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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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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11] / 삽화 윤광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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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04일(화) 03:56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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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평양 감사는 왕비의 친척으로 조선의 세도가이다. 그는 거만했고 어떻게 해서든지 닥터 홀 가족을 평양에서 쫓아내려 했다. 감사 부하는 로제타가 혼자 있는 집에 한문으로 쓴 종이를 가져 왔다. 조선 관리들은 이집에서 홀 가족들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로제타는 종이에 가족을 쫓아내는 글이 적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한문을 읽을 줄 모르니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들은 문서를 대문에 붙여 놓고 갔다. 닥터 홀의 조선인 친구가 그 문서를 번역해 주었다.
“이 집은 전 주인에게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 전주인은 이 집을 반납 받으라. 그리고 환자들만 그 집에 들어 갈 수 있게 하라.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금한다. 특히 천주교와 기독교는 해악이 되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로 설교를 듣지 못한다.”
문서에는 관인이 세 개나 찍혀 있었는데 겁을 주려고 한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오후에 닥터 스크랜턴으로부터 공사관에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전보가 왔다. 닥터 홀은 감사가 면회, 청원을 거절하고 집을 반납하라는 명령을 했다고 다시 전보를 쳤다. 급할 때 서울과 소식을 전하는 전신소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저녁 무렵 총영사 가드너로부터 답신 전보가 왔다.
“조선의 외무성에게 조선 하인들을 석방하라는 지시를 요청하고 당신과 가족들의 신변 보호도 부탁했음.”
전보를 받고 잠시 마음을 놓고 있는데 대문을 박차고 김 씨라는 군졸이 또 들어 왔다. 그는 지난 번 조선어 선생 노 씨를 난폭하게 때린 군졸이었다. 벽에 붙여 놓았던 문서를 도로 달라는 것이다. 큰소리를 치고 난동을 부려 자고 있던 아기 셔우드가 잠이 깨서 울었다. 그 소동에 에스더의 남편 박유산이 마당에 나왔는데 갑자기 군졸은 박유산의 상투를 손으로 잡고 몸을 발로 차고 심하게 때리며 미친 듯 난동을 부렸다. 닥터 홀이 종이문서를 돌려주겠다고 하자 매를 멈추었다. 결국 그 종이를 받고 군졸은 돌아갔다. 닥터 홀은 기진맥진하였다.
오후에 모펫 목사로부터 위로의 전보가 왔다. 그 전보에는 여호수아 1장 9절 성경 말씀만 적혀 있었다. “내가 너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고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전보에 적힌 말씀에 위로를 받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창문으로 돌멩이가 날아 들어왔다. 창문에 커텐을 쳐 놓아 창이 열린 것을 몰랐다. 누군가 밖에서 돌멩이를 방을 향해 던져 창 앞에 놓인 항아리가 깨졌다. 모두들 놀라서 달려 왔고 로제타는 실비아에게 얼른 아기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창문을 닫은 후 두터운 이불로 창문을 막고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불안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감사가 보낸 심부름꾼 김 씨가 또 왔다. 국왕이 모든 기독교 신자들을 오늘 참형에 처하라고 평양 감사에게 명령을 했다는 것이다. 닥터 홀은 그의 눈빛을 보고 그 말이 거짓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창식을 절도범 감방에서 사형수 감방으로 옮기고 목에 칼을 또 씌워 놓았기 때문에 사태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닥터 홀이 김창식을 다시 면회하러 갔을 때 그는 용기를 잃고 모든 것을 포기 한 것 같았다. 닥터 홀은 눈물이 났다. 군졸들은 그를 계속 심하게 매질하고 사형에 처한다고 위협했다. 닥터 홀도 김창식이 석방되기 전에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울었다.
김창식은 오 씨나 한 씨보다 더 심한 고문과 형벌을 받고 있었다. 그 이유는 석방시켜 주면 또 예수를 전도하겠느냐고 무었을 때 “예수님은 좋으신 분이요. 슬프고 절망하고 병든 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러 이 땅에 오신 분이요. 나는 석방되어도 예수를 전하겠소.”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 그는 조선의 바울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시고 석방해 주시길 기도하며 전신소로 뛰어가 김창식이 사형수 감방으로 이감된 사실을 전보로 보냈다.
닥터 홀은 그를 따라 평양에 온 사람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나 오늘 아침 그의 얼굴에는 기진맥진하고 낙망하는 표정이 보였다. 예수를 전도한 죄로 그 성실한 김창식과 한 씨가 오늘 사형을 당한다는 말이 계속 나돌고 있었다. 서울에서 함께 온 조선인들도 풀이 죽어 평양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닥터 홀은 기도 하였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뜻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 착한 조선 친구들은 살려 주십시오. 이 땅에서 28년 전, 수백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을 위해 생명을 바친 슬픈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믿음의 형제들이 다시 그 같은 일을 겪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듯 합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닥터 홀은 통곡하며 기도하였다. 그날 정오에 가드 영사로부터 전보가 도착하였다.
“어젯밤 11시 조선 정부 외무부에서 닥터 홀의 모든 고용인들과 기독교 신자들을 석방하라는 명령을 전신으로 평양에 발송했음.”
그래도 평양 감사는 왕비의 친척이라고 배짱을 부리며 그 전보를 실행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오는 식수 공급도 끊었다. 이 사실을 다시 알리자 외무부와 영국 영사가 회동하여 감사에게 급전을 쳤다.
“즉시 수감자를 석방하고 석방여부 보고 바람. 만일 석방하지 않으면 책임 추궁이 있을 것임.”
닥터 홀이 전신소에 가고 없는 사이에 행정 사법관이 감금한 모든 사람들을 끌어내어 집결 시키라고 하였다. 에스더와 실비아는 “어쩌나, 이제 우리 형제들이 사형을 당하게 되나 보다” 하며 얼굴이 흑빛이 되어 울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로제타는 수감자들을 석방하려는 좋은 소식일거라고 말했다.
로제타의 예감대로 저녁 무렵 그들은 석방되었다. 전신소에서 달려온 닥터 홀은 기뻐 할 사이도 없이 위중한 그들을 서둘러 치료실로 옮기고 응급처치를 하였다.
모두 극도로 지쳐서 몸은 축 늘어지고 덜덜 떨면서 고통스러워하였다. 그들 중 김창식의 상처가 제일 심했다. 그는 집으로 오면서도 계속 돌멩이를 맞았다고 했다. 한밤중이 되자 김창식은 차도를 보이며 정신을 차렸다. 몸이 차츰 회복 되자 그는 더듬더듬 말하였다.
사법관이 수감자들을 석방하면서 나가서 절대로 예수님을 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수감자들은 죽음을 면하는 길은 그 말에 응해 주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랫동안 고문으로 심신이 약해져 있었고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사법관의 요구에 응하겠다고 하였으나 김창식은 그 요구를 거절하였다. 자신은 평생 기독교 신자로 살며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와 소망을 주는 좋으신 예수님을 전하겠다고 하였다. 사법관은 계속 예수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라고 명령했으나 김창식은 못하겠다고 거절하였다.
사법관은 상부의 명령을 무시 할 수 없어 김창식을 석방시키긴 했지만 거리의 소년들에게 김창식을 돌로 쳐 죽이라고 말해 집에 도착할 때까지 돌멩이를 맞고 왔다는 것이었다. 닥터 홀은 김창식이 그 지경에서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다고 생각하며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을 조심스레 감싸 안으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닥터 홀은 김창식의 발아래 꿇어 엎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선에서 예수를 위해 고난 받은 참 신앙인을 보게 된, 이 일 하나 만으로도 그는 엄청난 은혜와 용기를 얻었다. (김창식은 후에 목사가 되었고, 1904년 조선 최초의 감리교 구역장이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조선의 선교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의 모든 해외선교사들이 업무를 다 제쳐두고 서울에 모여 그들의 석방을 위해 합심해 기도하였다고 한다. 각자 이 위기가 자신들과 깊이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선교사들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 “모두 석방되었음. 김창식 심한 상처를 입었음.”이라는 전보를 받았다고 한다.
선교사들은 닥터 홀 내외가 평양에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깊고도 엄숙한 사실을 실감하였다. 이제 새로운 장이 펼쳐진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다시 그 같은 장애와 박해는 없을 것이다. 오랜 시련이 비로소 막이 내렸다고 생각하였으나 아직도 어려움은 도처에 남아 있었다.
닥터 스크랜턴과 모펫 목사가 모진 고문을 당한 그들을 위로 해주고 상황을 보려고 평양에 왔다. 아직도 위험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음을 알고 닥터 스크랜턴은 로제타와 아기 셔우드를 서울로 다시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로제타는 서울로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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