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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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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37] / 삽화 윤광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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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6일(목) 10:29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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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폐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관리의 얼굴은 충격과 공포로 굳어졌다.
“이 병원에는 현재 폐병을 치료할 시설이 없습니다. 담액이 음성으로 나타날 때까지 다른 환자들과 격리되어 치료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내 가슴 속에 폐병 균이 있다면 이제 나는 죽을 게 틀림없군요!”
그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실은 제 아...아들도 밤에 심하게 기침을 심하게 하는 데 폐... 폐병일까요?
“아드님도 병균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폐병은 한 사람이 걸리면 다른 가족들에게도 쉽게 전염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폐병 예방 교육을 하려고 그렇게 애썼던 것입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더니 비탄에 잠긴 얼굴로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아들이 폐병에 걸렸는지 검사받을 수 있도록 이 병원으로 데리고 와도 좋습니까?”
얼마 안 되어 그는 병색이 짙은 소년을 데리고 나타났다.
“당신 아들은 폐뿐만 아니라 목의 내분비선에도 감염된 것 같습니다. 증상이 아주 좋지 않아요. 아이가 병에 대한 저항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관리는 흐느껴 울었다.
“선생님, 저 아이는 외아들입니다. 저한테는 금쪽과 같습니다. 기독교 신의 신통력을 써서라도 제발 제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부디 부탁합니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셔우드는 그에게 잠시 진정시킬 시간을 주고 닥터 김과 긴히 의논했다. 전에 학교 교사의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했던 멀리 떨어져 있는 병동을 임시 폐결핵 병동으로 활용하자고 했다. 두 부자가 가엽기도 하고 이번 경우를 잘 처리하면 다른 관리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공중위생 교육에 많은 관심과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만약에 그들의 병이 호전되지 않고 치료받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 문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겨야지요. 우리 부모님도 우리도 지금까지 의료선교사를 하며 수없이 어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마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진실하게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이번 일은 그들의 생명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결핵은 격리해서 치료를 받아야 완쾌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릴 수 있고 결핵 요양소가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조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보다도 아들의 병세가 훨씬 심했다. 거의 가망성이 없었으므로 가족들이 몰래 특효약이라 생각하는 민간요법으로 쓰이는 뱀탕을 아이한테 먹일 수도 있어 간호사들은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며 소년을 지켜봐야 했다. 생사탕에는 파충류의 내분비선 독소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들은 소년에게 맞는 특별한 영양처방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 당시는 ‘결핵특효약’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할 수 있는 임상치료와 간절한 기도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소년의 병세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일광욕 치료를 시작했는데 일광욕은 목의 내분비선에 감염된 결핵균을 빠르게 녹였고 혈색이 좋아지며 체중도 늘어났다. 셀 수 있을 정도의 도드라진 앙상한 갈비뼈가 차츰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느 사이 소년은 병원의 귀염둥이가 되었다. 동시에 소년의 아버지 병세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드디어 청진기에서 부자의 폐에서 들리는 험악한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예방교육을 지독하게 반대하던 관리의 얼굴에 평안의 빛이 보였다.
어느 날, 닥터 김이 평소 그답지 않게 침착성을 잃고 흥분한 모습으로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오래전 아버지들이 평양에서 선교개척을 시작했을 때 기독교인들을 악독하게 박해하고 죽이려 했던 높은 행정관리가 해주에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셔우드 아버지 윌리엄 선교사와 평양을 개척했던 초기의 신자 닥터 김의 아버지도 그의 손에 처형될 뻔했는데 구사 일생으로 살아났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닥터 김 아버지는 조선 최초의 감리교 목사(김창식 목가)가 되었는데 지금은 은퇴하여 해주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거리에 나갔다가 우연히 그 악질적인 행정관을 보았는데 그 사람은 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출현이 좋은 징조인지 그 반대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의문점은 오래가지 않아 밝혀졌다. 그가 셔우드의 진찰실에 나타난 것이다. 아들과 손자가 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면회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아!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인연이…….”
참으로 놀랍게도 그는 특별한 결핵 환자 두 부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였다. 아들과 손자를 면회한 다음 그는 셔우드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였다.
“당신은 어려서 아마 나를 모르고 있겠지만 나는 당신과 당신 부친을 잘 알고 있소.”
나이 들어 이젠 머리가 허옇게 된 노인은 만감이 교차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은 내가 전에 죽이려 했던 선교사의 아들이요. 당신 부친을 돕던 김창식도 내 손에 죽을 뻔했소. 나는 평양에서 김창식을 사형수 감옥에 넣었는데 그 감방에서 사형당하지 않고 살아나온 사람은 김창식뿐입니다.”
노인은 감정이 격해진 듯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기독교를 박해했던 우리는 점점 세력을 잃었지요. 한편 기독교인들은 매우 강해졌어요. 평양감사는 김창식을 죽이지 못한 그 사건 이후 내게 책임 추궁을 하며 나를 평양 관가에서 내쫓았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며 이젠 기독교인들이 우리를 보복해야 할 차례지요. 그러나 당신들은 오히려 내 아들과 손자에게 사랑과 친절을 보여주고 죽을병까지 고쳐서 살려 주었어요. 나는 지금에 와서 기독교가 나쁜 종교라고 탄압한 일이 잘못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어요. 용서하시오!. 아들과 대를 이을 우리 손주를 고쳐주어 그져 감사할 뿐이요!”
그는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가 돌아간 후 셔우드는 선교초기에 조선에 와서 아버지 닥터 홀이 뿌린 고난의 열매를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했고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모든 일들이 형통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완쾌되어 퇴원하는 날, 그 관리와 나이든 그의 아버지까지 셔우드의 하는 일과 교회를 보호해 주겠다고 하였다. 셔우드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뻤다.
소년은 빠지지 않고 주일학교에 나왔다. 한번은 황해도 각처에서 모여든 기독교 대표 신자들의 집회가 있었다. 환등기를 이용해 ‘예수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려고 했다. 병원의 바쁜 일이 있어 깜빡하고 미리 강연회 허가 신청을 못 했는데 결핵을 고친 소년의 아버지는 연락하자 곧 집회 신청을 허락해 주었고 집회에도 참석했다.
셔우드는 일련의 이 모든 기적 같은 일들이 조선에 결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결핵요양소를 세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비록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다음에 있을 선교회 연례회의에서 버버그 여사의 유산에 대한 승인 신청서를 내 볼 계획을 세웠다. 계획서를 내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의 선교부와 모국에 있는 선교위원회에서 사업 허가를 받아야 했다.
‘해주구세병원’이 좋은 소문이 나면서 병원은 기초가 단단히 잡혔고 남학교도 잘 운영되었다. 선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고 선교사들을 용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1927년 6월, 선교부 연례회의가 서울에서 있었다. 이 기회에 웰치 감독께 아들 월리엄 제임스의 세례를 부탁했다. 서울 제일감리교회에서 세례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하얀 도포를 입은 조선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주위에서 “앉으시오. 앉으시오!” 하고 소리쳤으나 그는 못 들은 척 자리에 서서 말하기 시작했다.
“죄송하오나 나는 말을 좀 해야겠소! 지금 세례를 받고 있는 저 백인 아기는 초대선교사 하락(닥터 월리엄 제임스 홀의 중국 발음으로 표기한 조선 이름)의 손자요! 우리 마을과 우리 가족을 광명의 세계로 인도해 주신 분이 바로 하락 선생이었소! 뒤늦게나마 하락 선생 손자의 출생을 축하하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세례식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다가 와 아기 월리엄을 축복해 주었다. 34세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조선에서 선교사업에 일생을 바친 아버지 닥터 홀이 아들의 갈 길을 열어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연례회의는 웰치 감독의 능숙한 사회로 진행되었다. 해주 결핵 요양원설립 신청에 대한 보고를 하자 많은 선교사들이 자금 문제로 반대하였다. 영변과 원주병원이 자금과 인력이 모자라 모두 문을 닫고 해주병원만 유일한데 이 상황에서 어떻게 새 사업을 시작하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셔우드의 뜻을 존중하는 웰치 감독은 재치 있게 다음과 같은 토론 의제를 내놓았다.
“셔우드 선교사가 해주병원장 일을 계속하며 여가를 이용해 결핵요양소 건립을 추진하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선교부에서 예산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하여 연례회에서 허락되었다. 지금까지 버버그 여사의 유산에 관한 집행을 만족시킬 만한 사람이 없었는데 결핵요양소는 특별하므로 계획서를 작성할 때 조선의 결핵환자 수와 전염상태, 현재 환자들의 상황을 자세히 적어 제출해서 유산관리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하라고 웰치 감독이 조언해 주었다.
그날 밤 셔우드는 밤을 새워 계획서를 작성하며 유산 관리자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서류를 만들어 보냈다. 그리고 새벽마다 매리언과 간절히 기도했다.
몇 주일이 지난 후 전보 한 통이 해주구세병원으로 도착했다. 버버그 후원회에서 온 전보였다. 봉투를 뜯는 손이 떨렸고 매리언도 초조하게 셔우드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당신이 제출한 서류가 승인되었음. 선교자금 활용이 가능함.”
셔우드와 매리언은 부등켜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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