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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6]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6]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07월 21일(화) 14:1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닥터 홀과 로제타의 결혼은 사실상 조선에서는 처음 있는 국제 결혼식이었다. 신랑은 캐나다인, 신부는 미국인, 주최국은 조선이다. 바로 한 달 전에 미국에서 안식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스크랜턴 목사 부부는 신랑 신부에게 큰 힘이 되었다. 스크랜턴 여사는 인격이 후덕하여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다. 많은 사람에게 어머니같이 푸근하게 대하여 조선 사람들은 그녀를 대부인이라고 불렀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조선 사람들까지도 이 결혼식에 환성을 올렸다.
“아, 의사 선생님, 결혼식을 축하드립니다. 이제야 정말 어른이 되시는군요!”
조선인들은 나이 든 여성이 독신으로 있는 것을 흉으로 여기기 때문에 여의사가 결혼하여 여자로서 정상인이 된 것을 아주 기뻐하였다.
그런데 결혼식 준비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이상한 서양식 결혼에 당황하였다. 신부는 결혼 전에 신랑을 볼 수 없는데 신랑감을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있다니 놀랐다. 또한, 시댁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데 시어머니도 가까이 없고, 게다가 신부의 결혼식 예복으로 준비한 옷이 흰색인 걸 보고는 대경실색을 하였다.
“신부는 반드시 색깔 있는 밝은 옷을 입어야 하는데 상중에나 입는 흰옷을 입다니…….”
풍습의 차이기는 하지만 당시 조선 사람들은 결혼식 날 흰색 옷을 입으면 신부에게 불행이 찾아온다고 믿고 있었다.
조선인은 모든 풍습이 서양과 반대인 것 같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양 사람들은 오른 편으로 비켜서지만 조선인들은 왼쪽으로 비켜선다. 상대방과 인사할 때 서양인은 상대방의 손을 잡고 악수하며 인사하지만, 조선인은 자기 손을 맞잡고 인사한다. 상을 당하였을 때 서양은 검은색 모자를 쓰는데 조선은 흰 모자를 쓴다. 글을 읽거나 쓸 때 서양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나가는데 조선인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방향을 이야기할 때는 서양은 ‘북동남서’ 순으로 말하는데 조선은 ‘동서남북’ 순으로 말한다.

이렇게 관습적 차이가 있으니 결혼 예복 색깔까지도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로제타는 자신의 결혼 예복 드레스는 본인 취향대로 스스로 만들어 입고 싶었다. 재단사에게 맡겨 신부복을 만들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벵겔 양과 간호사 루이스가 심하게 아팠다. 병에 걸린 그들을 밤낮으로 돌보느라 로제타는 결혼식을 못 올릴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두 환자는 그녀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장미꽃이 아름답게 피는 계절에 두 사람의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예식장은 스크랜턴 여사의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정원에는 3개국의 국기가 게양되었다. 두 사람의 국적이 달라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오전에는 캐나다 영국 영사 앞에서, 오후에는 미국 영사 앞에 가서 간단히 식을 올렸다.
정오가 되자 정식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스크랜턴 여사의 정원에서 캐나다 온타리오주 클렌뷰엘 출신의 닥터 월리엄 제임스 군과 미국 뉴욕 출신인 닥터 로제타 셔우드 양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주례는 올링거 목사님이었고 30여 명의 축하객들이 왔다. 미국의 대리 총영사 알렌도 축하객으로 왔다. 닥터 알렌은 조선 왕자의 상처를 봉합해서 낫게 해준 의술 때문에 국왕의 신뢰를 받았고 조선이 서방 국가들과의 문호를 여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아, 멋있어요. 신랑도 잘생기고 신부도 너무 아름답네요!”
처음 보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보고 조선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탄성을 보내며 축하해 주었다. 식이 끝난 후 스크랜턴댁에서 피로연을 열었다. 중국인 요리사가 큰 케이크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고 조선의 궁전 악대가 축하 연주를 했다. 조선 최초의 서양인 결혼식을 모두 기쁘게 축하해 주었다. 조선의 풍습에 따라 모인 하객들과 문밖에 구걸하러 온 걸인들에게까지 돈(엽전)을 나누어 주었다. 엽전 하나의 가치는 1센트의 10분의 1 정도였다.
결혼식을 마친 두 사람은 그동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렇게 가정을 이루게 된 일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비로소 안정된 행복을 느끼며 집 가까운 곳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홀 내외는 안식년 휴가를 떠난 아펜젤러의 빈집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신혼이었지만 낯선 땅에 와서 외롭게 생활하는 독신 선교사들을 자주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닥터 홀은 감리교 연례회의에서 평양에 선교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며 다시 보고서를 제출했다. 새 의사를 평양으로 한 명 더 보내주면 자신의 봉급 절반을 내어놓아 그 의사의 봉급에 보태겠다고 하였다. 연례회의에서 새 의사를 보내 주겠다고 하였다.

서너 달 후, 드디어 닥터 홀은 평양 선교지의 개척자로 임명되었다. 셔우드 홀 부인은 서울 여성 병원에서 계속 근무하도록 하였다. 닥터 홀은 가장 추운 겨울과 우기의 몇 달을 제외하고는 평양에서 근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당시 북쪽 내륙 지방에서는 아직도 지방의 법으로 외국인이 거주할 수 없다는 금령이 발효 중이었다. 또한 기독교 포교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이 엄연히 존재할 때였다. 닥터 홀에게 주어진 임무는 매우 위험한 것이지만 낯선 땅에 처음 가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일을 수행하는 데는 의사가 가장 적격이라고 선교위원회에서도 생각했다.
닥터 홀은 결혼한 지 서너 달밖에 안 되는 신부를 혼자 서울에 남기고 언제 돌아올지도 예측할 수 없이 평양으로 길을 떠났다.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안쓰러웠지만 주님의 일을 한시라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새신랑이 혼자 평양으로 간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로제타는 어느 날 일기장에 이런 글을 썼다.
“그가 오랫동안 기약 없이 내 곁을 떠나 있으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낮에는 환자 진료로 바빠서 그다지 슬플 겨를도 없지만 밤에 혼자 있으면 마음을 아무리 담대히 가지려 해도 눈물이 난다. 누가 남편의 이야기를 하면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날마다 우리의 사랑은 더 강해지지만 이별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오늘 주일예배를 드리고 위로를 받았다. 이제는 울지 않는다. 오늘 밤에는 혼자 있어도 마음에 평안이 온다. 확실히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보살핌은 크시다.”

새 신부가 혼자서 신랑을 그리며 안절부절못하던 어느 날 편지가 왔다. 평양 선교기지의 개척이 생각보다는 순조롭다고 하였다. 평양 관청 행정관의 아들이 병에 걸렸는데 닥터 홀이 치료해 주어 완쾌되었고 그 후로는 행정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을 살려 주어 고맙다며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서른다섯 칸 자신의 한옥에서 가장 좋은 방 두 칸을 숙소로 주었다고 한다. 같이 간 그레이엄 리 선교사도 함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 집은 도시 한복판에 있어서 병원과 전도소로 쓰기에 적합해서 비슷한 조건의 집을 알아봐 달라고 하였다. 집주인은 자신은 다른 곳에 터가 있으니 집을 지으면 된다며 자식을 살려 주신 분인데 자기 집을 싼 가격에 드리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병원을 살 자금을 모으는 중이고 우리 부부가 평양의 병원에서 내년부터는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니 힘들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아, 감사합니다!’
로제타는 편지를 읽으며 가슴이 뛰었다. 어려운 평양 의료선교의 길이 조금씩 열림에 감사드렸고 추진력 있는 남편이 하루속히 보고 싶어졌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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