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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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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12] / 삽화 윤광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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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04일(화) 14:35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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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로제타, 아직은 평양의 형편이 어려우니 당분간 서울에 가서 있구려!”
닥터 홀은 아내 로제타에게 평양생활이 힘들면 아기 셔우드를 데리고 서울에 가서 스크랜턴 부인과 함께 있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로제타는 떠나지 않았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견뎠고 이제 환자를 진료 할 수도 있게 되었는데 왜 가겠어요.”
닥터 홀은 로제타가 평양에 있는 것을 더 편안해 한다고 스크랜턴 부인에게 전보를 쳤다.
어려운 박해가 지나가자 닥터 홀 부부는 성문 옆에 있는 또 한 채의 한옥을 빌려서 여러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평양에 와서 비로소 의사로서의 행복감을 맛보게 되었다. 방 하나는 닥터 홀이, 방 둘은 로제타가 대기실과 진료소로 썼다. 로제타는 수술 환자도 있어서 더 넓은 진료 공간이 필요했다.
간호를 돕는 에스더는 로제타와 함께 가마를 타고 진료소에 출근하였다. 첫날은 환자 10명을 치료하고 치료비로 엽전 500개를 받았다. 환자들이 질서 있게 기다리게 하는 일과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치료한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데 많은 힘이 들었다.
평양에서 닥터 홀이 처음 전도한 사람은 오석형이다. 그는 지난번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앞을 못 보는 어린 딸이 있었다. 로제타의 환자 중에는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들이 많았고 그들은 매우 처참한 상태에 있었다. 장님은 무당이나 점쟁이가 될 수 있는데 그것도 부모가 돈이 있어서 무속 훈련시킬 수 있는 처지가 되어야 가능했다. 대부분 그들은 소외 되어 잘 먹지도 못했고 결국은 걸어 다닐 수 없는 허약한 몸이 되기도 하였다.
로제타는 눈먼 소녀들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조선인들이 그녀의 의도를 곡해 할까봐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하며 1888년에 파급되었던 서양의사가 사람을 죽이고 뼈를 사용한다는 유언비어처럼 “서양 의사들이 약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의 눈을 뽑았다”는 식의 끔찍한 모함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제타는 오 씨의 딸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속으로 기뻤다.
‘아! 이곳에서 눈먼 사람들을 위해 일을 시작할 기회가 비로소 오는구나. 오 씨는 기독교인이니 내 의도를 곡해하지 않겠지…….’
오 씨의 딸 오봉래를 가르치기 위해 점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선 기름종이에 바늘로 점을 찍어서 일종의 점자 비슷한 것을 고안하였다.
봉래는 총명하고 열성이 있는 아이였다. 또한 점자에 대해서 좋은 반응을 보였다. 맹인을 교육시킬 수 있는 전문지식이 있으면 봉래에게 점자를 쉽게 읽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로제타는 이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를 하기로 했다. 장님들은 이 세상에 쓸모없다는 세간을 그릇된 관념을 깨고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 위해서도 맹인교육이 시급하였다.
평양의 상황은 차츰 안정되는 것 같았으나 나라의 사정은 동학농민 봉기가 종결 되지 않아 어수선하였다. 아기 셔우드와 홀 부인은 장 질환을 앓았고 닥터 홀도 평양의 기온이 서울보다 낮아서인지 계속 기침을 하였다. 그들은 건강 유지를 위해 성 밖을 자주 산책하였다. 날씨가 좋은 날은 북쪽으로 1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기자의 묘’까지 소풍을 갔다. 로제타는 구경꾼들을 피하기 위해 가마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서 닥터 홀 조선인 친구들의 안내를 받아 산책을 하였다.
그 해 5월 영국 총영사 가드너의 강경한 명령이 떨어졌다. 당분간 닥터 홀 가족들이 서울에 와서 일할 것을 명령했다. 평양의 상황이 그리 호전 되지 않으니 서울에 와서 있다가 다시 평양에 가서 의료선교를 하라는 문서를 스크랜턴을 통해 보내왔다. 닥터 홀은 가드너 영사의 명령을 거역 할 수가 없었다. 평양을 교인들에게 부탁하고 홀 가족은 박유산 내외, 아기를 돌봐 주는 실비아와 함께 ‘청룡’ 이라는 기선을 타고 27시간 만에 제물포에 도착하였다.
동학군들은 작년에 이어 다시 남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농민들의 지원을 받아 “학정을 없애라!,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을 나라에서 몰아내라!” 고 외치며 전국으로 그 기세를 확장시켜 공주 감영까지 불태우고 정부의 진압군을 패주시켰다.
불안해진 조선국왕은 청국에 원조를 간청하였다. 청국은 일본과 맺은 텐진조약(청일 양국은 조선에서 철수하고, 조선에 파병을 할 경우 사전 통보함)을 무시하고 일본에 아무 통고도 하지 않고 조선에 파병을 하였다. 그러자 일본도 조선을 돕는 다는 구실로 역시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였다. 후에 이 사건은 청일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단서가 되었다.
미국인 공사관에서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미국인 가족을 보호차원에서 서울의 외국인 주거지역으로 소환하였다. 홀 부부는 수많은 일본군들이 서울로 들어와 주변 언덕에 주둔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청나라 군대들도 서해안에 상륙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떤 이들은 청국과 일본이 선전 포고를 했다고 하였다.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돌아갈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조선의 앞날이 풍전등화 같아 불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다.
1894년 7월 23일 새벽, 홀 가족은 요란한 총소리에 잠이 깼다. 일본인들이 서울의 7개 성문을 장악하고 궁궐도 일본의 손에 들어갔다. 놀란 주민들은 서울을 빠져 나가느라 장사진을 이루었다.
감리교 선교위원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은 어느새 군대병원이 되었다. 전투에서 부상당한 군사들이 몰려오고 전쟁의 처참함이 현실로 다가왔다. 닥터 홀은 전심을 다해 환자들을 보살 폈다.
닥터스크랜턴은 그 여름 닥터 홀의 의료 활동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지금 닥터 홀은 의사, 간호사, 약제사, 안내역까지 1인 4역을 하며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그는 환자를 돌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의사다. 대개의 사람들은 복잡한 일을 할 때면 혼동을 하는데 그는 지칠 줄 모르게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확하다. 어느 날 진찰실이 환자로 가득 차 정신이 없을 때 그가 하던 말이 나는 잊히지가 않는다.
“나는 이 일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한 평생 이렇게 환자를 치료하며 아픈 사람들을 도우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닥터 홀은 환자들을 치료할 때 사랑과 친절한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친절함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무기임을 터득한 사람이다. 그 비결은 현실에서 기적을 낫듯 치료하는 환자마다 완치의 효과를 보았다.”
농민들까지 가세하여 한 때는11만 명까지 동원 되었던 동학군은 청국과 일본군의 우수한 근대식 무기와 장비로 훈련받은 군인의 공격을 받아 패전하였다. 동학운동의 우두머리 전봉준을 비롯한 몇 사람이 처형 되었으며 그들의 추종자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았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난리는 청국과 일본이 서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구실이 되었다. 두 나라는 서로 조선을 통치하려고 이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그 즈음 꼬마 셔우드가 서울에서 첫돌을 맞았다. 한국에서는 첫 번째 생일을 첫돌이라 부르며 매우 중요한 날로 여겼다. 첫 생일은 아이의 장래가 결정되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 닥터 홀은 몰려오는 전쟁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평양에서 오지 못하였다. 아빠도 참석하지 못한 돌잔치를 주변 사람들이 차려 주었다. 셔우드의 첫돌잔치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초대 되었다.
조선의 풍속대로 아이가 장래 직업을 선택하는 장면이 연출 되었다. 직업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고 아이가 어떤 것을 잡을 것인지 모두들 흥미롭고 조심스럽게 보고 있었다. 종이로 만든 인형, 두툼한 동화책, 성경책, 장난감 괭이, 엽전, 장난감, 청진기 등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셔우드는 다른 물건은 다 제쳐두고 조그만 손으로 청진기의 고무호수를 잡았다.
“와! 잘 잡았네!”
축하객들은 잘 되었다고 박수를 치며 웃었다. 서양 풍속대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케이크의 촛불을 껐다. 모두들 “해피 버스데이”를 부르며 셔우드의 첫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셔우드가 청진기 호스를 잡았을 때 홀 부인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는 아들의 돌잔치도 참석하지 못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홀 부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제임스, 돌잔치에 온 사람들이 셔우드도 장래 우리 같은 의사가 될 거라고 하네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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