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교육일반문화.스포츠이진수의 이 한장의 사진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김하인 연재소설류경렬의 경전이야기가라홀시단학교탐방어린이집 탐방고성을 빛낸 호국인물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검색

전체기사

교육일반

문화.스포츠

이진수의 이 한장의 사진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

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

김하인 연재소설

류경렬의 경전이야기

가라홀시단

학교탐방

어린이집 탐방

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교육/문화 >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숲에서 숲으로 [45] 마지막 회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20년 08월 04일(화) 10:21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한번도 탄 적 없는 동해북부선 철길은 빛바랜 사진 속 얼굴처럼 아련했다. 근래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주 명파리를 찾았다. 명파초등학교 아니 명파분교에 들렀다가 명파 마을을 지나는 철길을 확. 포장하는 장면을 목격하였고, 지난해는 2017년부터 시작된 어느 걷기행사에 참여하여 금강산전망대에부터 명파리를 걸어서 지났다. 세 번째였다. 틈이 나면 배봉리, 마달리, 화곡리, 마차진리 등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평화지역이라고 고쳐 부르지만 내게는 여전히 ‘접경지역’이며 민통선인 고성 최북단 마을의 역사에 관심이 집중된 까닭이었다.
마을에서 율구라고 부르는 해당화 열매가 어느새 푸릇푸릇 영글어가고 있었다. 초겨울까지 꽃이 피고 지는 해당화는 냇둑과 길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예전 마을 어른들은 ‘소갈병’이라고 부르는 당뇨병에 효험이 있다고 여겨 뿌리를 마구잡이로 캐 달여서 마시고는 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서 꽃들은 저 홀로 피고 지면서 열매를 오종종히 맺고 있었다. 해당화는 장미과로 향기는 멀리까지 끼쳐 냇둑을 걸을 때면 자연스레 걸음이 가벼워지곤 했다. 원산 명사십리 해당화만 유명한 게 아니었다. 화진포 해변에도 한때는 해당화가 떼판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히 볼 수 없었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원재료가 중국 원산인 스타 아니스라는 식물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내게는 여전히 미욱해 보이는 빛깔이었지만 숲은 빠른 속도로 초록으로 짙어가고 있었고, 이제 꽃 피는 봄철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눈길은 가끔 뒤를 돌아다보았다. 동해북부선 현내역 터 근처에 있는 기차 굴을 다시 찾았다. 얼마 전에 배봉터널 근처를 어정거리다 돌아선 뒤였다. 고성군에 있는 동해북부선 터널들은 대체로 마을과 마을의 경계인 야트막한 산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가진터널이라고 부르는 기차 굴은 공현진리와 가진리 경계에 있는 것처럼. 그리하여 공현진에 사는 이들은 공현진터널이라고 부르고 가진리에 사는 이들은 가진터널 또는 덕포(덕푸)터널이라고 불렀다.
현내면에 있는 현내터널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진리에 사는 이들은 대진터널이라고 하고 마차진리에 사는 이들은 마차진터널이라고 불렀다. 이 또한 대진리와 마차진리를 경계를 통과하기 때문이었다. 이른 봄에도 찾았던 현내터널을 다시 찾은 것은 가진터널을 덕포굴 또는 덕푸굴이라고 부른다는 소식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어떤 사진 한 장 때문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9년 함경남도 안변과 강원도 흡곡 사이를 연결하는 철길이 개통된 뒤로 1937년 강원도 양양까지 개통되었다. 동해중부선과 남부선을 이어서 부산까지 연장시키려던 계획은 해방과 전쟁 등으로 인하여 중단되었다. 그러므로 최종적인 동해선 완공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았다.
현내터널로 다가가려면 포장된 옛 철길을 걸어가는데 주변엔 새로 동해대로 도로가 나면서 높다랗게 옹벽이 생겼고 또 다른 곳은 논밭과 펜션이 뒤섞여 있었다. 메숲진 수풀 사이에 분홍색 메꽃과 노란색의 좁쌀풀이 드문드문 피었다. 나지막한 산을 통과하는 굴 옆에는 산비탈을 개간한 밭이 있었고, 때마침 들깨 모종을 하는 농부를 만났다. 말을 건네니 바쁘다고 하면서도 또 땅을 사러 왔느냐고, 빨리빨리 묻고 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웃 마을이든 낯선 도시든 그곳에 들어갈 때마다 몸을 낮춘다고 낮춰도 때때로 이질감을 느낄 때가 없지 않았다. 시간과 때가 어긋났을 것이라고 여겨도 민망하고 불편했다.
굴은 철망으로 막혀 있었고, 진입로에는 포장을 해 놓은 짐 꾸러미가 있었다. 아마도 비료 등이 아닐까 짐작했지만 들춰 보지는 않았다. 옹벽 꼭대기에 돌복상나무가 한그루 우뚝하여 꽃 피는 봄이면 볼만하다 싶었지만 그만 때를 놓쳤고, 여전히 그곳에 있었으나 주변이 죄다 초록이어서 별로 도드라지지도 않았다. 들깨모를 내던 농부에게 혹시 기차 굴과 얽힌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농부는 그게 왜 중요하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도 철통리에 있는 현내역에 대해 물었을 때는 지금은 살림집으로 바뀌어서 흔적은 없노라고 답해주었다. 농부는 왜 내 질문을 불편해 하는지 궁금답답해하면서도 자리를 떴다. 비가 올 거라서 서둘러야 한다는 농부의 말에 대한 답이었다.
다시 돌아 나와서 이번에는 굴 저쪽, 마차진리를 향해 걸었다. 날은 흐리터분했고 파도소리는 거세찼다. 비좁은 골목길을 오르다보니 아주머니 네다섯 명이 길가 마당에 앉아서 한담 중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길을 더 올라 기차 굴 철망 앞으로 다가갔다. 옹벽 양쪽에는 폐기물들이 쌓여 있었고, 이번에는 철망 앞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철망에는 2010년 한국철도시설공단 강원본부장 이름으로 된 통행금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대진리 쪽 굴 입구가 전등 불빛처럼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기찻길은 배봉리로 이어지고 이 길은 다시 명파리를 지나 북으로 쉼 없이 달려서 마침내 대륙철도로 이어질 것이었지만 철길은 시멘트 포장으로 묻혀 있을 뿐이었다.
잠시 서성이다가 다시 골목길로 들어섰다. 아주머니들께서는 여전히 그곳에 계셨고, 걸음을 멈추었다. 기차 굴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 출가하셨다는 올해 예순 아홉이신 이 아무개 어르신은 열아홉 살 적에 나무하던 이야기로 시작하여 68해일 이후 전개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지금 금강산콘도 자리가 그 옛날 68해일 당시에 자그마한 마을을 이루었던 곳으로 지금은 마차진리라고 부르지만 그 당시에는 무송정이라고 불렀다고. 마차진은 더 북쪽에 있고 지금은 군사시설로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라고. 옆에 앉아 계시던 올해 일흔 아홉이신 한 어르신은 그곳에 시집와 육십년 째 살고 계시는데 그 마차진에 시댁이 있었노라고.
보안대와 헌병대가 있던 자리에는 지금은 가게들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과 아주머니들은 앉아 계신 그 자리에 있는 집들은 68해일 당시 주로 농사를 짓던 이들이 이주한 주택으로 16평 집에 두 가구가 살게 했다고. 어부였던 이들은 속초 장사항으로 이주하였고, 집 형태는 같았으나 두 가구에 배 한 척을 정부에서 주었노라고 했다. 도로 건너편 해안이 논밭이었노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철길을 따라 배봉리까지 땔감을 하러 오갔던 이야기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웠다. 우리 마을 또한 어른들이 땔감을 ‘구루마’ ‘리어카’ 등에 싣고 거진 읍내로 팔러 다니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안대 피하랴, 보초병 피하랴 그 숨 막히는 숨바꼭질이 눈에 선했다.
이 아무개 어르신은 기찻길을 따라 걸어서 배봉리까지 나무하러 오가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배봉터널을 통과할 때는 머리에 인 나뭇짐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했다. 쑥고개 근처에 주둔했던 군부대 보초병들이 때때로 기차 굴 앞에서 지키고 있어서 오도 가도 못하던 때, 이런 때는 또 구원투수가 등장하기 마련이었고 이러하고 저러하여 보초병에 걸리지 않고 마을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오십 년 전 그때도 이미 굴 한가운데는 비가 새서 고드름이 열리기 시작했으며 굴은 현내터널 세배쯤 되었고, 일직선이 아닌 휘우듬하게 굽었기 때문에 현내터널처럼 끝과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굴 한가운데로 들어서면 어두컴컴하여 조심조심 지나야 했다고. 텅 빈 기차 굴에 한 길이 넘는 고드름이 나뭇짐에 걸려 떨어지는 소리를 상상했다.
강릉에서부터 제진까지 동해북부선 남측 구간을 착공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고성 제진에서 부산 부전까지만이라도 오고갈 수 있었으면. 남북 관계는 여전히 비상이지만 그렇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평화는 늘 여정이었으므로. 폐허가 된 자리에 다시 또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랐으며 새들과 산짐승들이 돌아왔다. 그러자 인간들은 또다시 나무들을 베고 산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데, 이야기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겠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인구 감소·경제 침체 등 구조적..

버스 무료 이용 속초까지 가능..

외국인 계절근로자 활성화 상생협..

고성군 인구 3년 만에 27,0..

하천·계곡 불법행위 대대적 정비..

고성군수 선거 함명준·박효동 맞..

금강농협 다문화가정 위한 장학금..

토성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전..

2026년 ‘고성 DMZ 평화의..

2026년도 정부 보급종 콩 개..

최신뉴스

체류형 관광 기반 구축·기업..  

죽왕면과 고성군의 실질적 변..  

지역구 고성군의원선거 총 1..  

함명준 군수 예비후보 선거사..  

김진 군의원 예비후보 선거사..  

강원선관위 장애인단체 업무협..  

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1..  

금강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농관원 6월 30일까지 하계..  

치매, 함께 보듬어야 할 이..  

자원봉사센터 취약계층 장애인..  

고성소방서 현장대응능력 강화..  

토성면 의약분업 예외지역 취..  

기하의 언어로 풀어낸 감정의..  

‘2026 콩닥콩닥 탐사단’..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daum.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