화) 13:51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고성지역 문화행사인 수성문화제 때 고성문학회 회원들의 시화전이 열렸다. 나의 시 한편이 전시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장을 찾았다. 우리 문학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를 읽고 큰 감동을 안고 돌아오는데 행사장 입구에 신나는 엿장수 각설이 타령이 행사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다.
각설이 차림을 한 사람의 입담과 노래, 춤이 과연 관람객을 그 속에 홀딱 빠지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 장르가 끝나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들러리들이 파트별로 엿 봉지를 들고 다니면 너도 나도 무슨 은혜라도 갚듯이 기분 좋게 몇 봉지씩 팔아주는 것이다.
‘참! 엿장수도 저렇듯 진화가 되었구나.’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초등학교 친구였던 엿장수 아들 천수가 떠올랐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 속에 묻혀버린 리어카 엿장수지만 그 당시엔 집에 어쩌다 고물이 생기면 유일한 간식이었던 엿과 바꿔먹곤 했었다.
‘엿 장사 똥구멍 찐덕찐덕, 고물 팔아요, 빈병이나 찌그러진 냄비 팔아요.’ 오늘도 우리 반 애들이 엿장수 아들 천수가 나타나자 또 시작이다. 엿장수 아들로 태어난 게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천수는 벌써 얼굴이 빨개지며 책상에 머리를 박고 석고대죄를 하고 있다.
천수한테는 항상 시궁창 냄새가 났다. 머리는 떡이 져서 개기름이 줄줄 흐르고, 양쪽 소매 끝은 흐르는 코를 얼마나 닦아 냈는지 풀먹인 삼베조각 마냥 빳빳하다. 천수가 다른 옷을 입었던 기억은 없다. 언제나 중학교 형아 들이 입는 검은 교복을 입고 다닌다. 일주일 내내 그 옷만 입고 오는걸 보면 빨래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천수의 눈은 개구리 왕눈이처럼 툭 불거져 나와 여차하면 큰 왕사탕이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다.
천수는 도시락을 한 번도 싸온 적이 없다. 학교에서 불우아동들에게 무상 배급하는 옥수수 빵 한 개로 점심을 때운다. 천수는 아예 공부할 생각이 없는 애다. 저렇게 하다가 중학교 시험은 어떻게 칠는지…….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담임에게 손바닥 맞는 단골이다. 반 친구들이 숙제를 꺼낼 때 천수는 손바닥을 꺼낸다. “까짓것 때리면 맞지 뭐!” 배짱이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학교에 들어선 천수의 양말이 질퍽하게 젖었다. 난 조심스레 다가가 “얘, 너 어디서 양말을 이렇게 적셨니?” 천수는 못들은 척하며 제자리에 가 앉았다. 학교가 파하여 천수가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는데 운동화 밑창 한 군데가 떨어져 나가 구멍이 나 있었다. 그제서야 양말이 젖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혹시 엿장수 고물 속에서 나온 신발이 아니었을까?
그 녀석의 말소리는 늘 코맹맹이 소리였다. 그 당시는 축농증이 뭔지 몰랐지만 유난히 코를 많이 쏟아냈던 것을 보면 분명 콧병이 맞는 것 같다. 천수 동생 근수는 내 동생 반이다. 그 아이는 그래도 꽤 똘똘하다. 반 애들과도 잘 어울리고 우리 집에도 가끔 놀러오기도 했는데 지극히 정상적인 또래 아이다. 천수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짠했다. 자기 내면의 세계에 갇혀서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저 아이가 속히 우리와 함께 깔깔 거리며 어울리는 친구가 되길 간절히 바랬다.
어느 날 하굣길에 난 큰 용기를 내어 천수 집에 들렀다. 마당가에 들어서자 천수 아버지 리어카가 눈에 띄었다. 리어카 위 칸에 엿판이 보이고 엿판 밑에 고물 나부랭이들이 널 부러져 있었다. 집은 다 쓰러져가는 넝마주의 집 같았고, 안방에 천수 아버지가 대낮부터 주전자에다 막걸리를 받아와 마시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천수 엄마인 듯 보이는 여인이 부엌에서 나오는데 행색이 천수와 같았다. 한눈에 봐도 제 몸 하나 돌보지 못하는 여자임에 틀림없었다.
한쪽 헛간은 천수 아버지가 엿을 만드는 곳이었는데 정말 지저분했다. 천수 앞에서 반 애들이 엿 만드는 흉내를 내며 놀릴 때 보니까 손바닥에다 침을 퉤퉤 뱉으며 새끼 꼬는 시늉을 하던 생각이 문득 나서 천수네 엿은 절대 사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천수가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난 천수에게 학용품도 나눠주고, 먹을 것이 생기면 챙겨주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천수와 난 많이 친해졌다. 사람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않던 그 아이가 어느 날 날 똑바로 쳐다보며 웃는데 얼굴이 그렇게 화사할 수가 없었다. 또 이빨이 아주 가지런하고 하얀 것이 너무 예뻤다. 천수도 웃을 줄 아는 아이였다. 천수를 저 슬픔 속으로 밀어 넣은 원인은 대체 뭘까? 뭣 때문에 자기를 속에다 꽁꽁 가둬두고 내 놓지 않는 걸까?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여름날. 그날따라 아침부터 천둥번개가 얼마나 쳐 대는지 결국 오후부터 소나기가 장대같이 내리 퍼부었다. 그런데 그날 천수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왜 천수가 결석했지? 비록 그런 결함이 있을지라도 결석을 한 적이 없었다. 5교시를 막 시작하려는데 교무실에 가셨던 담임선생님이 헐레벌떡 들어오시더니 “애들아! 천수가 파리약을 먹고 자살을 했대. 도립병원으로 옮겼는데 벌써 죽었더래.” 선생님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온 교실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해 졌고 천수 놀리는 재미로 살던 친구들의 입에 자물쇠가 굳게 채워졌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며 우는 아이들이 하나둘 생기더니 이내 교실 안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천수 집 길 건너엔 작은 구멍가게 하나가 있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 등하굣길에 들러서 군것질 거리 사먹는 유일한 아지트였다. 그날 천수가 그만 그 가게에서 과자를 훔쳐 먹다 들켜서 사달이 났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그 약해빠지고 어리바리한 천수를 죽도록 두들겨 팼던 것이다. 여느 부모들처럼 매를 댄 후에 바로 사랑으로 싸매주는 치료책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 아비는 홧김에 술을 잔뜩 마시고 곯아 떨어졌으니 천수가 선택할 길은 오직하나!
엿의 달콤한 냄새 때문에 온 동네 파리가 다 몰려오자 엿 만드는 공장은 그야말로 파리 천국이었다. 그래서 그 아비가 군데군데 파리약을 놨던 것을 천수가 기억하고 말았다.
제 부모도 알지 못한 아픔을 간직한 내 친구 천수! 13년이란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 순하디 순한 녀석이 자신을 얼마나 비관했을까? 더군다나 급우들의 놀림이 그리 심했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그날 이후 우리 반 교실에선 ‘엿 장사 똥구멍 찐덕찐덕’, ‘고물 팔아요’, ‘빈병이나 찌그러진 냄비 팔아요’라며 놀려대는 소리가 두 번 다시 들리지 않았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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