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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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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28] / 삽화 윤광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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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20일(일) 20:34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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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메리언의 대학 졸업식이 끝나자 두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결혼식장이 있는 오하이오 주 이스트 리버풀을 향해 달렸다. 먼저 와서 결혼식을 준비하던 친구들과 메리언의 가족들이 새신랑 신부를 반겼다.
메리언의 친구 필리스 크룩(Phylis Crook)이 결혼식과 손님 접대에 필요한 준비를 맡아주었다. 형부인 노리스 라인 위버 목사는 아이작 우드 목사와 함께 결혼식 주례를 섰다. 어머니, 언니, 조카들도 식당일을 도우며 축복해 주었다.
셔우드는 어머니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섭섭했다. 어머니는 안식년 휴가를 보내고 다시 조선으로 가셨는데 축하 전보를 보내 주셨다.
“셔우드, 우리 아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병원에 돌보아야 할 환자가 많아 결혼식에 참석 못 해 미안하고 안타깝구나.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늘 동행해 주시길 멀리서 엄마가 기도할게.”
문득 셔우드는 말로만 들었던 부모님의 결혼식을 생각했다. 두 분은 1892년 봄, 부모 친척이 한 사람도 없는 조선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문화가 다른 하객들이 생소하게 느껴질 어설픈 최초의 서양결혼식을 준비하며 많이 힘들었을 당시 형편을 생각해보았다. 어머니가 참석하지 못해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친구들과 메리언의 가족이 베풀어준 훌륭한 결혼식과 피로연을 마친 후, 이튿날 캐나다로 떠났다. 아주 오래전에 아버지 닥터 흘이 캠핑을 했다는 ‘찰스턴 호수’로 갔다. ‘찰스턴 호수’는 두 사람에게 평생토록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기억되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인근의 작은 섬을 찾아 밀월여행을 보냈다. 그 신혼여행의 단꿈과 호수의 풍경을 못 잊어 훗날 강원도 고성, 화진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화진포의 성’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메리언이 의과대학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전혀 예기치 못했던 통지서 한 장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성 해외선교회에서 온 통지서였다.
“메리언은 학생 신분으로 결혼했으므로 장학금 지급을 중단합니다”
큰 타격이었다. 미혼 학생만 장학금을 준다는 규칙을 위반하여 어쩔 수는 없었지만, 다른 방법을 강구할 방법을 미리 알려주었으면 이토록 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메리언은 결혼을 숨기지도 않았고 의사가 되면 선교사가 되어 여성 해외선교회를 위해 무료로 봉사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준비해 주심을 깨닫는 일이 생겼다. 학교에서 사정을 알고 메리언에게 장학금 일부를 지급하겠다고 하였고 펜실바니아 의료선교협회에서 나머지 학비를 보조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주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어려운 형편의 환자들을 따뜻하게 돌보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1923년 셔우드는 토론토대학교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필라델피아 스태트슨 병원(Stetson Hospital)에서 인턴 과정을 하게 되었다. 병원의 환자 대부분이 유명한 스태트슨 모자공장과 관련이 있는 분이었다.
메리언은 여자의과대학 상급반에 있었다. 어느 날, 메리언이 갑자기 졸도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긴급전화가 왔다. 결혼했어도 학업으로 각자 기숙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셔우드는 아내가 그토록 힘든 줄 몰랐다. 과장에게 허락을 받고 메리언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들어간 셔우드는 젊은 인턴이 메리언의 동맥을 잘라 치료하려는 것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 치료 방법은 아주 신중해야 하는 위험한 방법이었다. 급히 진찰해 보니 뇌막염은 아니었다. 셔우드는 동맥을 절단하는 치료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 인턴은 처음에는 기분이 상했으나 셔우드의 진단이 옳았다는 것은 나중에 알고 고맙다고 하였다. 남편으로서 메리언에게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메리언은 회복이 잘 되었다.
행복한 시간은 힘들어도 빠르게 지나간다. 1924년 6월, 메리언은 의사 자격을 얻었다. 피츠버그의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병원에 인턴으로 임명되었다. 셔우드는 뉴욕의 롱아일랜드 홀츠빌에 있는 결핵 요양소 병원에서 결핵을 전공하고 있었다. 결핵에 권위가 있는 닥터 에드윈 콜브(Edwin colb) 밑에서 그토록 원했던 치료 방법을 세밀하게 배울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제자이며 조선의 최초 여의사였던 닥터 에스더가 폐결핵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모, 편안하게 하늘나라 가셔요. 제가 꼭 폐결핵 전공의가 되어 조선에 와서 결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치료해 줄 거예요!”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철없는 시절의 다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메리언은 사우스 사이드 병원에서 닥터 휴 맥과이어를 비롯한 뛰어난 의사들 밑에서 외과 분야에서는 최고의 훈련과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다.
드디어 셔우드는 캐나다와 미국 의사 면허 두 개를 취득했고, 매리언은 미국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셔우드는 내과를 전공했고 메리언은 외과를 전공 했다. 이제 두 사람은 의료 선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내과와 외과를 겸비한 좋은 의료팀을 구성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평생을 바쳐 일하기를 원했던 의료 선교사가 되기 위해 그동안의 너무도 힘들었던 길고 긴 준비 기간이 영상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셔우드와 메리언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쁨의 찬송을 불렀다. 노래를 잘 부르는 메리언이었지만 목소리는 떨렸고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들은 감리교선교회에 가서 조선에 의료 선교사를 지원하겠다고 신청하였다. 그러나 선교회에서는 그들을 크게 실망하게 하는 통보가 왔다. 1925년의 경제불황으로 두 사람을 조선에 보낼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선교회에 재정이 부족해 휴가차 미국에 나왔던 선교사들도 현지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두 사람은 낙심이 컸다. 조선에 가지 못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의 선교사로 가는 길을 알아봐야 했다. 토론토 의과대학 시절 알게 된 닥터 월프레드 그렌펠(Wilfred Grenfell)이 생각났다. 그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래브라도(Labrador) 선교회에서도 의사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언젠가 셔우드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신 부부가 조선 선교사로 가지 못하게 될 경우, 우리 선교회에 오시길 원합니다.”
셔우드는 의료 선교사 자리가 있느냐고 그렌펠에게 편지를 썼다. 곧 답장이 왔고 지금도 의사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렌펠이 제시한 직책은 봉사와 경제적인 면으로 매우 후한 조건이라 마음이 끌렸다. 조선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웠지만 그 자리를 수락하기로 하고 답장을 써서 보내려 하는데 뉴욕에서 보낸 한 통의 속달 편지가 도착했다.
“장래에 대하여 아무 결정도 내리지 말고 빨리 뉴욕에 와서 우리 언니 미리언 울버턴 여사를 만나세요! -비버 울버턴.”
셔우드는 그 부인들을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었지만, 그분들은 어머니의 좋은 친구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선교회가 자금이 없어 두 사람을 조선에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손을 쓴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친구들에게 아들 며느리가 조선에 와서 의료선교를 할 수 있는 길을 알아봐 달라고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분들은 어머니 의료사업에 아주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다.
감리교 회원들도 아닌데 셔우드와 메리언을 만나 본 후, 재정적인 후원을 약속해 주셨다. 교파를 초월한 이 자매의 사랑으로 감리교선교회는 두 사람을 조선으로 파견할 수 있게 되었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들에게 도저히 믿기지 않은 일들이 선물처럼 계속 찾아왔다. 감격하는 두 사람 앞에 더 놀라운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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