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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35]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35] / 삽화 윤광자 화가

2021년 10월 22일(금) 14:4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어머니, 지난번 말씀 하시던 원산 해변에 한번 다녀오시지요.”
셔우드 홀 부부는 조선어 학교 2학기 강의가 시작되기 전, 10월 초순에 이박 삼일 휴가를 내어 어머니(로제타)를 모시고 원산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원산에는 어머니와 잘 알고 있는 캐나나 선교사 맥컬리 자매의 오두막 별장이 있었다.
세 식구는 해주에서 서울로 가서 원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거리는 약 225km였는 데 기차로 무려 7시간이나 걸렸다. 엘리자베스와 루이스 맥컬리 자매가 역에 마중 나와 있었다. 그녀들의 집은 항구가 보이는 언덕 위의 햇살이 잘 들어오는 곳에 있었다.
그 집에 잠시 머물렀다가 원산 해변으로 갔다. 해변을 보는 순간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음은 벌써 원산 바닷가에 기울어졌다. 경치가 좋은 해안 주변에 레이드 목사의 작은 별장이 있었는데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별장을 오래전에 내놓았으나 팔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세 사람은 레이드의 별장에 가보았다.
아담한 목조건물이었고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여 마음에 들었다. 앞마당에서 바다가 보였는데 멀리 있는 섬들이 그림처럼 보이고 집 가까운 곳에 작은 강이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 별장과 함께 모터보트를 얹어 판다고 하였는데 파도가 심할 때는 보트를 강기슭 수로에 정박하면 안전하다고 했다. 별장의 위치가 높아 날씨가 좋은 날은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추운 날은 문을 닫으면 햇빛이 가득 들어와 거실 전체를 훈훈하게 해 준다고 한다.
별장 주인 닥터 레이드(W.T.Reid)는 남 감리교 선교부를 창설했던 레이드(C.F.Reid)목사의 아들로 그도 의사였다. 유리창엔 방충망도 쳐 놓았고 마당엔 펌프를 설치해서 신선한 지하수를 쓸 수 있었다. 특히 강당으로 쓰기에 적당한 큰 방이 있어 강연이나 회의 장소로 쓰고 주일엔 예배를 드려도 좋을 듯했다.
“아, 우리를 위해 이렇게 좋은 집을 예비해 주셨네!”
세 사람은 망설임 없이 그 별장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더 좋은 조건은 돈은 후불로 주어도 된다고 하였다. 닥터 레이드는 이 집을 많이 아꼈고 돈보다는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집값을 후불로 지불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흔쾌히 계약을 했다. 일을 하다가 피곤하면 찾아와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을 마련하게 되어 기뻤다.
이 별장이 가족들과 병원 식구들, 지인들이 휴식이 필요할 때 오래도록 유용한 안식처가 되길 바라며 기쁨 가득했는데, 훗날 일제는 원산의 외국인 별장들이 있던 곳을 군함기지로 활용하려고 이 아름다운 곳을 폐쇄하고 별장 주인들을 강제로 고성의 화진포 주변으로 이주시켰다.

그해 가을, 어머니 닥터 로제타의 예순 번 째 생일을 맞았다. 조선에서는 태어나는 해를 한 살로 치고 61세는 ‘환갑’으로 큰 잔치를 한다. 조선의 달력은 ‘갑을 병정 무기 경신 임계’라는 이름을 각 해에 붙여 10년의 기간을 정한다. 여기에 12가지 짐승이나 파충류를 정하여 십이지(十二支) 를 만들고 이름의 배합이 이루어진다. 갑자, 을축 등의 순서로 나가는데 같은 해가 다시 일치하려면 60년이 지나야 한다. 그러므로 태어난 해와 같은 이름의 년 수(회갑)를 맞게 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잔치를 하는 것이 풍습이다. 선교사들도 회갑을 맞이하면 조선의 교인들은 아들딸이 되어 잔치를 차려 준다. 닥터 로제타도 제자들, 후배들, 교인들이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축하해 주었다.
성대한 음식과 축하 화분이 연회장에 가득했다, 참석한 조선의 명사들과 지인들, 완치된 환자들이 36년간 조선에서 의료 봉사한 로제타의 공적을 치하했다. 특히 맹인학교를 설립하고 뉴욕 점자를 바탕으로 한국 점자를 개발하여 맹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준 것은 물론, 한국 사람들을 의사로 양성시킨 공적을 모두들 크게 치하했다.
이날 닥터 로제타 홀이 입은 실크 한복은 어느 맹인 부인이 맹인학교에서 배운 기술로 자신이 번 품삯을 모아 만들어 보낸 옷이었다.
순서에도 없었는데 스므 살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앞에 나와서 어머니와 자신이 이렇게 살아있게 된 것은 로제타가 위중한 산모와 아기를 구해 주었기 때문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또 한 사람이 나와서 자신의 어머니가 처녀 때 화상을 입어 흉한 모습이었는데 로제타가 본인의 피부를 떼 내어 이식해 주어 결혼도 하고 잘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하며 큰절을 하였다. 병원의 한 여의사 남편이 자작시에 직접 곡을 붙이고 직원들이 합창을 하여 참석한 사람들 모두 큰 감동을 받았다.

“산 중 깊은 곳에 보석이 숨겨져 있네/ 진주는 깊은 바다 밑에 놓여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닥터 홀 부인은 우리에게 보내졌네/ 60년간 흘린 노고와 눈물 끝이 없었네/ 서슴지 않고 하나님께 바친 그녀의 생애는/ 진정 오래도록 기억되리.”

닥터 로제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도 조선의 여성들이 의료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여성들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하겠다고 답례 인사를 하였다.
환갑잔치가 있은 지 2년 후에 닥터 로제타는 그 꿈을 실현시켰다. 1928년 9월 4일, 서울에 여자 의학교(Women’s Medical Institute)를 설립하여 문을 열었다. 이것은 최초로 조선에 세워진 여성을 위한 의학교였다.

서울에서 조선어 학교 2학기를 마치고 해주로 돌아왔다. 셔우드 부부에게 너무나 기쁜 일이 있었다. 메리언이 임신을 한 것이다. 두 사람은 행복하였고 새 생명을 잉태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런데 바로우 양이 착찹한 표정으로 메리언에게 말했다.
“메리언, 당신, 임신했죠? 틀림없어요. 당신은 실수로 아가를 가졌어요. 이제 선교사 임무를 수행하는데 당신의 임무는 크게 저하될 거예요.”
예기치 못한 말을 들은 메리언은 눈을 크게 뜨며 날카롭게 반박하려다가 숨을 크게 쉬고 감정을 진정시키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유용성이란 게 대체 뭔데요?”
바로우는 선교사가 결혼을 하거나 아기를 낳으면 하나님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여선교사들은 메리언의 임신을 축하해 주었다. 이처럼 선교사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조선인 친구들은 메리언의 임신 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 윤치호의 딸 헨렌 윤이 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조선에 돌아와 여학교를 시작하겠다고 해주에 와 있었다. 그녀는 조선인들의 환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조선인들은 결혼하고 아들을 못 낳으면 남편이 아들을 낳으려고 첩을 얻게 되고 본 부인은 쫓겨날 수도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메리언을 유능한 전문의사라 인정하지만 아이가 없는 것을 걱정했어요. 아기를 낳아야 아무개의 ‘어머니’ 라는 이름으로 친밀감을 같게 되지요. 또한 제사를 지내 줄 아들을 낳게 되길 더 바라지요”
“아, 맞아요! 아기가 있다고 해서 내가 의료선교를 못하게 되지는 않을 거예요. 오히려 조선인들과 가까워지고 선교 효과도 더 커질 거예요. 미스윤, 바로우 양에게 이 사실을 잘 설명해 줄 수 있겠어요?”
헨렌 윤은 쾌히 승낙했다. 메리언에게 불쑥 심한 말을 하고 바로우는 며칠 여행을 간다고 자리를 비웠다. 헨렌 윤이 바로우에게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바로우는 메리언을 찾아와서 자신이 심한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메리언은 다정한 태도로 그녀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바로우 양이 숙소로 돌아가며 한 말은 더욱 뜻밖이었다.
“당신 아기한테 주려고 갓난아기 옷을 한 벌 주문했는데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도착했으면 좋겠군요.”
바로우는 중년이 훨씬 지난 나이에 선교사가 되어 조선으로 온 독신녀이다. 하나님 일을 하려고 조선어를 열심히 배워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는 점에 가끔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부유한 가정에서 고생하지 않고 자랐다. 지금도 본국에 있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지만 이 고달픈 선교사의 길을 택했고, 모든 환경이 어렵고 생소한 조선에 와서 적응하였다. 메리언의 그녀를 이해했다, 바로우가 허용적인 분위기가 되자 모두들 편안해 하였다.
메리언의 배는 점점 불러왔고 조선에 와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흙으로 만든 벽난로에 장작을 넣어 방을 훈훈하게 하였다. 트리 앞에 앉아 가족, 친구, 후원자들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따뜻한 성탄절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위급한 수술 환자가 발생했다며 메리언을 와달라는 급한 연락이 왔다. 메리언은 만삭이었고 가야 할 곳은 50Km나 떨어진 산속 오지 마을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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