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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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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24] / 삽화 윤광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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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3월 02일(화) 10:35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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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사랑하는 제자 에스터 박을 폐결핵으로 하늘나라에 보내고 봄 여름을 우울하게 보내던 홀 부인은 가을로 접어든 어느 날, 반가운 목소리로 셔우드를 불렀다.
“셔우드, 엄마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세계선교사 회의에 조선 지역의 공식 대표로 임명되었다는 구나!”
1890년, 처녀 의사로 조선에 선교사로 온 지 20년 만의 일이다. 홀 부인은 그동안 겪었던 시련들이 생각났다. 외국인으로 처음 평양에 와서 많은 박해를 받으며 남편과 평양 선교지를 개척하던 일, 청일전쟁, 러일전쟁, 동학란을 겪으며 두려움과 공포에 떨던 일도 생각났다. 전쟁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남편이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일, 사랑하는 딸 에디스 마거리트를 이질 병으로 먼저 보낸 아픈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많은 시련을 통해 하나님은 조선에 복음을 퍼뜨리고 남산현교회와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1907년 평양에 대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마을 곳곳에 작은 교회가 세워져 풍전등화 같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 사람들에게 말씀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갖게 하셨다.
어려운 환경에서 병원을 설립해 환자들의 병을 고치고 선교사로 진실하게 복음을 전한 로제타 홀 부인의 공적이 인정되어 세계선교사 회의에 조선 대표로 참여하게 되어 기뻤다. 더욱이 만 열여섯 살이 된 셔우드가 고등교육을 받으러 함께 가게 되었으니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그동안 평양이란 좁은 곳에서 생활한 셔우드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어 안목을 넓혀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힘든 여정이긴 해도 시베리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실크로드 길을 택하였다. ‘여행은 교육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정으로 보면 참으로 험난하고 과감한 용기가 필요한 행로였다. 그 당시 철도는 러일전쟁 직전에 러시아가 완공한 것이었다. 전쟁 때 이 철도로 군대와 보급품을 전선으로 운송하였었다. 이 철도 공사는 단단하지 못한 지반과 표토를 통과해야 하는 난공사였으며 당시 기술로서는 기념할 만한 공적이었다.
기차는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불안하게 달렸지만 셔우드는 높은 산맥을 통과할 때 흥분과 스릴로 마음이 들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면 깊은 협곡이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기차가 계곡으로 떨어질 것 같아 불안하였다. 그래서인지 기차는 낮에만 운행하였다.
저녁에 기차가 역에 서면 작은 산마을에 여관을 찾아서 하룻밤을 지내곤 하였다. 만주식 겨울 침실은 조선의 온돌방과는 달랐다. 방바닥 한쪽에 돌을 쌓아 침대처럼 만들고 아궁이의 불길이 그 밑을 지나 굴뚝으로 통했다. 방바닥을 모두 데우지 않고 침대가 될 부분만 데웠다.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서 그런 난방방식을 사용하는가 보다. 잠자리가 침대 정도의 높이라 편리하였고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만주인은 중국인들과 달라 키가 180센티가 넘는 사람들이 많았고 여성들의 발을 작게 하려고 발을 감는 전족도 하지 않아 좋았다.
만주의 끝 시베리아 국경에 도착하였는데 마을은 황량하고 음침해 보였다. 러시아 기차는 좌석이 길고 좁은 나무 의자에 깔개가 없어 ‘딱딱한 러시아’라고 불렸다. 동네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끝없이 넓은 평야만 보였다. 처음엔 기관차가 석탄을 태우며 달렸는데, 유전지대를 지날 때는 석유 기관차로 바뀌었고, 짙은 수림 지역을 지나갈 때는 목탄 기차가 되었다.
“어머니, 기관차 연료를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바꿔가면서 운행하네요.”
“그렇구나, 참 먼 길이지만 셔우드가 좋은 걸 많이 배우니 다행이구나.”
그런데 시베리아를 반쯤 지났을 때 셔우드가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전에 중국에 갔을 때도 말라리아에 걸려 의식을 잃은 적이 있었으므로 홀 부인은 걱정이 되어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5천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루크츠크’ 역에서 내렸다. 이곳은 아름다운 ‘바이칼 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조그만 통나무 오두막집을 찾아 셔우드를 눕히고 수소문해서 러시아 의사를 찾았다. 다행히 아주 친절하고 실력이 있는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셔우드가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하며 키니네를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자 열도 내리고 몸 상태가 좋아졌다.
셔우드의 몸이 회복되자 다시 열차를 타고 긴 여정 끝에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동양과 유럽의 경계인 ‘우랄산맥’을 통과할 때의 경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장관이었다.
모스크바에는 돔 양식의 교회 건물들이 많았다. 크레믈린 궁전에서 말 위에 높이 올라타고 국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짜르 황제’가 붉은 광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환호를 받았던 러시아의 영웅인 짜르 황제도 훗날 가족들과 함께 사형을 받게 되었으니 사람의 앞날이 영원하다고 할 게 무엇이 있을까?
페테부르크는 모스크바보다 더 발전된 현대적인 도시였다. 도시를 건설한 역사적인 인물은 피터 대제였지만 도시 이름이 1924년 레닌의 이름을 따서 ‘레닌그라드’라고 바뀌었다.
이곳에서 세계의 가장 큰 ‘겨울 궁전’을 구경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방들이 있었는데 다들 똑같아 보였다. 그런데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홀 부인은 훌륭한 예술작품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셔우드는 그런데는 관심이 없었다. 모험심이 많은 그는 여기저기를 탐색해 보고 싶었다. 어머니와 몇 시간 후에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셔우드, 너무 멀리 가지 말거라. 통행을 금지하는 곳엔 절대 들어가지 말고.”
셔우드는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람객이 들어가면 안 되는 곳엘 들어가게 된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보초병이 잠시 자리를 비웠고 ‘출입 금지’라는 표시도 없었다. 수많은 방들이 있는 깊은 곳으로 점점 더 들어갔다. 한참을 다니다가 어머니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날은 저물어 가고 곧 캄캄한 어둠이 찾아올 걸 생각하니 무서웠다.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크게 소리를 질렀으나 메아리만 울림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홀 부인은 셔우드가 돌아오지 않자 보초병들에게 궁전에 들어간 아들을 찾아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이 궁전 안에 들어간 사람이 전혀 없다고 완강하게 부인했다. 자신들이 잠시 자리를 뜬 사실이 상관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홀 부인은 궁전 경호대장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규칙을 어긴 것은 벌을 받겠지만 호기심 많은 아들이 궁전 안으로 들어갔으니 찾아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결국 경호대장의 명령으로 경호병들은 등불을 들고 셔우드를 찾아 나섰다. 어둠 속에서 궁전을 헤매며 공포에 떨던 셔우드의 눈에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구해주세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큰소리로 구조를 요청했다.
셔우드는 구조되었지만 경호병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혹시 무기라도 가지고 있나 하여 셔우드의 몸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이 젊은이는 황실 궁전을 무단 침입 한 엄청난 범법행위를 했소.”
그들은 여권과 비자를 내놓으라고 했다. 홀 부인은 사정을 말하였으나 영어가 잘 안 통해서 셔우드를 남겨둔 채 필요한 서류를 가져오겠다고 말하고 호텔에 갔다. 호텔 주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간곡하게 도움을 요청해 그를 데리고 궁전으로 갔다. 규칙을 몰라서 한 일이라고 오랫동안 잘못을 빌고 간청을 해서 비공식적인 벌금을 지불한 후에야 비로소 풀려나올 수 있었다.
셔우드는 호텔에 돌아와 어머니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이 일을 거울삼아 앞으로 매사에 신중하거라. 이젠 모든 걸 즉흥적이 아닌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실행해야 할 나이란다.”
다시 기차를 타고 바이에른, 파리, 런던을 거쳐서 에든버러에 도착하였다.
이 선교사 회의는 큰 규모로 열렸다. 세계 각 지역에서 온 대표들로 큰 회의장이 가득 찼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존 모트 박사가 회의를 주관했다. 그는 1897년, 아버지를 하늘 나라에 보내고 미국 친정에 돌아온 어머니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믿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조선에 가서 다시 의료선교활동을 하라고 조언해 주신 분이다. 존 모트 박사는 회의가 끝나고 숙소로 찾아와 홀부인과 셔우드를 격려해 주었다. 존 모트 박사와의 다시 만남은 감명 깊었고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회의가 끝나자 캐나다 몬트리올 아버지의 고향에 들렸다가 미국으로 갔다. 셔우드는 매사추세츠 마운트 허몬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아, 이제 혼자서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살아야 하는구나!”
두려워하는 셔우드 앞에 새로운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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