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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5]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5]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07월 21일(화) 13:54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조선에 와서 1년이 넘도록 혼자서 환자를 치료하던 로제타는 1891년 10월 생일날, 꿈같은 편지를 받았다. 약혼자 제임스가 중국 선교사로 가려던 계획이 변경되어 조선의 의료선교사로 임명 받았고 연말에 조선으로 온다는 편지였다. 지금까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기쁘고 기념이 될 생일인 것 같았다. 로제타는 가슴이 벅차 말로는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아! 하나님, 사랑하는 제임스와 함께 조선을 위해 일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로제타는 약혼자 제임스가 도착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1891년 12월 15일, 닥터 제임스 홀이 탄 배가 부산에 도착하였다. 제임스는 부산 세관의 전용의사인 캐나다인 닥터 로버트 하디(훗날 원산에서 선교사를 하며 1901년 현재의 간성감리교회를 창립함)의 마중을 받았다. 배편을 구해 부산에서 제물포로 왔다. 그런데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가는 교통편을 수소문 했으나 조랑말 한 마리밖에 구할 수 없다며 존스 하버 목사님이 난감하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괜찮습니다. 육척장신인 제가 조랑말을 타면 발이 땅에 닿을 것 같으니 걸어서 서울까지 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임스의 유쾌한 말에 존스 목사님은 그가 결단력이 있는 젊은 의사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환영의 자리에서 만난 제임스와 로제타는 멀리서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환영회가 끝난 후 그들은 껴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로제타 내가 당신 곁에 왔소.”
로제타는 비로소 닥터 홀과 약혼한 사이라는 것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기뻐하며 축하해 주는 사람도 있고 깜짝 놀라며 여성해외선교회의 입장에서는 손실이 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선교사의 결혼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로제타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결혼을 하더라고 의사로서, 선교사로서 맡은 일에 충실할 거예요.”
닥터 홀이 서울에 온 다음날, 로제타는 홀에게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을 보여주었다. 약혼자에게 병원을 구경시키는 로제타의 표정이 너무나 밝고 행복해 보여 주변 사람들을 그녀가 다른 사람 같다고 했다.
닥터 홀은 얼른 결혼 날짜를 정하고 싶었다. 새로운 선교사업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도 안정된 생활이 필요했다. 그러나 신혼살림을 할 집도 준비되지 않았고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추어 있질 않았다. 그런데 내년 여름,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안식년 휴가를 얻어 미국에 가게 될 것을 알았다.
‘결혼하고 임지가 정해 질 때까지 당분간 그 분들의 집을 빌려 쓰면 안 될까?’
사정을 이야기 하였더니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는 쾌히 승낙 해 주었다. 아펜젤러 목사님이 살던 집을 잠시 빌려 신혼생활을 하다가 임지가 결정되면 떠나기로 마음을 모았다.
어렵게 내린 결혼 결정이지만 로제타를 걱정스럽게 하는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선교사 5년 계약기간 동안 결혼 할 수 없는 약속을 어기게 된 일이다. 뉴욕 여성해외선교회에 편지를 썼다. 많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고 결혼을 해서 남편과 함께 의료선교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을 써서 보냈다.
그러나 답신은 냉담했다. 계약기간을 지키지 않은 것에 큰 실망을 표시 했고 조선까지의 여행경비를 반납해야 한다는 답신이 왔다. 로제타는 낙심했다. 결혼을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알렸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여비를 반납할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생각해 보았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여비 반납은 후에 돈을 모아 하기로 하였다.
닥터 홀은 선교회의 지시대로 새로운 선교기지를 찾기 위해서 북쪽으로 오지탐사를 떠나기로 했다. 조선에 온지 서너 달 지난 1892년 3월 초순이었다.

춥고 바람이 센 어느 날 벵겔 양의 약혼자 존스목사와 닥터 홀, 두 선교사는 길을 떠났다. 그들은 서울에서 북쪽으로 560킬로미터 떨어진 만주의 접경지역인 의주까지는 함께 선교지 개척여행을 하고, 거기에서 서로 헤어져 존스는 북쪽의 산악지방을 더 살펴보고 닥터 홀은 평양을 살펴본 후 서울로 돌아올 계획을 세웠다.
짐이 있어 많이 가지 못하고 첫날은 11킬로미터를 걸은 후 날이 어두워 겨우 여인숙을 찾았지만 방이 얼마나 작은지 홀이 누워서 다리를 뻗으면 발이 문밖으로 나갔다.
다음날은 비가 내려 진흙길에 빠져가며 서울에서 25킬로 떨어진 고양에 도착하여 잠시 의료선교를 시작하였다. 외국인 의사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환자들이 몰려왔다. 닥터 홀이 조선에서 첫 번째 의료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함께 동행 한 존스목사는 다녀와서 이런 글을 남겼다.
“닥터 홀에게서 나는 진정한 선교사 정신을 보았다.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료해 준다는 그자체가 그에게는 대단한 기쁨인 것 같았다. 고단한 여정 속에서도 환자를 대하는 그의 얼굴은 항상 편안하고 밝았다.”
통산을 지나 대동강 변에 있는 큰 평야에 도착했다. 강한 바람과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심한 고생을 했다. 얼굴이나 손등, 노출 된 부분은 살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온 몸이 얼어서 마비가 되었지만 동사하지 않으려고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50킬로 정도를 고투하며 걸었을 때 드디어 대동강 둑이 보였다.
“아, 이제 살았다!”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대동강 물은 60센티 두께로 얼어 있었다. 얼음 카펫을 밟고 강을 건너 평양시내로 들어갔다. 닥터 홀은 젊은 나이에 자기 생명을 바칠 이 도시 ‘평양’에 첫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닥터 홀에게 이 여행이 힘들었던 것은 추위나 위험 같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었다. 그 보다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약혼녀 로제타와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더 괴로웠다. 결혼 할 날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마음을 편지로 써 보내곤 하였다.
존스목사와 약혼한 영어교사 벵겔과 로제타는 두 약혼자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자 않자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자신들의 약혼자들이 “기독교를 포교하면 목을 자른다”는 금령대로 붙잡혀 처형당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얼른 걱정을 떨쳐버리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로제타는 많은 환자들을 돌보고 여의사만 찾는 왕진을 다니다 보니 홀에 대한 걱정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닥터 홀이 떠난 지 6주가 지난 어느 날, 로제타는 아펜젤러 목사가 건네준 전보를 받고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닥터 홀, 일주일 후, 서울 도착함.”
존스 목사는 선교 할 곳을 좀 더 살펴보고 3주 후에 도착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두 약혼녀는 위험한 산골 오지로 약혼자들을 선교개척 탐방 여행을 보내고도 꽤나 기품 있게 잘 참았다며 두 손을 마주 잡고 활짝 웃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닥터 홀은 용기백배해 있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조선 사람들에게 친절한 대접을 받았고 흥미 있는 경험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평양이 최적의 선교지라고 해외선교부에 문서로 보고 하였다. 평양은 서울과 북경을 연결하는 도로 선상에 위치하여 육로나 해상 교통사정도 용이하다. 또한 찬란한 역사의 도시이고, 인구 10만 정도로 주민들이 성격이 적극적이라 번성할 여지가 있는 도시라고 보고 했다.
닥터 홀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은 나중에 증명이 되었다. 그 후 평양은 감리교와 장로교의 세계적인 선교 성공지로 평가 되었다.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이 태어났고 기독교 계통의 대학과 병원이 설립되었다.
이렇게 차근차근 선교 임지를 준비하던 어느 날, 드디어 닥터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와의 결혼 날짜가 정해졌다.
‘아, 드디어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는 구나!’
로제타는 기쁘기도 했지만 결혼식을 준비를 하며 이런 저런 풍습의 장벽으로 인한 어려운 일들을 접하게 되어 잠이 오질 않았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이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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