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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나와 조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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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김향숙 칼럼위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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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1월 21일(목) 18:37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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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조약돌 하나. 그것이 무슨 색이든 어떻게 생겼든 나는 요즘 작은 조약돌에 자꾸만 마음이 끌리고 생각이 깊어지곤 한다. 어릴 때, 거진 뒷장의 성긴 바닥 자갈돌들을 보고도 그랬고 얼마 전 양양 정암리나 물치해변의 조약돌들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지난번 바우지움 아트스페이스에서의 이상길작가의 사진 속에서 만난 조약돌들, 다시 최근의 김광우작가의 초대전 작품 중에서도 몽돌들이 등장해 참 많이 놀랐다. 연이어 조약돌에 대한 꼬리잇기같은 화두에 더욱 깊이 빠져드는 중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여행지에서 조약돌 하나를 골라 여행지명과 날짜를 적어 주머니에 넣고 오는 습관이 있었다. 상자 안에 소중하게 잘 모아두고 가끔 추억거리로 열어보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여행도 추억들도 되새길 수 없이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삭막한 삶이 되었는지.
상처 없이 다녀가는 생명이 있던가
바닷가에 겹겹이 펼쳐진 수많은 조약돌 중 하나를 가만히 들어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아본다. 조약돌은 들어 올려지는 순간 공간개념이 생기고 시각적 놀라움을 경험한다. 손바닥 위의 따스한 사람체온의 감촉과 함께 아이 콘택(eye contact)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사람의 심장박동과 어쩌면 그 마음 까지 읽지 않았을까. 상처 없이 다녀가는 생명이 있던가. 수천, 수 만 년 전 어느 산기슭, 고향과 모체(母體)에서 떨어져 내려 구르다 폭포를 만나 뛰어내리고 오랜 시간을 강물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 부딪치고 깨어지고 마모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렸을 돌멩이 하나. 나 자신과 이렇게 조우(遭遇)하기까지의 역사와 스토리는 한 인간의 생애만큼이나 깊고 처절하고 아름답기도 했을 것이다. 그 조약돌과의 대화가 끝나고 원래의 제자리에 조심스럽게 그대로 놓아두고 돌아선다. 그런데 이제 그 조약돌은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다. 한 사람을 만나고 높은 시야에 들어 올려져 대화를 나눈 뒤의 그에게는 너무도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우리가 감동적인 시 한 편이나 책 한 권을 읽고, 좋은 영화를 보거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혹은 여행을 다녀온 다음의 나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닌 것처럼. 격조 높은 문화는 아름다운 변화를 접하며 성장해 가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지속되고 쌓이는 동안 참으로 수준 높은 문화인으로서의 나다움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좋아하여 자주 만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 다섯을 정해보면 그들의 수준이 바로 내 수준인 것이라는 말. 맞는 것 같다. 함께 하면 할수록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유익한 결단을 하며 새로운 길을 선택하며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러시아 연해주(州)에 있는 우수리 베이 바다는 보석처럼 빛나는 환상적인 유리 조각들이 해변을 덮고 있어 푸른 바다의 파도와 함께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차로 30분쯤의 거리에 있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이 해변은 옛 소비에트연방(소련) 시절. 지역 도자기 공장들이 파산, 폐업하면서 약 10톤에 달하는 오래된 폐유리병과 도자기, 쓰레기들을 바다에 마구 내다 버렸는데 오랜 세월을 거쳐 모래 파도가 부수고 다듬어서 반들반들 윤이 나는 보석 조약들 해변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예로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포트 브래그(Fort Bragg)의 글래스 비치(Glass Beach)가 있다. 이 해안은 1940년대부터 지역 주민들의 불법 쓰레기 매립지였는데 심각한 오염으로 인해 정부가 해변을 봉쇄하고 정화하려 애썼으나 결국 실패한 채 폐쇄상태로 50여 년의 시간을 방치했고 역시 무수한 유리병들의 잔해가 모래 파도에 의해 부서지고 마모되면서 자그만 조약돌처럼 형형색색의 보석들로 가득 한 해변이 탄생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경남 거제시 몇 군데에 자연 생태적인 몽돌해변이 있고 특히 백령도의 콩돌해변은 유명한 관광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 고성군의 거진에서 화진포로 가는 바닷길 쪽의 속칭 뒷장이라고 더 잘 알려진 곳에도 멋진 바위들과 함께 신기한 자갈밭이 형성되어 있다. 비록 규모가 크지도 않고 보석 같은 화려한 색채들의 유리 조약돌도 아니고 몽돌이나 콩돌처럼 예쁘지도 않지만 투박하고 서걱한 자갈 돌밭과 작은 섬들이 모여있는 뒷장은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의 여름 놀이터로 충분했다. 아마도 등대가 있는 산의 절벽 바위들이 바닷바람과 파도에 의해 떨어져 내린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풍경일 것이다.
서걱한 자갈 돌밭과 작은 섬들
우리 어릴 적에는 두 군데의 작은 폭포도 있어서 바닷물에서 놀다 몸을 씻고 서로 가려주면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홍합과 전복 등 여러 종류의 조개들이 많아 이웃 어른들은 아예 가마솥과 땔감나무와 고추장, 김치 등을 가지고 가서 바위에 걸어놓고 섭이라고 불렀던 홍합과 전복 등을 즉석에서 잡아 와 고추장을 풀어 넣고 섭죽을 끓여주셔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있다. 김장철이면 바닷물에 리어카로 실어 온 배추들을 절이고 간 다음의 배춧잎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미역 철이면 자갈밭에 가마니를 깔고 미역을 잔뜩 널어놓아 겅중겅중 피해 다니기도 했다. 해녀분이 산다는 말은 들은 적 있는 뒷장의 바다와 맞닿은 낡은 집 하나는 자갈이 있는 앞마당까지 파도가 드나들어서 내가 중학생일 때, 내가 크면 태평양 바다를 가진 이 집을 꼭 사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화진포로 가는 해안도로가 나면서 헐리고 사라진 그 작은 마루가 있던 초막집의 정겨움은 아직도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바닷가의 수많은 조약돌들, 그것이 아주 오래전 높은 산 위의 바위였었건 혹은 누가 버린 유리병이나 도자기였건 그들이 모래 파도에 씻겨가며 닳고 닳으며 세월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세월을 보내며 산다. 러시아 우수리 베이 유리 해변이나 미국 포트 브래그(Fort Bragg)의 그래스 비치의 경우처럼 쓰레기 잔해들까지 보듬고 쓸어 담으며 정화와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준 바다의 마음. 과연 나는 나의 모난 품성이나 눈매가 그렇게 세월의 부대낌만으로 아름다운 마모(磨耗)의 성장을 이루어가며 고요히 내 삶의 영역에서 사라져 갈 수 있을까. 바닷속 조약돌이 결국은 작아지다 작아지다 하나의 모래가 되어 바닷속 깊이 묻히어 사라져가듯.
우주의 무수한 별들 중 지구라는 작은 별 하나. 지구의 수많은 인구들 중 나 한 사람, 바닷가에 지천인 작은 돌들 중의 조약돌 한 개, 모두 섞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 하나 독립된 가치는 모두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소중한 존재들이다. 인터넷의 세계통계 숫자를 실시간 보여주는 월드오미터(Worldometer)에서 2021년 1월 14일 20시 22분 현재 인구가 7,838,936,936명이라 기록하며 달려가고 있다. 흘러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모두 존중받아야 할 소중하고 가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나도 지금 여기 생명을 지니고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하고도 행복한 기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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